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위기가 지나갔다. 직접적으로 그에 연관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좀 떨어진 데서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법하다. 인류라는 사회적 동물의 일족인 나 역시 그러했다.
그러다 문득 안도가 누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성이 안(安)씨, 이름은 도(堵)? 이름이라고 해도 흔치 않은 이름이다. 안도의 안은 편안할 안, 도는 담장·거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담장에는 성곽도 포함되니 ‘성곽 안쪽에서 안심하는 상태’ 또는 ‘집안에서의 편안히 있는 것’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한 위기 지나가면 안도의 한숨
바짝 긴장하면 소름 돋고
두려움 느끼면 등골 서늘해져
상시 위기에 휘둘리는 인생사
안도의 어원은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전국시대 제나라는 연나라에게 70여 개의 성을 빼앗기고 거성과 즉묵성만 남게 되는데, 즉묵성을 지키던 장수 전단이 연나라에 사자를 보내 거짓으로 항복할 뜻을 나타냈다. 곧 ‘즉묵성이 항복하면 우리들의 집안과 처자에게는 손대지 않고,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한 것이다(卽墨卽降, 願無虜掠吾族家妻妾, 令安堵). 그렇게 상대를 안도하게 한 뒤에 계략을 써서 무찌르고 연나라에게 빼앗긴 성을 모두 되찾게 된다.
안도는 단독으로 쓰이기보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의 형태로 많이 쓰이는데 AI를 찾아보니 영어로는 ‘breathe a sigh of relief’가 대표 표현이라고 한다. 그런데 담장 안쪽에 편안하게 잘 있으면 됐지 한숨은 왜 필요할까.
한숨은 폐 속 작은 주머니인 폐포가 쭈그러들지 않고 정상 기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호흡을 깊숙이 전달함으로써 폐 기능을 향상하게 해준다.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가 내쉬면 몸이 이완되면서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심박수가 줄어드는 등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긴장이 풀리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한숨을 내쉬는 호흡법은 정서를 긍정적으로 개선하는 효과도 있다니 활용해 볼 만하다.
소름은 열 손실 줄여줘 ‘안도의 한숨’과 대척점에 있는 표현은? 소름이 끼치는 것이겠다(요즘에는 ‘소름이 돋는다’는 표현을 훨씬 더 많이 쓰고 있는 것 같다). 외부의 적에 대한 경계심, 공포·혐오·흥분 등의 감정 때문에 인체의 교감신경이 긴장하면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고 모세혈관이 수축해 추위를 느끼게 된다. 그에 따라 피부의 입모근(立毛筋)이 수축하면서 피부면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털을 좀 더 직립에 가까운 상태로 세우며, 동시에 피지샘을 압박하여 피지를 분비시켜 피부 표면에 ‘좁쌀 모양의 닭살 같은 소융기(goose skin, goosebumps)’, 소름을 형성한다.
소름은 피부 표면에 공기층을 만들어 열 손실을 방지하고 피부를 수축시켜 위협에 대응하며 일시적으로 체온을 유지하고, 외부 위험으로부터 피부를 방어하며 모낭 줄기세포를 자극해 털 재생을 돕는 효과가 있다. 또한 소름이 돋을 때 모낭 주변 줄기세포가 자극을 받아 모낭 재생과 털이 자라게 하기도 한다. 결국 소름은 공포, 감동, 웅장한 음악 등 특정 자극에 대해 뇌가 긴장하여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신체적 반응이라 할 수 있다.
감정과 털의 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가 『사기』 ‘자객열전’에 들어 있는 ‘형가 편’이다. 중국 역사상 가장 유명한 자객 형가가 진시황을 암살하기 위해 길을 떠날 때 역수 강변에서 사람들의 환송을 받는데, 고점리의 축(筑, 중국의 전통 현악기)을 반주로 한 형가의 ‘역수가(易水歌)’가 울려 퍼지자 함께 있던 사람들이 모두 눈물을 흘렸다. 형가가 다시 비분강개한 마음으로 높은 음률의 노래를 부르니 사람들이 모두 눈을 부릅떴고 모두의 머리카락이 꼿꼿이 일어서서 갓(관)을 찔렀다고 한다.
생리 반응, 인체의 절묘한 설계 (공포 등으로) 추위를 타는 것, 두려움을 느낀다는 표현에는 ‘등골이 서늘하다’도 있다. ‘두려움으로 등골이 아찔하고 떨린다’는 게 사전적인 풀이인데 왜 다른 데를 다 놔두고 하필 등골인가? 공포로 땀이 날 경우 땀은 척추를 따라 흐르게 되어 있는데 이때 액체인 땀이 체온으로 인해 기화하면서 주변에서 열량을 흡수하는 (기화열) 원리다. 기화열이 큰 물을 이용해서 땀으로 체온을 조절하는 것이니 이 어찌 하늘, 아니 인체의 절묘한 설계라 아니할 수 있으랴.
시계, 방송, 통신, 언론, 인터넷, 뉴스, SNS, 광케이블, 24시 영업, AI, ‘365일 합숙 근무 피싱(스캠)’이 생겨나면서 세계는 밤낮 구별 없는 ‘초연결’ 상태가 되었다. 사건·사고·분쟁·유행·천재지변처럼 전 세계 방방곡곡에서 발생하는 일들이 별다른 여과 없이, 날 것 그대로, 또는 부정확한 채로, 어떤 의도 하에 부풀려지거나 축소·조작되어서 개개인의 세계로 침입해 안식과 고요함, 평온을 깨뜨리고 얼마 남지 않은 주의력을 빨아들인다. 제목부터 선정적인 ‘이것’들은 나와 남의 이야기, 현실과 허구, 정보와 가짜 뉴스를 뒤섞어 교묘하게 혼란을 자아냄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취한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 같은 사람들은 속절없이 겁을 먹고 추위를 타며 포모(FOMO·흐름에 뒤처지거나 좋은 기회를 나만 놓칠까 봐 두려워하는 소외 불안 증후군)를 이용한 막강한 산업, 귀재들에게 돈을 털린다.
도대체 이 원치 않는 무한의 소음들로 추웠다 더웠다 터럭이 세워졌다 누웠다 하는 내 인생은 뭐지 하는 생각을 할 시간조차 없다. 이것이 우리가 겪고 있는 상시의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