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린 지난 15일(현지시간), 한국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이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 무대에 섰다. 북소리, 창(唱), 한국무용이 어우러졌다. 그렇게 이어진 약 3분 22초의 시간은 반가움과 놀라움의 연속. 관객석과 스크린 너머에 한국의 미(美)를 펼쳐 보이기 충분했다.
이날 ‘골든’ 무대는 미국인 안무가 맨디 무어가 연출했다고 알려졌다. 이 과정을 함께한 또 다른 한국인 안무가가 있다. 정다은(44) UC 리버사이드 무용학과 조교수는 이날 공연의 의상·메이크업·음악·가창 등 구성요소를 꼼꼼히 자문하고, 세 명의 ‘전대(前代) 헌터’ 중 한 사람으로 직접 무대에도 올랐다.
Q : 아카데미 무대를 마쳤다.
A : “단순히 출연과 안무를 돕는 역할이 아니라 ‘한국 문화 컨설팅 안무가’로 맨디 무어와 아카데미 팀에 자문하는 역할을 맡았다. 무게감과 사명감을 동시에 느꼈다. 방영 이후 가족, 친구들, 한국 국민과 교포들의 뜨거운 반응을 실감 중이다.”
Q : 아시아인으로 추정되는 댄서들이 많았다.
A : “무대에 선 댄서의 대부분은 영어가 편한 2·3세 한국인, 아시아인이다. 미국에서 살아가는 소수 인종의 현실을 떠올리면, 이날 ‘케데헌’이 낸 성과와 축하 무대의 구성은 고무적이다.”
정다은 안무가를 소개한 건 함께 무대에 선 LA 사물놀이팀 ‘울림’이다. 맨디 무어와 아카데미 팀은 그의 경력을 보고 ‘제격인 사람을 찾았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정 안무가는 한국무용 교육과 공연을 해왔고, 한국의 전통문화를 설명해줄 수 있으면서, 컨템퍼러리(동시대적) 무용 작업에 익숙하다. 그는 “지금까지 한국과 미국에서 받았던 트레이닝과 공연, 교육, 연구 활동이 모두 이 무대를 위한 준비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말마따나 한국에서 국립국악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무용학과 학사와 미국 UCLA 안무 석사과정을 밟은 그는 이번 프로젝트의 적임자다. 한글의 구조 등에 영감을 받은 공연 ‘별(Byoul)’, 한국 민속무용의 원리·형식·양식에 영감을 받은 군무 ‘놀이(NORRI)’ 등 그의 작업물을 살펴보면 정 안무가가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몸짓을 재료 삼아 활동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졸업 후 미국에서 활동할 때, 한국무용을 소재로 했다는 이유로 내 작품이 ‘개별 작가의 작업’보다는 ‘소수 인종의 문화를 표상하는 작업’으로 분류되는 일을 겪었다”고 했다. 그가 자신을 ‘한국전통무용가’가 아니라 ‘컨템퍼러리 안무가’로 소개하고, 입지를 다져 온 이유다.
Q : 이번 무대의 한국적인 요소를 짚어본다면.
A : “우리에게 익숙한 전통문화의 모습과 공연문화로서 진화되고 재해석된 동시대적 한국 문화를 동시에 보여주고자 했다. 북 연주자들에겐 사물놀이 의상을, 판소리 가수에겐 한복을 입혀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전통 이미지를 살렸다. 헌트릭스에게 임무를 전달하는 ‘전대 헌터’ 무용수에겐 무대 의상으로 재해석된 형태의 한복을 입혔다.”
Q : ‘골든’이 나오기 전에 춘 춤에 대해 설명해달라.
A : “세 명의 전대 헌터들이 액을 물리치고 공동체를 하나로 모으려는 춤을 춘다. 긴 도포와 겹겹의 쾌자(무당의 의례복)가 이들의 무당으로서의 존재감을 나타낸다. 액을 쫓는다는 의미의 살풀이 수건(긴 흰색 수건)을 활용해 사자보이즈를 물리친다는 의미도 담았다.”
Q : 준비 과정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나.
A : “연출진, 의상·메이크업 담당자 등이 ‘문화적 전유’(타인종의 문화를 충분한 이해 없이 차용하는 것)를 피하려 신중과 존중을 기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무엇이 진정한 전통인지’ 자주 물었다. 나는 그때마다 ‘완벽한 하나의 전통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적극적으로 전통을 해석하려 들 때 ‘문화적 전유’를 벗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깊은 문화의 뿌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재해석을 하느냐, 겉모습만 차용해오느냐에 따라 ‘진화하는 전통’과 ‘문화적 전유’로 나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다.
K댄스, K팝, K푸드…이제 해외에서 K라는 접두사는 어디에 붙어도 낯설지 않다. 한국이 ‘동시대적 관심사’가 된 셈이다. 정 안무가는 “‘케데헌’에 그려진 동시대 한국의 문화는 LA에서 이제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여진다”고 했다. 한국의 전통은 이제 K의 정체성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재해석되고 있다.
정 안무가 역시 계속해서 한국적인 몸짓을 탐구하려 한다. “그는 ‘놀이’로 2023년 LA 초연 이후로 최근까지 미국 투어 공연을 이어왔다”며 “최근엔 조선 후기 풍속화 속 기생의 몸동작, 1980~90년대의 K팝 댄스 레퍼토리 등 몸의 기억을 즉흥을 통해 풀어내는 새 작품 ‘작두'의 LA 초연을 앞두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