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DS) 사업부 소속 엔지니어 A씨는 최근 노조의 파업 찬반 투표에서 주저없이 찬성표를 던졌다. 그는 “보상이란 ‘기여한 만큼 산출되는 결과’ 아니냐”며 “입사 5년차에 박사 학위까지 있는 내가 성과급 4000만원을 받을 때, SK하이닉스 신입사원이 억대를 받는 건 ‘공학적 오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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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 테이블 앉았지만 파업 불씨 남아
삼성전자 노조가 예고했던 5월 총파업이 24일 노사 간 교섭 재개를 계기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이날 “오후 2시 노사 미팅을 진행했으며, 사측이 초과이익성과급(OPI) 제도의 투명성 강화와 상한 폐지 등을 포함해 논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이에 따라 교섭 재개를 결정했다”고 공지했다. 그동안 노사는 OPI 상한 폐지를 둘러싸고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최승호 삼성전자 초기업노조 위원장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성과급 상한 폐지가 끝내 반영되지 않는다면, 예고한 대로 5월 총파업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약 2만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여할 것”이라며 “(파업 여파로) 매출 10조원(영업이익 5조원)의 피해를 감수하느니 그 재원을 노사 상생에 투자하라는 것이 우리의 메시지”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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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은 결국 “내가 고생한 만큼 대가를 달라”는 실리주의적 요구다. 특히 SK하이닉스가 쏜 ‘보상 경쟁 화살’은 삼성 내부의 공정 감각을 깨우는 강력한 기폭제가 됐다.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OPI 지급률은 지난해 연봉의 47% 수준이었다.
반면 경쟁사인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성과급 상한(기본급 1000%)을 없애고, 영업이익의 10%를 지급하는데 합의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평균 연봉이 1억5800만원으로 SK하이닉스(1억8500만원)보다 2700만원 적다는 사업보고서가 공개되자 불만 수위는 더 높아지고 있다.
『공정한 보상』의 저자인 신재용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요즘 젊은 세대는 삼성 같은 초우량 기업이라 해도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며 “인공지능(AI)의 발달로 고용 안정조차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20년 뒤의 미래보다 오늘의 확실한 보상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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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악몽 때문에…고민 커지진 삼성
삼성전자의 가장 큰 공포는 ‘핵심 인재의 이탈’이다. 재계 관계자는 “과거 ‘삼성맨’이라는 자부심 하나로 버티던 시대는 지났다”며 “직원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기업 간 연봉 산식을 비교하며 미련 없이 경쟁사나 글로벌 빅테크로 자리를 옮긴다”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같은 승부처에서 주도권을 상실했던 경험이 있던 터라, 사람마저 놓치면 ‘초격차’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사측이 노조의 OPI 상한 폐지 요구에 전향적으로 돌아선 것도, 당장 인건비 상승보다 ‘기술 근간의 붕괴’라는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보상 보따리를 선뜻 풀기도 쉽지 않다. 메모리 반도체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하이닉스와 달리 삼성전자는 반도체·가전·모바일 등이 한 지붕 아래 배치돼 있다. 반도체 내에서도 메모리는 호황이지만 파운드리(위탁생산)와 시스템 설계(LSI)는 적자 상태다. TV와 생활가전 사업에선 올해 수조원대 적자가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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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가전 사업부는 상대적 박탈감
반도체 부문의 요구대로 파격적인 성과급 체계를 도입할 경우 실적이 부진한 가전·TV사업부 등에서 터져 나올 ‘상대적 박탈감’을 감당하기 어렵다. 특정 사업부에 대한 보상이 조직 전체의 위화감으로 번져 결속력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은 경영진이 풀어야 할 숙제다.
디바이스경험(DX) 부문 노조원 B씨는 “우리 부서는 세미나 때마다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내놓을 만큼 생존이 절박하다”고 “DS 부문 들러리만 서는 것 같아 쟁의 투표에서 반대표를 던졌다”고 말했다. 다른 노조원 C씨는 “(파업으로) 5조원을 날릴 만큼 성과급이 급한가. 주변에선 ‘돈도 많이 버는데 뭘 그렇게 욕심 내냐’고 면박을 주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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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모적 분쟁보다 본원 경쟁력 회복 절실”
경직된 고용 체계도 글로벌 경쟁자를 마냥 따라할 수 없는 이유가 된다. 인텔의 전체 직원 수는 지난 10월 기준 8만8400명으로 전년보다 약 30% 줄었다. 성과가 없으면 해고도 쉽다는 뜻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엔지니어들에게 직장은 뼈를 묻는 곳이 아니라 내 몸값을 가장 비싸게 쳐주는 ‘시장’일 뿐”이라며 “국내 반도체 업계와 동일하게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성웨이』의 저자 송재용 서울대 석좌교수(경영학)는 “핵심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한 파격적 보상은 필수적이지만, 내부 위화감 해소와 파운드리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설비 투자, 주주환원 정책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고차 함수를 풀어야 하는 상황”이라며 “소모적인 분쟁보다는 본원적 경쟁력 회복을 위한 노사 간의 지혜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초과이익성과급(OPI)=현재 삼성전자는 연말 보너스 격인 OPI를 정할 때 연봉 50%를 상한으로 두고, 경제적 부가가치 지표(EVA)를 기준으로 산정한다. 경쟁사인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초과이익분배금(PS) 상한을 폐지하고,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하면서 삼성전자 노조도 성과급 상한 폐지를 요구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