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구인 사이트에서 급전이 필요한 노인을 대상으로 ‘서류 배달’ 업무라 속이고 보이스피싱 범죄 수익금을 배달시키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서울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와 인천 연수경찰서, 대구 동부경찰서 등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로부터 금괴를 수거해 지시 책에 전달한 고모(66)씨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수사 중이다. 고씨는 지난 1월 서울·인천·대구 등에서 여섯 차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총 5억7000만여원 상당의 금괴가 든 쇼핑백을 받아 지시 책에 전달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고씨는 지난해 12월 한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부동산 경매와 관련한 서류를 전달하고 답사하는 일자리를 구했다. 고씨는 10년 넘게 대기업 건설회사에서 근무하다 퇴사하고 인테리어 업체를 운영했는데, 사업 미수금이 생겨 생활고가 이어지자 급하게 일자리를 찾았다고 한다. 경매물 사진을 찍고 관련 서류를 전달하면 월급 200만원을 준다는 말에 고씨는 곧바로 근로계약서를 썼다. 고씨는 “업체 측이 보내온 명함엔 실제 존재하는 회사와 상표가 쓰여있었기에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고씨는 온라인에서 구직한 것이 처음이었기에 온라인 채팅으로 근로계약을 맺고 업무 지시를 받는 일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고 한다. 업체 측은 “젊으신 분보다는 오랫동안 꾸준히 성실하게 임하는 분을 선호한다”며 온라인 구인·구직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은 중장년층을 노려 접근했다.
고씨는 ‘정팀장’으로부터 텔레그램에서 서류 배달 등 업무를 지시받았다. 지정 장소에서 쇼핑백을 받아와 본사 측 인물에게 전하는 일이었다. 업체 측은 “수습 기간이 끝나면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 “배달 거리가 멀면 인센티브가 높기 때문에 일부러 출장을 잡아준다” “출장시 연락을 바로 받으려면 자차가 아닌 기차, 택시 등을 이용하라”고 설명하며 의심을 차단했다.
고씨가 전달한 것은 테이프 등으로 밀봉돼 안을 볼 수 없게 한 쇼핑백이었다. 고씨는 가방 안에 경매에 쓰일 도장이나 서류 등 중요 물품이 들어있어 밀봉돼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방 안에는 금괴가 들어있었다.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이 마련한 금괴를 고씨가 지시 책에 전달하게 된 것이다.
수사기관은 고씨와 같은 금괴 전달책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범죄를 공모한 일당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고씨와 같이 자신이 수거 책이 된 사실을 모르더라도 처벌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2023년 통신사기피해환급법이 개정되면서 통신사기 자금을 교부, 출금하는 행위도 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통신사기 자금의 수거·전달책이 되면 본인은 몰랐다고 주장하더라도 1년 이상 징역 또는 범죄수익의 3~5배 벌금을 물릴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