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의 분노는 두 곳을 향한다. 첫째는 경제다. 1달러당 8000원 정도였던 북한 환율이 2024년에 1만원을 넘어서자 그는 관료들을 강하게 질책하며 환율을 잡으라고 지시했다. 그랬던 환율이 최근에는 5만원까지 돌파해 지난 2년 동안 5배 이상 올랐다. 2020년에는 환전상이 환율을 급락시킨 주범이라며 이들 중 거물급을 처형하기도 했었다. 환율은 물가에 영향을 미치므로 민심을 얻으려면 환율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점을 그도 아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환율이 요동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정책의 실패를 관료의 무책임이나 상인의 기만으로 돌려 이들을 처벌하기만 한다.
김정은 권력 유지에 가장 큰 적은
경제적 궁핍과 남한 문화 확산
지금 같은 정책 실패 거듭하는 한
적대적 두 국가론 지속될 수 없어
김정은 정권의 역점 사업인 ‘지방발전 20×10’ 정책도 역효과를 낸다. 그는 2024년 초, 20개 군에 10년 동안 해마다 경공업 공장을 건설하겠다는 정책을 직접 발표한 후, 공장을 방문하며 성과를 독려했다. 최근 서울대 박사 학위 논문에서 김범환은 이 정책의 효과를 야간조도로 분석한 결과, 해당 지역의 생산 활동은 늘어나는 반면, 이 지역으로부터 3㎞ 이상 떨어진 지역은 피해를 본다는 점을 밝혔다. 또 경공업 공장이 가동되려면 자본 장비를 수입해야 하지만 이 경향은 관찰되지 않는다. 국내 다른 공장에서 기계나 설비를 뜯어와 새 공장에서 사용했을 가능성마저 있다.
시장 통제는 주민 삶에 더욱 직접적인 충격을 준다. 한국은행은 2023년과 2024년에 북한이 3% 이상 성장했다고 추정했지만, 북한의 경우 생산량 기준 통계와 실제 주민 후생 사이의 괴리가 크다. 2010년대 중반, 가계소득의 중간값은 40만원, 당시 환율로 50달러 정도였으며, 이 대부분이 시장 소득이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은 2019년부터 시장 활동을 억압하고 국가가 상업을 관장하는 정책을 펴기 시작했다. 양곡판매소 설치와 환전 및 시장 활동 단속이 그 일환이다. 시장을 떠나 공식 경제에서 일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2023년 말 근로자 월급을 3천원대에서 평균 5만~6만원대로 대폭 인상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환율과 물가가 폭등했다. 예전에 시장에서 월 50달러를 벌었던 사람이 이제는 공식 직장에서 1달러를 받는 처지가 된 것이다. 양재석·이수민·차미영·최영윤이 위성사진을 AI로 분석한 결과, 북한의 시장 개수는 2016년 472개에서 2024년 434개로 줄었다. 시장 활동이 어려워진 데다 기업 일자리도 없는 주민의 생존은 한계에 다다랐다.
김정은의 또 다른 분노는 남한을 향한다. 2020년 남북연락사무소를 폭파하더니 2023년 말부터는 남북 관계를 동족이 아닌 적대적인 두 국가로 규정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열린 노동당 9차 대회에선 이재명 정부의 대북 관계 개선 조치는 ‘서툰 기만극’에 불과하며, ‘한국의 완전 붕괴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을 덧붙였다. ‘한국이 안전하려면 우리와의 모든 것을 단념하고 우리를 건드리지 않아야 한다’.
김정은의 두 분노는 얽혀있다.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은 남한을 동경한다. 그 마음을 남한 문화가 사로잡았다. 시장 활동과 남한 문화는 그의 통치가 실패한 결과인 동시에 정권 지지도가 하락하는 원인이다. 탈북민 자료로 분석한 결과, 시장 활동과 남한 문화 접촉은 김정은 지지도를 각각 4%포인트, 7%포인트 감소시킨다. 따라서 그는 시장을 없애고 남한 문화가 북한에 전파되지 못하도록 막아 권력을 유지하려 한다. 빈사 상태였던 공식 경제를 되살리고, 남한을 ‘적대’라고 못 박아 주민의 몸과 정신을 다시 장악하려 애쓴다. 이것이 어설픈 경제정책이 실행되는 이유이며, 적대적 두 국가론이 나온 배경이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북한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적대적 두 국가론은 남한의 공세적 정책 때문이 아니라 김정은의 권력 유지 목적에서 비롯되었다. 남북 간 경제력 격차가 줄지 않고 남한 문화의 호감도가 떨어지지 않는 한, 김정은은 남한의 대북 관여를 정권 위협 요인으로 판단한다. 더욱이 지금의 지정학 구도에서는 남한보다 러시아가 군사·외교·경제 등 여러 영역에서 훨씬 많은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한·미 동맹과 대북 제재의 틀을 크게 이탈하지 않는 한, 남한의 정책 변화가 남북 관계 개선을 가져올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잘못될 경우, 이재명 정부가 바라는 평화 증진 효과는 얻지 못한 채 우리의 대외정책에 혼란만 초래된다.
우리는 북한의 반응과 관계없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해야 한다. 평화의 가치를 견지하면서 이를 가로막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북한 주민에게 진정성 있는 이웃이 되려 애써야 한다. 경제를 향한 김정은의 분노가 사라질 수 없는 한, 북한 스스로 남한에 다가서는 ‘카이로스의 순간’은 반드시 온다. 변화의 때를 준비하고 기다려야 한다. 마음만 앞서면 ‘사막에서 노 젓는’ 우를 범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