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라톤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레전드’ 김완기(58·사진)는 요즘 고향 전북 정읍에서 후배 양성에 전념하고 있다. 육상 꿈나무 발굴을 위해 초등학교 현장을 누비고, 정읍시 마라톤팀 창단을 조력하는 등 분주한 나날을 보낸다. 지난 22일 정읍동학마라톤이 열린 정읍시 체육트레이닝센터에서 그를 만났다.
1990년대 황영조, 이봉주와 함께 ‘마라톤 삼두마차’로 불리며 한국 기록을 세 차례나 갈아치웠던 그이지만, 최근에는 기록 경신보다 뼈아픈 ‘소통의 벽’을 실감해야 했다. 삼척시청 감독으로 재직 중이던 지난해 11월, 인천마라톤대회 결승점에서 탈진한 소속 선수를 부축하는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성추행 논란에 휘말린 것이다.
사건은 해당 선수가 SNS에 “신체 접촉으로 강한 통증을 느꼈다”는 글을 올리며 촉발됐다. 이후 소속 선수들이 직무 태만과 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진정서를 제출했고, 시 체육회는 자격정지 1년 6개월의 중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상급 기관인 강원도체육회의 판단은 달랐다. “진정 내용이 일부 인정되나 경미한 수준”이라며 징계를 철회하고 견책으로 감경한 것이다. 논란의 핵심이었던 성추행은 아예 징계 대상조차 아니었다.
김 전 감독은 “선수를 탓할 생각은 없다. 징계 철회 후에도 별도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이유”라며 “선수를 도우려던 진심이 소통 부족으로 오해를 산 점은 씁쓸하지만, 시대가 변한 만큼 지도자도 선수들의 시각을 세심하게 살폈어야 했다”고 몸을 낮췄다.
하지만 그가 겪은 풍파는 개인의 불운을 넘어 한국 마라톤이 처한 구조적 모순과 맞닿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선수가 귀한’ 기형적 생태계다. 국내 남녀 육상 실업팀은 91개에 달하지만, 정작 국제 무대에서 경쟁할 만한 선수는 가뭄에 가깝다. 공급보다 수요가 압도적인 환경에서 주도권은 자연스레 선수에게 넘어갔다. 감독이 훈련 강도를 높이려 해도 선수 눈치를 봐야 하고, 엄격한 지도는 ‘인권’이나 ‘괴롭힘’의 프레임에 갇히기 일쑤다.
여기에 ‘전국체전 지상주의’가 안주를 부추긴다. 국제 대회 기록보다는 국내 대회 점수만 내면 고액 연봉을 보장받는 실업팀 문화 속에서, 굳이 한계를 넘어서는 혹독한 훈련을 자처할 동력이 사라진 것이다.
김 전 감독은 과거를 회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1990년대에는 주 6일간 매일 40km 이상을 뛰고도,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에 더 뛰려고 몰래 숙소를 빠져나갔다. 감독님께 안 들키려고 자기 전에 유니폼을 미리 숨겨두고 고양이 발로 도망치듯 나갔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그 치열했던 선의의 경쟁과 열정은 이제 ‘시대착오적 푸념’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26년째 이봉주의 한국 기록(2시간 7분 20초) 근처에도 가지 못하는 현실은 그의 탄식을 가볍게 넘길 수 없게 만든다. 김 전 감독은 “팀은 늘었지만 쓸만한 선수는 줄었고, 지도자의 권위보다 선수의 발언권이 커진 환경에서 혁신적인 기록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며 “스피드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체력이 예전만 못하니 후반에 무너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