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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장관 행차에 L당 10원 인하…‘주유소 암행어사’가 놓친 것

중앙일보

2026.03.25 08:16 2026.03.25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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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성 경제부 기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의 한 직영 주유소를 찾았다. 13일 최고가격제 시행 대비 휘발유 가격을 올린 200개 주유소 중 한 곳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김 장관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했다”며 강도 높은 비판도 함께 내놨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가운데)이 지난 19일 서울 송파구 주유소를 방문해 가격 인상 배경 등을 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산업부는 이날 김 장관이 방문한 주유소가 얼마나 가격을 올려 받았는지는 알리지 않았다. 관련 내용을 질의하자 “가격 인상 폭이 공개되면 주유소가 특정될 수 있다”고만 했다. 장관이 직접 현장까지 찾아가 호통을 쳤음에도 구체적인 ‘죄목’은 밝히지 않은 셈이다.

김 장관이 찾은 주유소는 얼마를 올렸을까. 송파구 일대 직영 주유소 중 14일 가격을 올린 곳은 2곳뿐이다. 이 주유소들은 13일 판매가격보다 각각 L당 8원, 10원씩 가격을 인상했다. 판매 가격은 각각 1816원과 1818원이다. 해당 일자의 서울 지역 평균 14일(1868원)보다 50원가량 싸다. 이들 주유소는 김 장관 방문 후 가격을 다시 15원과 10원씩 내렸다.

가격 통제는 정부 입장에서는 달콤한 정책이다. 당장 눈에 보이는 가격표를 낮추다 보니 국민 입장에서는 체감도 크다. 중동사태가 터지자마자 가격을 올린 정유소와 주유소에 경종을 울리는 ‘사이다 정책’이기도 하다. 마침 이날 김 장관의 현장 방문도 17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관련 행보를 칭찬한 후 나온 세 번째 방문이었다.
중동 사태 장기화에 국제유가와 원료가격이 계속된 상승세를 보인 25일 서울 시내의 한 주유소의 모습. 뉴스1

하지만 지금 장관이 직접 상대해야 할 대상이 과연 L당 10원 올린 주유소일까? 가격은 초과수요 또는 공급을 없애 시장의 균형을 유지해주는 신호 역할을 한다. 정부의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이런 신호 기능이 무뎌지면 위기 때 수급 불안 등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된다.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가 시장에 내는 신호의 엇박자다. 정부는 25일부터 공공부문 차량 5부제를 시행했다. 2011년 이후 15년 만이다. 이란전쟁의 여파로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 수급에 비상이 걸려 수출 제한 조치까지 시행된다. 한쪽에서는 수급 위기라며 비상조치를 쏟아내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장관이 주유소 가격표를 단속하며 수요를 떠받치는 모순이 벌어지고 있다.

산업부 장관은 에너지 수급을 안정시키고, 기업 피해를 줄일 근본 해법을 찾아야 하는 자리다. 이번 위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와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때 가스 쇼크를 합쳐 놓은 수준이라고 한다. 산업부 장관이 ‘주유소 암행어사’처럼 L당 10원 올린 주유소를 단속하는 데 시간을 쏟는 사이 더 큰 위기가 이미 눈앞에 닥쳐와 있을지 모른다.







안효성([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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