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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기업] 노지 스마트농업, 이젠 선택 아닌 필수

중앙일보

2026.03.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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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

자동 물관리, 병해충 예찰·방제 등
안정적인 생산, 노동력 절감 이뤄

농촌진흥청이 최근 기후변화, 농가 인구 감소 등의 악재를 극복하기 위해 노지 스마트농업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사진은 전국 50개소(2025년 기준)에서 무굴착 땅속배수에 도입된 ‘지하 수위 제어 시스템’. [사진 농촌진흥청]
기후변화가 농업의 전제를 바꾸고 있다. 가뭄과 집중호우, 이상고온, 병해충 확산이 반복되면서 노지 농업의 불확실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시설원예와 달리 외부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어려운 노지 농업(논·밭 등 자연환경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방식)은 기상 여건에 따라 생산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여기에 농촌 고령화와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이제 노지 농업도 스마트화 없이는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노지 스마트농업의 필요성은 숫자로도 명확히 드러난다. 국내 전체 농경지의 94.8%가 노지인 데다, 농가인구는 2018년 232만 명에서 2024년 200만 명으로 줄었다. 반면 농가당 평균 경지면적은 1990년대 1.19ha(1만1900㎡)에서 2024년 1.55ha(1만5500㎡)로 늘었다. 농사지을 사람은 줄어드는데, 한 사람이 관리해야 할 면적은 넓어진 것이다.

결국 노지 스마트농업은 단순한 효율화를 넘어, 부족한 노동력으로 넓은 농지를 관리하고 기후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인 생존 전략으로 떠오르고 있다.

병해충 방제에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AI트랩’.
이런 흐름 속에서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National Institute of Crop and Food Science)은 노지 스마트농업 기술 고도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자동 물관리와 병해충 예찰·방제, 잡초 관리, 자율주행 농기계까지 개별 기술을 하나의 체계로 묶어 노지에서도 안정적인 생산과 노동력 절감을 동시에 끌어내겠다는 구상이다.

사실 노지 스마트농업은 시설 스마트농업보다 기술적 난도가 높기 때문에 기술을 바로 현장에 적용하기에 앞서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 국립식량과학원은 2021년부터 경남 밀양 밭작물개발부에 ‘노지 스마트농업 콩 성능시험장(테스트베드)’을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자동관수, 관비, 해충 무인 예찰, 드론 병해충 방제, 자율주행 트랙터 및 콤바인 키트 등 다양한 핵심 요소 기술들이 통합관제시스템으로 연결돼 있으며, 원거리에서도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제어할 수 있다. 시스템 활용 시 노동시간은 기존 75.8시간에서 34.1시간으로 55% 줄었다. 같은 면적을 관리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을 절반 이상 덜어낸 셈이다.



파종부터 수확까지 ‘원스톱’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2026년부터는 10ha(10만㎡) 규모의 대단위 들녘에서 ‘콩 전 주기 자동화 모델 구축’에 나선다. 스프링클러, 고랑관수, 땅속배수, 양분관리, 드론 예찰·방제, 자율주행 경운·파종, 자율주행 수확까지 전 과정을 유기적으로 연계한 완성형 모델을 선보일 예정이다. 검증된 기술은 들녘 단위의 스마트농업 모델을 완성하고 현장에 보급할 계획이다.

노지 스마트농업의 실용화를 앞당기기 위해 대학 및 산업체와 긴밀한 공동연구를 이어가며 드론 스테이션 기반의 영상 분석·진단 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추진 중이다. 양수분 관리 효율을 높이기 위해 실시간 양분 센서의 고도화와 스마트 스프링클러 관개 시스템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병해충과 잡초 관리 분야에서는 AI 트랩의 대상 해충 범위를 넓히고 성능을 개선하는 한편, 스마트 제초 장치 개발과 진단-방제가 연계된 드론 자동화 시스템 구축 기술개발도 병행하고 있다.

이러한 실용화 기술들은 농촌진흥청의 신기술 시범 사업과 연계돼 현장에 검증, 보급되고 있다. 지하 수위 제어 시스템 기반의 무굴착 땅속배수는 2025년 기준 전국 50개소(230ha)에서 운영 중이며 올해 9개소가 추가될 예정이다. 기상정보를 활용한 노지 밭작물 자동 관개 기술 또한 전국 34개소(55ha)에 도입된 데 이어 올해 10개소가 추가 운영된다. 아울러 기존 인력 의존형 조사를 대체할 해충 무인 예찰 AI 트랩도 지난해 6개소를 시작으로 올해 7개소가 추가 보급된다. 대규모 재배 농가의 스마트화 요구가 높은 만큼, 국립식량과학원은 들녘 단위 테스트 단지에서 검증된 모델을 향후 영농법인 등 실제 농업 현장에 적용하며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갈 계획이다.

노지 스마트농업 콩 성능시험장’에서 통합관제시스템에 연결돼 있는 ‘자율주행 트랙터’.


장비보다 ‘더 잘 연결된 데이터’가 좌우

현재 우리나라의 스마트농업은 기술적 과도기를 지나 ‘데이터 기반의 지능형 농업’으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다.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면서도 한국 특유의 집약적 농업에 최적화된 해법을 개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국립식량과학원은 미래 노지 스마트농업이 단순 자동화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현재 상태를 보고 미래를 예측하는 농업으로 전환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고, 한국 농업 현장에 맞는 노지 스마트농업을 확립하기 위하여 관련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노지 스마트농업의 미래는 ‘더 많은 장비’가 아니라 ‘더 잘 연결된 농업’에 달려 있다. 기후 위기 시대의 농업은 감으로 버티는 농업에서 데이터로 대응하는 농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앞으로의 승부처는 첨단 기술을 몇 개 더 얹느냐가 아니라, 농가가 실제로 쓰고 버틸 수 있는 현장형·저비용·대면적 통합 모델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 수 있느냐에 있다. 미래의 들녘은 더 넓어지고, 일할 사람은 더 줄어들 것이다. 그 변화에 가장 현실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이 바로 노지 스마트농업이다.



류장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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