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포스트 휴먼’이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이후’ 혹은 ‘탈’의 의미를 가진 접두사 ‘post’가 붙으면서, 포스트휴먼은 근대적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인류가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음을 알려주는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그 용어를 처음 접한 것은 21세기에 갓 들어선 즈음이었다. 스페인 행위예술가 마르셀 리의 2003년 공연 ‘에피주(Epizoo)/아파시아(Afasia)’가 매개가 되었다. 행위자의 신체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기계와 연결된 몸이 센서에 맞춰 움직이거나 영상의 움직임과 연결되는 미디어아트 계열의 공연이었다. 인간의 기계 되기?
그로테스크할 정도로 낯설던 그 공연을 어떤 범주에 넣어야 할지 자료를 뒤적이다 비디오 아트 관련 서적에서 포스트휴먼이라는 용어를 발견하고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미래의 예술이 나아갈 한 방향을 읽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책에서나 나오던 그 용어가 이제 인공지능의 가속적 발전 속에 일상용어로 자연스럽게 안착하는 눈치다.
최근에는 인간 중심적인 근대를 반성하며 연극에서도 포스트휴머니즘 계열의 작품이 많아졌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에 오히려 전기가 차단되는 디스토피아를 그린 ‘전기 없는 마을’, 꿀벌을 표현하면서 인간 중심주의를 넘어서고자 한 ‘비 비 비(B Be Bee)’, 지난해 내한했던 폴란드 공연 ‘디 임플로이’(사진)는 지구 파괴 이후 우주선에 탑승한 승무원들을 다루면서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뒤섞인 미래를 보여주었다. 인류의 미래는 과연 어디로 나아갈까.
앞에서 언급한 마르셀 리의 ‘Epizoo/Afasia’는 미래 사회를 다루지만 역설적으로 오디세이신화를 서사로 차용한 작품이었다. 트로이 전쟁을 치른 후 오디세이는 오랜 방랑을 끝내고 가족들이 기다리는 고향 이타카로 돌아갔다. 그런데 포스트 휴먼에게도 돌아갈 이타카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