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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이란전쟁이 키운 지정학의 변동성

중앙일보

2026.03.25 08:12 2026.03.25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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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당대 최고의 전략가라 해도 눈앞의 위기가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전망하기란 쉽지 않다. 필자는 2002년 미국 국가안보전략(NSS) 집필에 참여했는데, 이 전략서는 당시 9·11 테러로 테러리즘이 최대 도전 과제이자 주요 강대국 간 협력의 동인이라고(필자는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정의했다. 결론적으로 오판이었다. 혼돈에 직면한 인간은 논리를 찾지만 당면한 충격에 매몰돼 해당 사건의 역사적 의미를 실제보다 크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중·러·북·이란 연대 한계 드러나
미-유럽 관계엔 지속적인 악재
미, 종전 후 아시아 회귀 재확인

그렇다면 현재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군사작전과 에너지 위기의 장기적 여파를 어떻게 전망해야 할까. 예단하긴 어렵지만 향후 여러 세대에 걸쳐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분명한 점은 경제, 정치, 지정학적 여파가 수년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먼저 이번 전쟁이 촉발한 에너지 위기는 전쟁의 전개 방향과는 별개로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이번에 공격받은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의 에너지 인프라 시설은 수년이 걸려야 복구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만을 지나가는 석유와 가스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이 붙고, 공급 다각화 수요가 높아지면서 시장의 심리적 여파는 이보다 훨씬 더 오래 갈 것이다. 전쟁 전 배럴당 72달러였던 유가가 올해나 내년 중에 그 수준으로 낮아지기는 어려워 보인다.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 선거에서 고물가가 주요 의제로 부상하고 있는 시점에 이는 국내 정치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다. 호주에서는 한때 비웃음을 샀던 소수 극우정당인 원네이션(One Nation)당이 28%의 지지를 받아 연립 야당의 지지율을 넘어섰다. 영국에서도 나이절 패라지 개혁당 대표의 인기가 높아져 지지율이 제1 야당 보수당을 넘어서고 있다.

미국에서는 보수 진영에 타격을 주고 있다. 트럼프의 지지율은 미국 역대 현직 대통령이 전쟁 초기에 받았던 지지율 중 최저치인 40% 수준을 보였다. 인플레와 경제에 대한 부정 여론이 41%에 달한다. 공화당은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 패배가 점쳐졌는데 이젠 상원마저 위태롭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을 차지하면 관세에서 이민에 이르기까지 트럼프의 모든 정책은 타격을 입는다. 호주와 유럽에서 극우가 힘을 얻고 있지만, 미국의 극우는 내부 분열과 지지 기반 약세를 겪고 있다.

이번 전쟁으로 인한 지정학적 영향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 전쟁 이전부터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CRINKs) 간 동맹 강화와 영향력 확대를 위한 거대한 흐름이 있었고, 이에 맞서 아시아를 위시한 미국 동맹국은 억지력 확보를 위해 더욱 공고하게 결속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으로 중·러·북·이란 간 협력이 약화됐고 집단 안보 수준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다. 표적 정보를 이란에 제공한 러시아는 에너지 가격 상승과 공급 안정화를 위한 느슨한 제재 덕에 뜻밖의 이득을 얻었다. 단기적으로 이는 우크라이나와 유럽 안보에 위기일 수 있다. 중국은 보다 조심스럽게 접근 중인데 아마도 자국 유조선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고 있는 데다 전쟁이 끝나면 페르시아만 국가들이 재건과 시장 접근을 위해 중국의 문을 두드릴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란군의 역량과 전략적 영향력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점은 중·러에도 악재다. 특히 전쟁 후 미군 자산이 다시 아시아로 집중되면 더욱 그렇다. 일각에서 말하는, 이란 전쟁으로 미국의 ‘아시아로의 회귀’ 정책은 끝났다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 이란 전쟁은 무엇보다 미-유럽 관계에 큰 타격을 입혔다. 나토 동맹국은 트럼프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와 유럽 혐오 정책으로 이미 분개한 상태였다. 트럼프는 개전에 앞서 나토와 협의하지 않았고 이란전쟁은 유럽 경제와 안보에 지속적인 악재로 작용할 것이다.

아시아 동맹국들은 미국의 관심과 군 자산이 중동으로 집중되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3월 19일 개최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아시아 동맹국과의 굳건한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트럼프에게 분쟁의 조기 종식과 에너지 위기 수습을 요청했다. 중국이나 북한이 동맹 간의 ‘파열음’을 기대했다면 실망했을 것이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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