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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억 날렸다" 잘 나가던 그 주유소, 싱크홀에 무너진 1년

중앙일보

2026.03.24 13:00 2026.03.24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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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서울 강동구에서 발생한 싱크홀(땅 꺼짐) 사고로 영업을 중단한 주유소가 1년째 방치되고 있다. 싱크홀 원인이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 외엔 별다른 피해 구제 방법을 찾을 수 없어서다. 싱크홀 사고에 대한 명확한 보상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 24일 오후 서울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싱크홀(땅 꺼짐) 사고가 발생해 현장이 통제되고 있다. 뉴스1

24일 중앙일보가 방문한 서울 강동구 명일동에 위치한 방아다리주유소는 영업 중단 사실을 알리듯 주유기를 모두 천으로 둘러싸 놔 있었다. 주유소 주변에는 출입금지 문구가 쓰여 있는 테이프로 쳐놔, 외부인의 입장을 막아놨다.

한때 강동구에서 잘나가던 이 주유소가 영업을 중단한 것은 지난해 3월이다. 강동구 명일동 대명초등학교 앞 사거리에 돌연 아파트 6~7층 높이의 거대한 싱크홀이 발생하면서다. 당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30대 배달원이 싱크홀에 빠져 사망하는 등 인명피해도 발생했다.

싱크홀에서 15m 남짓 떨어져 있었던, 방아다리주유소도 유류 탱크가 파손되는 피해를 보았다. 주유소 사장 이충희(65)씨는 사고 직후 탱크에 있는 기름을 모두 빼내고, 탱크 5기 중 5만L 용량 휘발유 탱크 1기가 파손된 것을 확인했다. 이씨는 “안전점검을 나온 소방 관계자가 ‘운영하다 사고 나면 주유소 책임’이라고 했다”며 “불안해서 어떻게 문을 여느냐”고 호소했다.

결국 주유소 문을 열려면 휘발유 탱크를 수리해야 하지만, 보상 절차는 지연됐다. 이씨는 싱크홀이 인근 지하철 9호선 4단계 연장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만큼 발주처인 서울시와 시공사인 대우건설이 수리 비용 등을 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의 한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충희(65)씨가 1년 전 주유소 인근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로 인해 입은 피해를 설명하고 있다. 김예정 기자
하지만 서울시와 대우건설은 정부의 싱크홀 사고조사결과에 책임 소재가 명시되지 않아서 주유소의 보상 요구를 전부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제 국토교통부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사조위)는 강동구 싱크홀의 원인을 “자연재해와 인재가 복합된 결과”고 판단했다.

사조위는 대우건설이 암벽에 구멍을 뚫어 터널을 파는 이른바 나틈(NATM) 공법을 사용한 것이 싱크홀에 영향을 줬을 수 있고, 하수관이 장기간에 걸쳐 누수된 것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반조사에서 파악되지 않은 불연속면과 쐐기형 토체가 싱크홀의 직접적 원인”이라며 자연재해 가능성도 열어뒀다.

결국 주유소가 보상을 받으려면 소송 외에는 방법이 없지만, 비용이 문제다. 특히 소송하려면 피해를 정확하게 입증하는 정밀안전진단을 해야 하는데, 해당 주유소의 경우 이 비용만 3억원이 든다. 박주희 법률사무소 제이 대표변호사는 ”정밀안전진단 비용은 소송을 제기하기 위한 비용이라 피해액으로 인정받기 쉽지 않다”며 “승소하더라도 해당 비용은 보상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시에서 직접 진단비용 등을 지원할 근거가 부족해 주유소와 건설사 사이를 중재하는 입장”이라며 “주유소 측에서 국가배상청구를 하시면 행정적 지원을 최대한 해드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대우건설 관계자는 “사조위 조사결과 시공사에 사고 귀책사유는 없지만,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인 만큼 주유소 측에 진단 비용을 지원하겠단 입장을 전했다”고 말했다. 다만 이씨 측은 대우건설의 ‘셀프 조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제안을 거절하고, 주유소 측은 직접 선정한 업체에 조사 및 진단을 의뢰하고 복구비 등에 대한 일괄보상을 시와 건설사에 요구할 방침이다.

23일 지난해 3월 발생한 서울 강동구 명일동 싱크홀 사고로 피해를 입은 주유소 사장 이충희(65)씨가 갈라진 주유소 바닥을 가리키는 모습. 이씨는 지난해 2월부터 주유소 바닥이 갈라진다는 민원을 서울시와 대우건설 측에 수차례 제기했지만 별다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김예정 기자

보상 방안에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주유소의 손실은 쌓이고 있다. 휴업으로 인한 주유소의 영업손실액은 약 6억원으로 추산된다. 현행법상 주유소에는 위험물안전관리자가 상주해야 해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인건비·전기료 등 매달 3000만원 안팎의 고정비가 나가기 때문이다. 여기에 휘발유 탱크 등 복구비용만 최소 18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씨 가족은 지난해 대출받은 2억원마저 대부분 소진한 상태다.

이씨는 “탱크 사이 거리는 1m에 불과하고 흙으로 메워져 있어 하나를 들어내면 다른 탱크까지 파손될 우려가 있다”며 “영업을 재개하려면 모든 탱크를 새로 설치하고 지반도 다져야 한다”고 말했다. 1년째 이어진 책임 공방 속에 이씨는 결국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씨는 23일 대우건설 김보현 대표와 현장소장 등을 지하안전관리법 위반 혐의로, 전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 강동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전문가들은 싱크홀 같은 인재와 자연재해가 복합된 사고가 앞으로 많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좀 더 명확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변광욱 국토안전관리원 자문위원은 “사조위 보고서에 책임 주체가 없으니 피해자에 대한 보상 주체도 모호해졌다”면서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해선 발주와 설계 단계부터 안전성을 더 엄격하게 검토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시는 싱크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후 배수관을 전수조사하고 위험 지역에 대한 레이더 조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김예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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