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文 새벽잠 지켜준다던 김정은…'괴물 ICBM' 그때 개발했다

중앙일보

2026.03.24 13:00 2026.03.24 13:24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2019년 2월 28일 ‘하노이 노 딜’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일찍이 경험해본 적 없는 모욕이었습니다. 이후 코로나19까지 겹치며 김정은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흑화’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불과 6년여 뒤 김정은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나란히 베이징 천안문 망루에 올라 동등한 대접을 받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한때는 그저 농담거리로 취급받았던 동북아 최빈국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은 이제 할아버지 김일성이나 아버지 김정일도 누리지 못했던 높아진 전략적 위상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김정은의 ‘성공한 흑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리고 이 변화는 한국의 안보 환경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요. 이제 우리는 격이 달라진 김정은을 상대해야 합니다. 지금 김정은을 연구하는 이유입니다.

[더중앙플러스] 김정은 연구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336
“그동안 우리가 미사일을 발사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새벽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개최하느라 고생이 많으셨다. 오늘 결심했으니 이제 더 이상 새벽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특사단이 2018년 3월 5일 평양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건영 당시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수석특사 정의용 당시 국가안보실장, 김정은, 서훈 당시 국정원장, 천해성 당시 통일부 차관, 김상균 당시 국정원 2차장. 사진 청와대
2018년 3월 5일 평양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사절단에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했던 약속이다. 북한이 심야와 이른 새벽을 가리지 않고 온갖 종류의 미사일을 쏘아 올리던 때였다.

그는 이 말이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듯했다. 문 대통령과의 판문점 정상회담을 1주일 앞둔 2018년 4월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첫 정상회담을 약 3주 남긴 2018년 5월 24일에는 한·미·중·러·영 기자들까지 불러 여섯 차례 핵실험을 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갱도를 폭파했다. 북측은 폭파 전에는 갱도 입구 안쪽에 설치된 다이너마이트와 전선을 보여줬지만, 폭파 뒤에는 취재단이 다시 갱도에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2018년 5월 24일 풍계리 핵실험 관리 지휘소 시설을 폭파하는 순간 목조 건물들이 폭파되며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이날 관리 지휘소 시설 7개 동을 폭파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들은 '4번 갱도는 가장 강력한 핵실험을 위해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공동취재단
의심을 품는 기자에게 핵무기연구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안에서부터 분출이 확 나왔댔지요. 입구만 폭발했으면 그런 현상 안 나타납니다.” 조선중앙통신 기자는 3번 갱도 앞 개울을 지나며 남한 기자에게 “한번 마셔보라. 방사능 오염이 없다”라며 권하기 바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부터 먹어보라”고 했더니, 본인은 마시지 않았다.

북한 주장대로 정말 갱도 전체를 폭파해 불능화했다면 지금쯤 개울물 에피소드는 웃으며 돌아볼 추억거리 정도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에 나선 정황이 위성사진 등을 통해 확인된 건 2022년 3월 무렵. 그리고 6월 무렵엔 7차 핵실험을 할 수 있을 정도로 3번 갱도가 복원됐다는 정보 당국의 평가가 나왔다. 불과 3개월 만에 복구할 수 있었던 건 애초에 입구만 폭파했다는 의구심이 정설로 굳어지는 계기가 됐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좁혀진다. 어쩌면 김정은은 ‘한반도의 봄’을 맞이하면서 이미 혹독한 겨울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김정은의 셈법은 그의 ‘말’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중앙일보가 인공지능(AI) 기반 빅데이터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스피치로그’에 의뢰해 노동신문 10년치 보도 전량 13만7513건, 텍스트 데이터 1800만여 건(2016년 1월~2026년 1월)을 공동 분석한 결과다.

2018년 10월 4일 평양 과학기술전당을 찾은 학생들이 멀티미디어 수업을 하고 있다. 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미 정상회담이 돌아가던 평화기에 김정은의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핵은 더 많이 말했다. 2022년 ‘미사일 폭주’도 이미 이 때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2018~2019년 많은 이들이 한반도의 평화가 가까워졌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비핵화를 말하던 김정은의 ‘핵 야망’이 사라진 적은 없다는 사실은 노동신문을 통해 전파된 그의 ’말’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핵과학에 대한 김정은의 집착은 북한 사회에 ‘핵 사다리’라는 새로운 계급 상승 수단도 만들어냈습니다. 김정은이 말했던 비핵화의 실체가 궁금하다면 아래 URL을 복사해 주소창에 붙여 넣으세요.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4045




정영교([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