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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의 문화노트] 리움미술관에서 경험한 티노 세갈의 ‘마법’

중앙일보

2026.03.24 08:12 2026.03.2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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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문화선임기자
최근 서울 리움미술관을 찾았다가 로비에서 조금 특이한 광경을 보았습니다. 평범한 관람객처럼 보였던 두 명의 여성과 한 명의 남성이 함께 손가락 끝을 서로 잇는 동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공연인가?”하며 보는데,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춘 한 여성이 친근하게 제 옆에 다가와 앉았습니다. 그리고 “요즘 제가 겨울옷 정리를 하기 시작했는데요···”라며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아이고, 이건 또 뭐지?”하며 그의 얘기를 듣고 있을 때, 저는 이곳 작품의 일부가 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아주 느닷없이. 조금은 당황스럽게.

리움에서 지난 3일 개막한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의 국내 첫 개인전을 보는 일은 당혹스러운 경험의 연속입니다. 1층 전시장에 들어가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그림이나 조각 등의 작품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전시장 한가운데서 바이올린·축구공·자전거를 능란하게 다루는 사람들만 보입니다. 이 상황이 ‘이 입장(This entry·2003)’이라는 작품입니다.

티노 세갈이 나란히 대비되게 배치한 오귀스트 로댕과 제프 쿤스의 조각 작품. [사진 삼성문화재단]
세갈의 대표작 ‘키스’(2002)는 어떤가요. 관객은 리움미술관이 소장한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1840~1917)의 여러 조각 작품 앞에서 ‘살아 있는’ 젊은 남녀가 아주 느린 동작으로 키스를 나누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민망함도 잠시. 이곳을 서성거리다 보면, 인간의 다양한 감정과 상황의 몸짓을 정지된 형태로 구현한 로댕의 각 작품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리움 소장품 중 세갈이 고른 조각품 26점을 배치한 전시장에 이르면 벽에 기대 서 있는 권오상의 조각, 바닥에 누워 있는 퍼포머, 앉거나 서서 이를 보고 있는 관람객이 어우러져 하나의 작품으로 보입니다.

대학에서 정치경제학과 무용을 함께 공부한 세갈은 “사물 자체보다 실제 경험에 훨씬 더 관심이 많다”면서 “오브제(사물) 없이 작품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미술관에 가서 그림이나 조각을 볼 것이라 기대했던 관객들에겐 이런 전시는 ‘배신’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생각할수록 도발적이고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 공을 가지고 놀거나, 벤치에 앉아 이를 보는 사소한 풍경이 모두 작품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전시를 보고 나면 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사람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이웃도 작품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이게 바로 ‘티노 세갈 효과’입니다. 서로 연결된 우리는 이미 예술 작품의 일부입니다.





이은주([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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