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파병 대신 기뢰 제거 비용 지원? 정부 '호르무즈 청구서' 고민

중앙일보

2026.03.23 13:00 2026.03.23 13:26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일 미국 플로리다주 웨스트팜비치에 도착해 에어포스원에서 내리며 손짓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초 예고했던 이란 발전소 타격 시한인 23일(현지시간) 돌연 ‘5일간 공격 중단’을 지시했다. 여전히 전황을 가늠하기 힘든 가운데 미국의 지원 요청에 응하면서도 이란을 설득해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확보해야 하는 정부의 셈법이 빨라지고 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23일 세예드 압바스 아라그치 이란 장관과 통화하며 “호르무즈 해협 항행 안전 보장 및 글로벌 에너지 공급 정상화를 위한 이란의 긴장 완화 조치”를 촉구했다. 여권 일각에선 군사적 개입에는 거리를 두는 대신 기뢰 제거에 소요되는 비용 지원 등 비군사적 지원 카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날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아라그치 장관과의 통화에서 “최근 중동 상황이 역내를 넘어 글로벌 안보와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데 깊은 우려”를 표하며 이렇게 밝혔다. 외교부는 별도로 부연하지 않았지만, 조 장관이 통화에서 호르무즈 해협에서 안전하게 항행할 수 있도록 이란 측 조치를 촉구한 건 우리 선박이 해협을 통과할 수 있도록 협의하자는 요청으로 읽힐 여지가 크다.

조 장관이 “우리를 포함한 다수 국적의 선박들이 호르무즈 해협 내 정박 중”이라는 점을 설명하며 “관련 이란 측의 필요한 안전조치”를 요청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으로 읽힌다. 이에 대해 아라그치 장관은 현재 중동 상황에 대한 이란의 입장을 설명했으며, 양 측은 관련 사안에 대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소통해나가기로 했다고 외교부는 전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이와 관련, 앞서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지난 20일 교도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적과 연계되지 않은 선박’은 호르무즈 해협을 항행할 수 있다며 “협의를 거쳐 일본 관련 선박의 통과를 허용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정부는 이란 측과 협의를 해왔다고 밝혔는데, 조 장관이 직접 통화해 한국의 입장을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조 장관이 이란에 호르무즈 해협 상황에 대한 “깊은 우려” 표명과 함께 “걸프 국가 민간인 및 민간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을 촉구한 건 미국을 의식한 측면도 있어 보인다. 앞서 한국 등 22개국은 이란이 사실상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걸 비판하는 정상 공동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일단 이란과의 협상을 시사하며 최후통첩 시한을 늦췄다. 현지시간 23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과의 지난 이틀 간) 건설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이란의 발전소 및 에너지시설에 대한 모든 군사적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또 이번주 계속 될 이란과의 협상 결과에 따라 군사행동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종전이 가시화하기 전까지 미 측의 동맹 압박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마이클 왈츠 주유엔 미국 대사는 22일(현지시간) 미 CBS 인터뷰에서 미국이 무력으로 호르무즈 해협을 다시 개방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동맹이 그렇게 하게 만들겠다는 뜻인지 묻자 “두 방법 모두 가능하다. 꼭 어느 한 방법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고 답했다. 또 “일본 총리가 해군(자위대)을 보내기로 약속했다”고 말해 일본 정부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한국 역시 조만간 고위급에서 미 측과 접촉이 이뤄질 전망이다. 조 장관은 오는 26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7국(G7) 외교장관회의에서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조우할 가능성이 크다. 위성락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조만간 조인트팩트시트(JFS) 후속조치 등 한·미 간 외교·안보 현안 논의를 위해 방미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력이 이란 전쟁에 집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미 간 현안을 협상 테이블에 올리려면 중동 사태를 지원할 가시적인 방안을 가져 가야 한다는 초조감도 일각에선 포착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59차 중앙통합방위회의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 내부에선 군사적 개입에 대해서는 회의론이 한층 뚜렷해지는 기류다. 대신 일각에서는 다국적 연합의 기금 조성에 참여하는 방식 등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익명을 원한 한 소식통은 “군사 지원보다는 비용 지원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지일 수 있다”며 “해협의 기뢰 제거 등을 위한 우방국들의 기금 조성 논의가 본격화하면 우리도 충분히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런 재정 투입 카드는 파병 딜레마를 돌파하기 위해 이전에도 활용돼 온 방식이다. 아프가니스탄전과 관련해서는 5년에 걸쳐 5억 달러를 재건 자금으로 투입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살상 무기 지원 압박을 피하기 위해 2024년 나토 신탁기금(CAP) 규모를 전년 대비 두 배로 늘린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마르크 뤼터 나토(NATO) 사무총장이 22일 CBS 인터뷰에서 “한국 등 22개 우방국이 호르무즈 해협 개방을 위해 무엇을, 언제, 어디에 지원할지 계획을 수립 중”이라고 밝힌 대목도 이런 흐름과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도 그는 “언제(지원할 것인지)가 핵심이기도 하다”며 “이 때문에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자유로운 행항 보장과 (이를 위한)준비 태세 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군사 전략가(military planners)들이 협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병력이나 무기 지원 등 직접적 군사 개입은 아니더라도 나토가 전쟁이 끝나기 전 정찰 자산 제공이나 억제력 확보를 위한 주변 해역 군함 파견 등의 방식으로 미국을 지원할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해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나토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선 물리적으로 소말리아 아덴만에 파병된 청해부대는 기뢰 대응 기능이 없어 생존성이 떨어진다. 또 해군이 보유한 기뢰 제거용 소해함은 소형이어서 원양 작전에는 강점이 없다는 지적이다. 파병에는 국회 동의 절차가 필요하며, 호르무즈 해협까지 이동하는 데만 최소 수 주가 소요돼 당장 전황에 보탬이 되기도 어렵다.

이에 더해 트럼프가 언급한 발전소 타격이 현실화한다면 병원·식수 공급·통신 등 민간 생존 기반 파괴로 직결돼 국제법 위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가 상당하다. 텍사스공대 군사법 교수 제프리 콘은 AP통신 인터뷰에서 “이런 광범위한 공격은 전쟁 범죄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 뤼터 나토 사무총장. AP=연합뉴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국이 미국과 반드시 ‘1대 1’로 대화하려 하지 말고 다자 외교를 통해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한·미 양자가 아닌 최근 22개국이 공동 참여한 성명처럼 영국이 주도하는 나토 등 다자 틀에 편승해 보조를 맞춰가는 방식이 적절하다"라고 말했다. 신범철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유럽이나 일본처럼 직접적인 무력 충돌 시점에는 거리를 두되, 전후 호르무즈 해협의 항행 안전을 위한 평화 유지 활동 등에는 적극 참여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지적했다.



윤지원.심석용([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