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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보 김치, 쿠쿠 밥솥…연극 노벨상은 왜 반했나

중앙일보

2026.03.24 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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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하. [사진 구자하]
벨기에 겐트에서 머무르며 유럽 무대 중심으로 활약 중인 연출가 구자하(43·사진)의 투어 일정은 2029년까지 빼곡히 차 있다. 20여개국에서 도합 300회 넘게 공연된 ‘하마티아 3부작’ 즉 ‘롤링 앤 롤링’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외에 2024년 초연한 ‘하리보 김치’도 이미 100회 가량 무대에 올랐다. 한국어를 기반으로 한국적인 개인·사회 서사를 풀어낸 작품들인데도 국적·인종을 막론한 관객 반응이 뜨겁다.

그런 그에게 지난 20일(현지시간) 노르웨이 국제입센상의 ‘아시아 최초, 역대 최연소 수상’이라는 낭보가 날아들었다. 2007년 노르웨이 정부가 제정한 이 상은 현대 연극의 선구자로 불리는 영국 연출가 피터 브룩, 노벨문학상을 받은 페터 한트케, 욘 포세 등이 받은 바 있어 ‘연극계의 노벨상’이라고도 불린다. 상금은 250만 노르웨이 크로네(약 3억9000만원). 지난 23일 화상 인터뷰에서 구 연출은 “역대 수상자들을 떠올리면 아직 실감 나지 않고, 이 상은 도착점이라기보다 지금까지 시간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라고 말했다.

올해 국제입센상을 거머쥔 구자하는 극작가·연출가·작곡가이면서 종종 무대에 오른다. ‘하리보 김치’에선 포장마차 주인인 양 관객을 무대로 불러내고 [사진 구자하]
“혁신적이고 인간적인 연극” “유머와 시, 그리고 기술적 상상력을 통해 정체성, 소속, 식민 역사 이후의 삶에 대한 성찰을 열어준다” 등의 심사평이 붙은 그의 작품은 종종 ‘하이브리드 연극’으로 불린다. 전통적인 극작 틀을 벗어나 음악, 영상, 텍스트,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하고 대체로 구자하 본인이 직접 퍼포머로 나선다. 한국 전기밥솥 브랜드를 제목으로 차용한 ‘쿠쿠’(2017년 오스트리아 초연)의 경우 무대엔 인간 1인(구자하)과 사물(밥솥 3대)이 대등한 캐릭터로 등장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 20년을 시시콜콜 토의한다. “가정과 노동, 생존과 깊이 연결된 상징으로서의 밥솥”에 목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인간이 직접 말할 때보다 더 솔직하게, 더 멀리 감정이 전달”되게끔 했단다.

‘쿠쿠’에선 의인화된 밥솥과 대화하며 [사진 구자하]
인디 전자음악 작곡을 하면서 영화사, 극단 일을 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이론 전공)을 2011년 졸업했다. 이듬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에 진학해 현대연극 연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 한국 사회의 영어를 향한 집착과 영어 제국주의의 무의식을 담아낸 데뷔작 ‘롤링 앤 롤링’이 호평을 받으면서 여러 공연 축제의 초청을 받게 됐다. 이후 겐트에 자리한 ‘캄포’(CAMPO)의 레지던트 아티스트가 됐다. 공연장, 제작사, 에이전시, 레지던시 기관을 겸하는 캄포는 유럽 동시대 공연예술의 제작·유통 허브로 불린다.

‘한국 연극의 역사’에선 진행을 맡는다. [사진 구자하]
“1시간짜리 공연에서 그날 저녁 5~6시간을 책임진다는 느낌으로 관객 경험의 성찰(reflection)과 확장에 노력한다”는 그는 연극적인 것과 비연극적인 것들의 경계를 질문·탐구하며 한계 뛰어넘기에 매진하고 있다. “같은 작품을 보더라도 각자의 배경과 삶에 따라 전혀 다른 경험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며 “그 다양성을 인지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해가는 과정 자체가 제가 연극을 만드는 이유”라고 했다.

차기작은 2027년 초연 예정인 ‘본투비 K투비 팝’. “K팝 산업과 팬덤 렌즈를 통해서 한국 사회를 조망하고 초자본주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탐색”하는 작업이다. 벨기에 제작사 LOD를 중심으로 15개국 파트너들이 공동제작하는데, 1000석 이상 규모의 첫 대형무대 작업이 될 전망이다. 9월 26일 오슬로 국립극장에서 열릴 입센상 시상식 다음날엔 같은 무대에서 대표작 ‘쿠쿠’를 공연한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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