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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은 박자, 한 손은 표현…지휘에 권위 따윈 필요 없다

중앙일보

2026.03.2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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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를 지휘 강국으로 만든 요르마 파눌라. [사진 파눌라 아카데미]
“처음 만나면 한눈에 안다. 좋은 지휘자일지, 그저 그럴지, 아니면 지휘자가 될 수 없을지.”

96세가 된 지휘 스승의 말투는 분명했다. 이달 초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요르마 파눌라는 하루에 7시간씩 지휘자 지망생을 가르치고 있었다. 헬싱키의 작은 건물을 빌려 주말 동안 8~10명을 평가하는 지휘 워크숍. 이렇게 길러낸 제자들 가운데 가장 뜨거운 지휘자가 클라우스 메켈레(30)다. 그 위로도 화려하다. 에사 페카 살로넨(68), 사카리 오라모(61), 한누 린투(59) 등이 파눌라를 사사하고 유럽과 북미에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있다.

파눌라 사단의 힘은 한국에서도 발휘됐다. 오스모 벤스케(73), 피에타리 잉키넨(46)이 각각 서울시향(2020~22년), KBS교향악단(2022~24년)의 음악감독을 맡았다. 뉴욕타임스는 2023년 기사에서 “핀란드는 세계 최고의 지휘자 수출국이며, 파눌라가 농부처럼 여러 세대의 예술가들을 길러냈다”고 했다.

한국 언론과의 첫 인터뷰에서 파눌라는 “좋은 지휘자의 원칙은 간단하다. 왼손은 박자, 오른손은 표현”이라고 했다. 또 “권위는 필요 없다. 지휘자는 구성원을 도와주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당신이 가르치는 원칙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들 어려워한다.
A : “그저 두 손에 관한 일이다. 어떤 사람은 두 살짜리처럼 두 손을 마구 흔든다. 지휘자는 손의 역할을 나눌 줄 알아야 한다. 어렵다고? 이건 전문가의 영역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공부하고 생각해야만 한다.”


Q : 어떻게 연습할 수 있나? 지휘자에게는 자신의 악기가 없다.
A : “많은 음악 학교에서 피아노 두 대로 지휘자 훈련을 시킨다. 끔찍하다. 작은 규모라도 실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해볼 수 있어야 한다.”(※그는 워크숍을 위해 매번 오케스트라 연주자 20여명을 모집한다.)

소규모 오케스트라와 한 달에 한 번 꼴로 지휘 워크숍을 여는 파눌라. 김호정 음악에디터

Q : 수많은 스타 지휘자를 어려서부터 가르쳤다. 그들은 처음부터 달랐나?
A : “즉시 알아챌 수 있다.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차분하고 통제돼 있는 사람들이다. 무엇보다 오케스트라를 돕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지휘는 같이 호흡을 맞추면서 음악을 완성하는 앙상블 연주와 비슷하다.”


Q : 메켈레 같은 유명 지휘자들의 시작은 어땠나.
A : “내가 가르친 모든 지휘자는 다 달랐다. 12살쯤 나와 공부하기 시작한 메켈레는 이미 첼로를 통해 음악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악보 공부를 상당히 열심히 했으며 오랫동안 연습했다.”


Q : 제자들 나이에 제한은 없나?
A : “11세부터 내게 배운 한 아이가 이제 13세인데 지휘대에서 할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나는 제자들에 어떤 제한도 두지 않는다. 나이가 많아도 지휘를 배울 수 있고, 전 세계 어느 지역에서 와도 음악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Q : 10대에 오케스트라 작업이 쉽지는 않다.
A :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음악뿐 아니라 문학, 오페라, 발레, 회화, 문학, 역사를 알아야 한다. 특히 역사가 가장 중요하며 정말 많이 읽어야 한다. 요즘 음악가들은 시간이 없다며 책을 읽지 않아 안타깝다.”

파눌라는 핀란드 투르쿠·헬싱키, 덴마크 오르후스에서 오케스트라를 맡아 지휘자 경력을 시작했다. 40대부터는 헬싱키의 시벨리우스 음악원에서 지휘자들을 길러냈고, 현재 교육하는 곳은 2014년 설립한 파눌라 아카데미다.


Q : 어떻게 지휘 교육자라는 사명을 발견하게 됐나.
A : “지휘하며 늘 궁금한 것이 많았다. 연구하고 경험해 찾은 답을 알려주는 일은 자연스러웠다. 질문이 많은 사람이 진짜 지휘자가 된다. 아무리 학생들에게 궁금한 건 물어보라고 말해도 요즘은 질문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문제다.”

그가 인터뷰에서 언급한 13세 제자는 리투아니아계 핀란드 국적의 아리우스 세레스키스. 내년 덴마크 오덴세 심포니와 무대에 오른다. 10대 초반에 정식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이례적인 장면이다.





김호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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