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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의 시시각각] 지려고 작정한 듯한 당의 공천

중앙일보

2026.03.24 08:20 2026.03.24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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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공천이 원래 시끄럽다지만 보수 쪽에서 유독 그랬던 건 2000년과 2008년이었다. 탈당자들의 당까지 급조됐다.

이회창 체제인 2000년 공천은 ‘학살’로 불리곤 했다. 계파 보스들이 배제됐는데 김윤환(허주)·이기택 등이 포함됐다. 허주는 특히 이 전 총재에겐 ‘정치적 은인’이었다. 부담이 컸던 이 전 총재는 “왜 공천 개혁을 하려는가” “나의 사심이나 이기심이 동기가 되지 않았나” 등을 두고 고심했다고 적었다. 결국 민국당이 창당됐고 4월 초엔 평양에서의 남북 정상회담 발표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구도에서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은 1당을 유지했다.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청산’이란 명분이 있었고, 그걸 뒷받침할 새 인물들이 있었다. 오세훈·원희룡·김부겸 등이다. YS의 차남 김현철이 주도한 1996년 총선이 홍준표·이재오·김문수 등으로 보수의 이념 지평을 넓혔다면, 2000년 총선은 ‘민주당 쪽과 결이 다른 386’으로 세대 지평을 넓혔다.
2016년 이래 한심했던 보수 공천
이번에도 '개혁'이라며 '윤 어게인'
무능·무개념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갈등 와중인 2008년에도 ‘학살’ 얘기가 나왔다. 들여다보면 좀 다른 풍경인데 “박 전 대표 측은 미흡하지만 (지역구) 공천 결과를 받아들였다”(강창희)고 했다. 사달이 난 건 비례대표 쪽이었다. 그래도 한나라당이 과반(153석)을 했고 친박연대(14석)·친박무소속(12석)도 선전했다. ‘폐족(廢族)’(안희정)을 자처할 정도로 노무현 정권이 외면받은 덕에 보수 쪽에 인재들이 몰렸다.

공천을 정당 엘리트의 충원이라고 본다면 보수 정당에서 제대로 공천이 작동한 건 여기까지다. 조금 더 후하게 보아도 보수·진보 총동원령 속에 치러진 2012년까지다. 정치컨설턴트 박성민은 “1996~2012년까지만 그런대로 괜찮았고 그다음부터는 갈수록 한심한 공천”이라고 평한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와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 공천 혁신 서약식'을 마치고 악수하며 퇴장하고 있다. 뉴스1
실제 2016년, 박 전 대통령은 더 편협해졌다. 그나마 이명박·박근혜란 둘은 리더십이라도 있었는데 그 이후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보다 훨씬 못했다. 보수가 지역·세대·이념·계층 모두에서 밀리는 비주류가 됐는데도 이들은 주류인 양 나른했다. 2020년 공관위원장을 지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최근 인터뷰에서 “당에서 추천한 사람 중엔 쓸 만한 사람이 거의 없었다. 지금은 훨씬 더 그럴 것이다. 누가 이 당에 오려고 그러겠나”라고 토로했는데, 공관위원장 시절 그 역시 초반엔 물갈이, 후반엔 돌려막기를 하다가 비판을 받았다.

지금은 더 나빠졌다. 연이은 참패로 수도권에서 충원이 안 되면서 민심에 둔감한 이들이 당을 장악했다. 그사이 민주당은 선거에 도통하게 되고 국민의힘은 숙맥이 됐다.

이 지경이면 비상한 접근이 필요한데, 당 지도부는 물론이고 이정현 공관위원장은 여전히 ‘개혁’ ‘교체’를 외칠 뿐 좌충우돌하고 있다. “첫날부터 야전 잠바를 입고 나오는 퍼포먼스는 이정현이 얼마나 무개념인가를 알 수 있다. 생각 없고 열정만 가득한 게 가장 위험하다. 높은 국정 지지도, 큰 격차의 정당 지지도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콘셉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개념도 없이 그냥 변화와 쇄신을 말로만 하면 소구가 되나”란 정치컨설턴트 박동원의 비판에 공감한다. 경기도지사 선거판도 못 짜 쩔쩔매니 말해 무엇하겠나. 더욱이 컷오프·낙천으로 비워낸 자리에 부정선거론자나 ‘윤 어게인’파가 어른거린다니?

생전의 정두언은 ‘개혁 공천’을 두고 이렇게 냉소한 일이 있다. “(공천) 교체율을 높이면 공천작업을 하는 사람들은 신나게 된다. 부탁받은 걸 반영할 소지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교체율을 높이더라도 나쁜 사람을 좋은 사람으로 바꿔야 개혁이지, 그 밥에 그 나물식으로 교체하는 게 무슨 개혁인가.”

이젠 그 나물에 그 밥만도 못하다. 지려고 작정한 당 같다. 오랜 당료 출신으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정치인마저 이러는 걸 보면 국민의힘이 얼마나 속까지 무능해졌는지 절감하게 된다.



고정애([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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