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속에 인공지능(AI)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로봇이 전장에 투입되면서 전쟁 양상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과 함께 윤리 논쟁도 확산하고 있다.
미국 방산 스타트업 파운데이션이 개발한 휴머노이드 로봇 ‘팬텀(Phantom) MK-1’ 2대가 지난달 우크라이나에 군사 용도로 인도돼 정찰 임무에 투입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과학기술 전문매체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 등이 관련 사실을 보도했다.
팬텀 MK-1은 키 180㎝, 무게 80㎏ 규모로 최대 20㎏의 장비를 운반하며 시속 6㎞로 이동할 수 있다. 이는 보병의 급속 행군 속도와 비슷한 수준이다. 전신에 전기모터 구동기를 장착해 팔과 손을 비교적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고, 몸통에 탑재된 복수의 카메라로 가시광선을 인식해 주변 지형과 사물을 탐지한다.
고성능 AI도 탑재했다. 전장 환경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이동 경로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다. 현재는 정찰 임무가 주된 역할이지만, 권총과 소총 등 개인 화기 운용, 물자 수송, 위험 물질 처리 등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파운데이션 공동창업자 마이크 르블랑은 “군인을 전장에 보내는 대신 로봇을 투입하는 것은 도덕적 책무”라며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무기를 로봇이 다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그는 미 해병대에서 14년간 복무하며 이라크·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경력이 있다.
팬텀은 이미 미 육·해·공군과 총 2400만 달러 규모의 연구 계약을 체결했으며, 미군 중소기업혁신연구(SBIR) 3단계 사업에도 선정됐다. 미 해병대와는 폭발물을 활용한 건물 진입 훈련 과정에서 로봇 활용 시험도 진행할 예정이다. 미 국방부는 “고위험 환경에서 병력과 함께 작전할 수 있는 군사용 휴머노이드 시제품 개발을 지속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AI 기술 발전으로 과거 공상과학 영화 속 장면이 현실화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르블랑은 “로봇은 피로와 공포를 느끼지 않고 방사능·화학물질·생물학 무기 환경에서도 작전이 가능하다”며 “정밀성과 통제력 측면에서도 인간 병사보다 유리하다”고 주장했다. 대규모 로봇 병력이 상호 억지력을 형성해 전면전 확대를 억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우려도 적지 않다. 휴머노이드 병사가 전쟁 개시의 정치·윤리적 문턱을 낮추고, 민간인 피해 발생 시 책임 소재를 모호하게 하며, 전쟁을 더욱 비인간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미 국방부 지침은 자동화 무기체계가 공격을 수행할 경우 인간의 최종 승인을 받도록 규정한다. 파운데이션 역시 “적을 물리적으로 공격할지는 인간 병사가 결정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전파 방해로 원격 조종이 어려워지면서 AI 드론이 표적을 식별하고 자율적으로 공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적성국이 완전 자율 무기 운용을 허용할 경우 상대국도 이에 맞대응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 싱크탱크 ‘디펜스 프라이어리티스’의 제니퍼 캐버노 군사분석국장은 “인간을 배제한 자동화의 유혹은 매우 크다”며 “분쟁 당사국 간 투명성이 부족한 상황에서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치명적 자율무기체계를 “정치적으로 용납할 수 없고 도덕적으로 혐오스럽다”고 비판했다. 유엔과 국제적십자위원회는 ‘의미 있는 인간 통제’가 없는 자율무기 금지 조약 체결을 촉구하고 있다. 다만 미국·러시아 등 군사 강국들은 규제 논의에 소극적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책임 공백’ 문제를 심각하게 본다. AI 로봇이 오작동으로 민간인을 공격하거나 전쟁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지휘관·개발자·제조사 중 누구에게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하는지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기술적 한계도 남아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은 구조가 복잡해 고장이 잦고, 진흙·먼지·폭우 등 혹독한 환경에서의 작전 능력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 해킹으로 적군에 탈취될 경우 아군을 공격하는 무기로 악용될 위험도 있다.
그럼에도 군사 AI 기술 경쟁은 갈수록 가속화하는 분위기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무인·자율 무기의 시험장이 되면서 각국 방산업체들은 실전 데이터를 토대로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르블랑은 “이미 전쟁은 로봇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휴머노이드 병사는 다음 전쟁의 핵심 전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