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에 7만8058종이나 된다. 대한출판문화협회에 납본 접수된 도서를 기준으로 삼으면 2025년에 한국에서 출판된 책의 종수가 그렇게나 많다. 모든 책이 단독 저서가 아니라는 점, 썼음에도 이런저런 이유로 출간되지 않은 경우까지 감안하면 정말 많은 사람이 글을 쓰고 있다. 인간은 글을 왜 쓰는 것일까?
글쓰기 고민 끝에 일가 이룬 오웰
AI 글쓰기에 오웰식 고뇌는 없어
고민 없는 쓰기는 퇴행 불가피해
조지 오웰(사진)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서 그 이유를 물었다. 똑똑해 보이고 싶은 욕망 때문에 글을 쓰는 사람도 있다.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이나 문장 자체의 묘미를 발견하려는 심미적 열정 또한 글을 쓰는 이유이다. 진실한 사실을 발견하여 후세에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글을 쓰게 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지향해야 할 사회를 꿈꾸며 세간의 생각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쓰기는 적절한 수단이다.
글을 쓰는 네 가지 동기는 서로 견제한다. 네 가지 동기 사이의 긴장이 사라진 채 글을 쓰면 퇴행은 불가피하다. 자기 과시가 지나친 글은 전달하려는 뜻을 오히려 불투명하게 만든다. 아름다운데 알맹이가 없는 글은 읽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든다. 사명감에 사로잡혀 기록될 가치 여부도 묻지 않고 기록하기 위해 쓰고 있다면 맹목적이다. 세계에 영향을 끼치겠다는 욕구만 남은 문장은 선동문을 벗어나지 못한다. 네 가지 동기가 글 속에서 팽팽한 긴장을 유지할 경우, 그 긴장 속에서 시대를 뛰어넘어 기억되고 언급되는 고전이 탄생한다.
“왜 쓰는가?”라는 질문은 작가라면 피할 수 없는 업(業)이다. 인간 작가는 이 질문에 답을 내리며 고통스럽게 문장을 짓기에, 그 생산량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2025년, 단 3개월 동안 무려 115권의 책을 써낸 작가가 등장해 충격을 주었다. 한 출판사는 1년 남짓한 기간에 9000여 종의 책을 쏟아내기도 했다. 이 경이로운 다작(多作)의 비밀은 인간의 사유가 아닌 생성형 AI라는 글 쓰는 기계에 있었다.
우리는 글 쓰는 사람을 작가라 부른다. 너무 흔하게 쓰여 그 무게를 잊기 쉽지만 작가란 단순히 문장을 나열하는 기술자가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사유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풍성하게 키워내는 창조적 권위를 가진 존재다. 작가는 단순히 글을 쓴다고 오를 수 있는 경지가 아니라 “왜 쓰는가” 묻고 또 물으며 나름의 일가를 이룬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명예 호칭이다.
세상은 변했다. 표지의 저자란에 ‘제미나이 저(AI 생성)’ ‘인문출판 에디팅팀’과 같은 표기가 등장하는 책도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어는 글을 쓰는 행위(write)와 무엇을 사용하는 행위(use) 모두를 ‘쓰다’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기에 1946년 오웰의 질문은 2026년 오늘, “왜 생성형 AI를 ‘써서’ 글을 ‘쓰게’ 하는가?”라는 중의적인 물음으로 변모한다.
한국은행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 63.5%가 생성형 AI를 사용하는데, 이는 미국(26.5%)의 약 2배에 달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싱크탱크 AI 경제연구소가 발표한 AI 확산 보고서에 따르면 AI 활용 누적 성장률은 2024년 10월 이후 80%로 세계 평균(35%)과 미국(25%)을 압도한다.
AI는 거대 언어 모델의 데이터를 증류(Distillation)하여 효율적으로 요약하며 글을 쓴다. 증류의 과정에서 오웰식의 고뇌는 생략된다. 왜 쓰는지 묻는 시간 대신 AI는 데이터를 신속하게 처리할 뿐이다. 생성형 AI를 써서 글을 쓰게 하는 것은 시간 절약을 위한 유일한 치트키이자 가장 손쉽게 효율성의 극치에 도달하는 방법이다. 빠른 시간 안에 요구되는 문서를 대량생산해야 하는 압박에 시달리는 사무직 노동자에게 유일하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탈출구는 기계에게 글을 써달라고 요청하는 프롬프트 작성이다.
추진 배경 및 목적, 프로그램 개요, 세부 일정 및 운영 결과, 운영 성과, 문제점 및 개선 방안을 남김없이 작성해서 1주일도 채 안 되는 시일 내에 제출하라는 이메일을 받은 날, 나 역시 AI에게 각 항목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굳이 이렇게까지 속도전으로 글을 쓰라고 요구해야 하는지 그 ‘까닭’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지만, 몸은 하나인데 마감 기일을 놓치지 않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다들 그렇게 쓰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