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봄입니다. 어디서는 홍매가 피었다더라 소식도 들려오고, 지도 앱에 표시된 꽃 모양을 눌러 벚꽃 만개일 날짜를 헤아려도 보고, 이미 펑펑 꽃잎을 터뜨린 볕 좋은 담벼락 목련 나무를 오래 올려다보는, 이 봄. 당신은 안전한가요? 오래된 안부를 묻습니다.
매일 전쟁과 관련된 뉴스를 마주합니다. 눈앞에서 미사일이 날아가고 폭탄이 터지고 화염에 휩싸이고 아이들이 죽어 나갑니다. 하늘길이 막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던 지인의 소식을 접하고서야 전쟁을 실감합니다. 누군가는 기름값을 걱정하고 멈춘 공장을 걱정하고 주식을 걱정합니다.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서 원유는 물론이고 희토류니 나프타니 공급대란 걱정, 하물며 종량제봉투까지 사재기를 한다는군요. 쓰레기봉투 사재기라니. 전쟁의 체감이 이렇게나 속물적이고 하찮습니다.
종량제봉투 걱정하게 하는 전쟁
봄 꽃잎에서 석유 냄새 나는 듯
석유의 탐욕 덮는 꽃 만개하기를
당신은 노래했지요. 꽃이 되게 해 달라고. 탐욕을 부르고 전쟁을 일으키는 석유가 아니라, 무용하고도 무력한 꽃으로 피어나게 해 달라고. 꽃으로 피어나 목이 잘리고 몸이 찢기고 흩뿌려져서, 포화 속 벌거벗은 아이들의 발을 덮게 해 달라고. 온몸의 기름을 다 짜내어 어머니 땅의 치욕을 씻게 해 달라고. 피어라, 석유! 피를 토하듯 시를 썼겠지요.
당신의 안부가 걱정되었습니다. 온몸으로 앓고 있겠구나, 갈기갈기 몸을 찢는 심정으로 기도를 하고 있겠구나. 알고 있으니까요. 당신의 그 기도가 그저 입술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마음을 다해 몸을 앓고 난 후의 신음에 가깝다는 것을. 그래서 당신의 시를 창문에 붙여 놓았습니다. 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간절함으로. 그리하여 이 봄의 꽃잎에서는 석유 냄새가 납니다.
날이 하도 좋아 산책을 나갔습니다. 막 피어난 산수유 노란 꽃을 외면하기 어려워 걸음이 멈춰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걷다 도착한 곳이 문화비축기지입니다. 70년대 석유파동 이후 석유를 보관했던 석유비축기지. 다섯 개의 탱크에 6900만L, 서울시민이 한 달 정도 소비할 수 있는 양을 보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은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하여 문화비축기지라 명하고 있습니다. 석유에서 문화로! 친환경과 재생, 문화가 중심이 되는 생태문화공원!
저 너머에는 월드컵공원이 있습니다. 한강 하류 범람원으로 철새들이 오는 섬이었다가, 쓰레기매립지였다가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곳. 그곳을 지날 때면 그 밑에 매립된 것들이 무언지 잊고 싶어도 잊히지 않고, 하늘이니 노을이니 평화니 하는 공원의 이름 뒤에 붕괴된 백화점의 이름이 따라옵니다. 탐욕의 결과물들은 왜 하나같이 에코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인지.
그때는 석유탱크였고 지금은 문화탱크인 거대한 구조물 앞에 앉아서, 여기저기 움트고 있는 꽃망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습니다. 안내문에 적힌 대로 생태친화적이며 창의적인 삶의 방식을 공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태란 무엇인가, 재생이란 무엇인가, 문화란 무엇인가, 전쟁이란 무엇인가, 탐욕이란 무엇인가. 질문만 무수히 피어올랐습니다.
눈을 감고 상상해보았습니다. 당신이 몸으로 기도한 바대로, 석유가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을 그려봅니다. 석유로부터 파생된 모든 것들이 꽃으로 탈바꿈한다면. 쓰레기를 담는 종량제봉투가, 페트병이 화장품이 고무장갑이 화장품이 볼펜이 반찬통이, 냉장고가 세탁기가 변기가 의자가 선풍기가, 목이 꺾이고 피를 토하고 흩뿌려지는 날이 온다면. 모든 일상이 만개한 꽃으로 멈추어버린다면. 인간은 어쩌다 이렇게 석유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을까요.
당장 멈추어야 할 것은 전쟁. 이 와중에도 나는 겨우 한 시인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만. 한 편의 시가 전쟁을 멈출 수는 없을 테지만 말입니다만. 온몸을 다해 노래하던 당신의 간절한 마음으로, 꽃망울 하나하나에 문장을 담아 봅니다. 피어라, 석유! 멈추어라,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