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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드컵 때 등번호 없던 선수…이젠 그의 등만 바라본다

중앙일보

2026.03.25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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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카타르 월드컵 당시 등번호도 없는 예비 선수로 대표팀 일정을 동행했던 오현규(위 사진). 그 설움을 자양분으로 삼은 그는 스트라이커 상징인 등번호 9번을 달고 뛰며 북중미 월드컵의 핵심 공격수로 떠올랐다. [사진 MBC 중계 캡처, 뉴스1]

“튀르키예 관중들의 응원은 ‘미쳤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그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저도 모르게 에너지와 도파민이 더 나와요.”

튀르키예 프로축구 쉬페르리그를 뒤흔드는 스트라이커 오현규(24·베식타시)가 25일 한국축구대표팀 훈련을 앞두고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헹크(벨기에)를 떠나 베식타시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후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그는 홈 팬들의 ‘도파민 분출기’로 거듭났다. 지난달 데뷔전에서 화려한 오버헤드킥 골을 넣은 게 출발점이었다. 팀 합류 이후 세 번째 경기에서 시속 122㎞ 대포알 중거리 슈팅으로 3경기 연속골을 터뜨리자, 세르겐 얄츤 베식타시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라운드에 털썩 주저 앉았다. 구단 123년 역사를 통틀어 입단 직후 3연속 득점포를 가동한 건 오현규가 최초다.

베식타시 데뷔전에서 아크로바틱한 오버헤드킥으로 데뷔골을 터트린 오현규. 사진 오현규 SNS
8경기에서 5골을 몰아친 그는 ‘2월 리그 이달의 선수’에 선정됐다. 시장 가치는 두 달 만에 700만 유로에서 1500만 유류(260억원)로 2배 이상 뛰었다.

실력 만큼이나 인기도 상종가다. 최근 개최한 팬 사인회는 3시간 넘게 행렬이 이어지며 대성황을 이뤘다. 당일 하루 동안 오현규의 이름과 등번호가 찍힌 유니폼 1만 장이 팔려나가 구단에 5000만 리라(약 17억원)의 수익을 안겼다. 베식타시 팬들은 자국 국민가수 세젠 악수의 노래 ‘oh oh’를 오현규 찬가로 바꿔 한 목소리로 열창한다. 13년 전 발표된 뮤직비디오 유튜브 댓글창에는 ‘성지순례’ 온 것처럼 팬들의 오현규 찬양으로 도배됐다.

오현규 팬사인회에 몰려든 튀르키예 팬들. 사진 베식타시
튀르키예 신드롬의 주인공으로 일어서기까지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어린 시절엔 풍족하지 못한 가정 형편을 걱정하며 뛰었는데,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주고 싶어 회비를 내지 않아도 되는 수원 매탄중(수원 삼성 유스)에 진학하며 부담을 덜었다. 4년 전 카타르월드컵 당시엔 안와골절 부상을 입은 손흥민(LAFC)이 못 뛸 경우를 대비해 26인 최종 엔트리 밖 27번째 예비 선수로 참여했다.

당시 1~26번까지 주어지는 등번호를 받지 못해 단체 사진 촬영에 빠진 경험이 축구 인생에 커다란 그림자로 남았다. 지난해엔 독일 슈투트가르트와 이적료 467억원 규모의 대형 계약을 눈앞에 뒀지만, 고교 시절 부상 이력과 구단 간 의견차가 맞물려 최종 무산되는 아픔도 겪었다. 오현규는 “이겨 내기 위해 발버둥 쳤다”고 말한다.

튀르키예 프로축구 베식타시 공격수 오현규. 사진 베식타시 SNS
역경을 이겨낸 키워드는 간절함이었다. 수원 삼성 소속 시절이던 지난 2022년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에서 연장 헤딩 결승골을 터뜨려 팀의 강등 위기를 막아낸 뒤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던 모습, 상대의 거친 발길질을 개의치 않고 머리를 들이미는 무모함 등이 그가 세상을 대하는 방식이다. 오현규는 프랑스 공격수 카림 벤제마처럼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뛰는데, 이는 상무에 입대한 19세 때 손목에 테이핑을 한 뒤 경기가 잘 풀렸던 경험에서 비롯됐다. ‘골을 넣을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한다’는 의지를 붕대와 함께 동여맸다.

4년 전 등번호 없이 설움을 겪던 그 선수는 이제 손흥민과 더불어 홍명보 감독 부임 이후 축구대표팀 최다 득점자(6골)다. 28일 영국에서 코트디부아르와 평가전을 앞둔 축구대표팀의 핵심 공격 옵션이다. 지난해 9월 멕시코와의 A매치 평가전(2-2무)에서 선보인, 2001년생 동갑 이강인(파리생제르맹)의 패스를 받아 골로 마무리하는 공격 패턴은 홍명보호의 주요 득점 공식이기도 하다. 현재 대표팀에서 등번호 9번을 쓰는 오현규는 “이번엔 꼭 등번호를 달고 월드컵에 가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꿈의 크기대로 살아간다”는 그의 월드컵 목표는 우승이다.



박린([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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