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는 ‘칼잡이’ ‘검객’이라는 별칭을 사랑했다. 그들의 수사는 ‘칼춤’ ‘검무(劍舞)’라고 불렸다. 그들이 쥔 칼은 부패와 비리를 도려내는 외과의사의 선한 메스가 되기도 했고, 때론 자제력을 잃은 망나니의 흉기로 돌변했다.
검사의 보도(寶刀)는 독점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이다. 처벌의 대상과 기소 여부를 독자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배타적 권력이다. ‘검사가 없는 죄 만들고, 있는 죄 묻을 수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왔다. 그들의 칼춤은 오랜 세월 권력의 흥망과 거물들의 생사를 쥐락펴락했고, 나라를 들었다 놓았다 했다.
검사의 보도가 부러졌고, 검객은 사라질 운명이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 독점 체제가 무너졌다. 수사권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경찰로 넘겨주고, 기소 유지 업무만 전담하는 공소청을 신설하는 법이 지난 20일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검찰청은 오는 10월 영욕의 세월을 접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장한다. 1948년 설립 이후 78년 만에 검찰의 시대가 저문다.
검찰의 발자취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압축판이다. 그 드라마틱한 검찰의 궤적에는 공(功)과 과(過), 영광과 오욕이 공존한다. ‘국민 검찰’이라고 치켜세우던 영웅의 시절이 있었고, ‘권력의 시녀’ ‘정치 검찰’이라고 빈축을 사던 악마의 시절이 교차한다.
검찰의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더중앙플러스가
‘칼의 춤, 검찰 징비록’을 시작하는 이유다. (※‘징비록’에 관한 설명과 기사 계획은 기사 중반에 있음)
김오수·이원석·심우정 전 검찰총장의 책임
‘징비록 취재팀’은 윤석열 정부 이전에 검찰총장을 지낸 3인을 최근 각각 따로 만나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검찰청 해체를 부른 결정적 원인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을 탓할 줄 알았는데, 전직 검찰총장들에게서 돌아온 답변은 의외였다. 껄끄러운 내용이 많아 익명을 요구했다.
" 김오수·이원석·심우정 전 검찰총장이 김건희 사건(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만 잘 처리했어도 검찰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검찰 3적(敵)’이란 거친 말까지 들리더라. (전 검찰총장 K) "
" 김건희를 구속했어야 한다. 이원석 전 검찰총장이 그것만 했어도 검찰이 지금 이렇게 안 됐다. 이원석이 김건희를 구속하고 물러났으면 본인도, 검찰도 다 살았다. (전 검찰총장 I) "
" 검사들의 마인드를 완전히 망가뜨린 건 윤석열 전 대통령이 갖고 있었던 ‘삼국지식(式) 의리 개념’이다. 친구들끼리나 지킬 의리를, 냉정한 공무를 해야 할 검사들이 중시하면서 망가졌다. (전 검찰총장 S) "
전직 검찰총장 3인은 검찰 해체를 초래한 원인을 검찰 내부에서 찾았다. 검찰의 최고 책임자인 검찰총장을 검찰 몰락의 조력자쯤 된다고 특정했다. 일그러진 검찰 문화에서 비롯된 자업자득이라는 깊은 회한도 묻어났다.
검찰 징비록의 긴 여정은 전직 검찰총장의 조언에 따라 김건희 여사(이하 존칭 생략) 사건에서 출발한다. 검찰은 왜 김건희를 원칙대로 수사하지 않아 자멸의 길을 자초했을까. 관계자들의 증언 등을 통해 채취한 숨겨진 4개의 장면과 비화(秘話)를 따라가면서 실체적 진실 속으로 들어가보자.
#장면 1. “수사지휘권이 없어서”…검찰총장의 변명
이원석 검찰총장(2022년 9월~2024년 9월 재임) 시절의 어느 날이었다. 윤석열 정권의 검찰이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과 디올 명품백 수수 의혹에 수사 의지가 없다는 비난이 거세던 때였다. 전직 검찰총장 K가 친정이 걱정돼서 이원석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 왜 김건희 사건을 원칙대로 수사해 처리하지 않으시는가? "
예상치 못한 답변이 돌아왔다.
검찰 징비록 1화에서는 김건희 수사를 두고 검찰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5개의 결정적 장면을 펼쳐 파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