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25일 “남북관계이든 한국-조선관계, 한조관계이든, 서로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함께 공동이익을 창출해 나가길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식 석상에서 남북관계를 ‘한조관계’로 표현한 건 처음이다. 이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 노선 확정 이후 기존의 대남 단절기조를 반영해 새롭게 쓰고 있는 ‘조한관계’와 유사한 표현으로 볼 여지가 있어 북한의 노림수에 말려들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장관은 이날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적대의 종식과 한반도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주제로 열린 통일부·통일연구원 공동학술회의 개회사에서 “남측에게도 북측에게도, 대한민국에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도 과거가 아닌 미래를 향한 책임있는 결단이 필요하다. 용기 있는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정 장관은 지난 1월 통일부 시무식에서 “이재명 정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체제를 존중하며 북측이 말하는 도이췰란드(독일)식 체제 통일을 배제한다”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호를 사용했다. 정부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한 헌법 제3조에 따라 북한을 정식 국가가 아닌 대한민국의 일부로 간주해 ‘북한’ 또는 ‘북측’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해왔다. 대법원 판례 등은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다. 정 장관이 북한 국호를 공식 석상에서 사용하자 논란이 이어진 이유다.
정 장관은 이날 행사에서 “평화는 통일을 위한 수단 정도로 취급되어 왔다. 평화는 그 무엇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평화적 공존 그 자체가 목표다. 그래야만 ‘신뢰할 수 있고 공생할 수 있는 이웃’이 만들어진다”고도 말했다. 이는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을 내세우자 ‘평화적 두 국가론’으로 맞서겠다는 정 장관의 기존 논리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다만 북한이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북남관계를 조한관계로 부르기 시작한 건 남측 체제를 적대국으로 규정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민족적 동질성이나 궁극적으로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은 무시한 것이어서다. 김정은은 지난 23일 최고인민회의(15기1차) 시정연설에서도 남측을 향한 “대적투쟁”을 강조했다.
그런데 책임 있는 정부 고위 인사가 한조관계라는 표현을 쓰는 건 평화적 공존을 강조하려는 본래 의도와 달리 북한의 대남 적대시 정책 굳히기 시도에 말려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북한의 반응을 이끌기 위해서 적절하지 않은 그들의 논리까지 차용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며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정부 고위당국자인 만큼 언사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