“‘전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호르무즈 해협에 관여하지 않겠다’라고 하면 근시안적 접근입니다. 국익을 고려해야 합니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강하게 요구하는 가운데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한국에 이런 조언을 내놨다. 20일 바스티안 기거리히 IISS 소장과의 단독 인터뷰에서다.
IISS는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세계적 싱크탱크이다. 바레인에 지부를 두고 해마다 중동 지역의 최대 안보·방위산업 포럼인 ‘마나마 대화’를 주최해 중동 사정에 훤하다는 평가다.
기거리히 소장은 19일 방위사업체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글로벌 안보 전략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하려고 방한했다. IISS는 지난해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한화그룹의 후원을 받아 한국 석좌(연구 프로그램)를 개설했다. 중동 상황이 급변해서인지 그는 “내겐 수정구슬(집시 점쟁이가 점칠 때 쓰는 도구)이 없다”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Q : 중동 전쟁을 어떻게 예상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전쟁을 짧게 끝내려 한다. 빠른 종전이 미국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여긴다. 이번 전쟁은 미국에서 인기가 없다. 경제적 영향도 나타나고 있고, 올해 중간선거도 있다. 반면 이스라엘은 더 많은 것을 원한다. 그래서 미국은 이스라엘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이 종전을 선언해도 이란이나 이스라엘이 계속 싸울 수 있다. 전쟁의 지속이 이익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란은 통증 역치(Threshold for Pain·자극을 통증으로 인지하기 시작하는 최소 강도)가 높아 오래 전쟁을 벌일 수 있다.
Q : 미국이 지상전을 실행할까.
호르무즈해협을 다시 열고 통행을 안전하게 만들려면 이란의 해안 지역 일부를 통제해야 한다. 공중작전만으로 안 된다. 미국이 작전 계획을 이미 세웠을 것이라 본다.
Q :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에 한국의 파병을 요구한다.
현재 호르무즈해협은 평소 통행량의 10%가 다니고 있다. 이란은 제한적 공격만으로 운항을 방해하는 걸 전략적 지렛대로 삼고 있다. 이걸 제거하려면 미국은 다영역(육·해·공) 작전으로 해협을 확보해야 한다. 작전이 성공해도 통행이 정상화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전쟁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은 다소 근시안적이다. 호르무즈해협이 에너지 공급과 무역에 갖는 국익을 생각하면 그렇다. 그래서 지금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일본·네덜란드·캐나다의 입장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들은 호르무즈해협 기여를 검토하고 있다. 이제 ‘해협을 다시 열려면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해협이 안전해져도 기뢰 대응·제거 작전이 필요할 수 있다.
Q : 전후 이란의 현 체제는.
테헤란(신정체제)이 살아남는다면 생존을 성공의 서사로 포장할 것이다. 승전을 주장하고, 강경 정권의 공고화로 이어질 수 있다.
Q : 미국의 요격 미사일과 정밀유도 무기 재고가 줄었다.
A : 미국과 같은 강대국도 자원이 유한하다. 앞으로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미국에만 의존하지 말 것을 동맹국에 더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은 역량 있는 동맹국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Q : 한국의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전략은 미·중 패권 경쟁에서 어렵게 됐다.
A : 한국의 전략은 모호성보다는 헤징(Hedging·위험 회피)이다. 헤징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에 자주국방에 투자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 미국이 필요로 하는 경제와 방위 산업 협력을 통해 한·미 동맹을 강화해야 한다. 특정 사안을 중심으로 다른 중견국과 결속도 단단히 다져야 한다.
Q : 트럼프 대통령은 두 번째 임기에서 중국을 더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국가안보전략(NSS)』에선 중국을 ‘추격하는 위협(Pacing Threat)’이 아닌 ‘관리 가능한 경쟁자(Manageable Competitor)’로 정의했다.
A : 미국은 중국을 여전히 추격하는 위협으로 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경쟁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다. 이 경쟁은 정치·경제·기술·군사적 차원 모두를 포괄한다. 미국이 서반구를, 중국이 아시아를 각각 주도하며 균형을 이룬다는 논리는 이제 미국의 공식 안보 담론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과도하게 해석하면 위험하다. 미국과 중국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상태는 아니다. 두 강대국은 계속해서 서로 부딪힐 것이고, 차이를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Q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4년을 넘었다.
A : 러시아는 여전히 ‘우크라이나의 완전 종속’이라는 최대주의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국가의 생존이 걸려 있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저항하고 있다. 현재 두 나라 모두 물질적으로 전쟁을 지속할 능력이 있다.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불균형하고 불안정한 균형 상태다. 오히려 확전의 가능성이 있다. 지난 겨울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에너지 시설과 인프라를 강도 높게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역시 러시아 본토 깊숙한 곳을 타격해 경제 활동과 군수 생산을 방해하려 했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문제는 병력 부족이다. 러시아는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병력을 보충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상황이 바뀌었다. 러시아 역시 병력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이제 선택의 순간이다. 러시아 내부에서 인기는 없지만 대규모로 동원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처럼 가능한 자원을 긁어모아 조금씩 병력을 투입할 것인가.
Q : 북한과 러시아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도 협력할까.
A : 북한과 러시아와 관계는 전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핵확산이나 군사 기술 이전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 북한이 러시아에 보여준 ‘헌신’은 어떤 형태로든 보상받을 것이다.
Q :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해협과 관련해 “실망했다”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를 언급했다. 유럽은 미국 없이 스스로 지킬 수 있나.
A : 나토의 유럽 회원국은 냉전이 끝난 뒤 오랫동안 안보에 대한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25~30년 동안 국방 투자에 인색했다. 한국과 대조적이다. 이 때문에 유럽은 전력 공백과 방산 역량 부족을 안고 있다. 현재 유럽은 인공위성, ISR(정보·감시·정찰), 각종 지원 전력 같은 분야에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통합 방공·미사일 방어 역량도 부족하다. 이런 격차를 메우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IISS는 2030년 즈음 러시아가 원하는 전력를 갖출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 지도부는 그 군사력을 유럽을 상대로 쓸 의지가 있다. 유럽은 취약점을 줄이고, 방어 능력을 강화하며, 미국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시간적 창(window)이 짧다. 그렇다고 유럽이 자신을 전혀 방어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능력의 부족과 무력함을 헷갈려선 안 된다.
Q : 나토는 한국과 어떤 협력이 가능한가.
A : 방산이다. 한국은 적정 가격과 우수한 품질로 신속하게 생산할 수 있는 방산 기반을 갖추고 있다. 현재 나토는 빠르게 재무장해야 한다. 독자적으로 해결하려지만, 일부는 당장 어렵다. 그래서 한국과 같은 협력국을 찾는다. 혁신과 연구·개발(R&D)부터 생산·획득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에서의 방산 협력은 매우 유망한 분야다.
Q : IISS는 지난해서야 한국 석좌를 개설했다.
A : 너무 늦었다. 그래도 IISS 한국 석좌는 한국의 외교·안보 지평이 넓어졌다는 신호다. 과거 한국에서 이 같은 석좌는 주로 미국에만 집중됐다. 이제는 한국·유럽 관계도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1958년 창설됐다. IISS를 본 따 1962년 만들어진 미국의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함께 세계적 국제 문제 연구소로 꼽힌다. 매년 각국의 군사력을 다룬『밀리터리 밸런스』를 펴내고, 한국·미국·중국·일본 등 40여 개국의 국방 장관을 싱가포르에 불러 국방 정책과 안보 현안을 논의하는 ‘샹그릴라 대화’를 연다. ‘더블 아이(II) 더블 에스(SS)’라고들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