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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m 한지 두루마리에 쓴 한국인 박사논문, 옥스퍼드대 박물관 영구 소장

중앙일보

2026.03.26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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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애슈몰린 박물관의 중국·한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인 옥스퍼드 대학의 셸라그 베인커 교수가 10m 길이 한지 두루마리에 쓰인 이진준 교수의 박사논문을 검토하고 있다. 박물관 측은 이례적으로 이 논문을 영구 컬렉션으로 구입, 소장했다. 사진 KAIST
길이 10m짜리 한지 두루마리에 출력한 한국인의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논문이 해당 대학 부속박물관에 영구 소장됐다. 논문의 내용만이 아니라 형식미까지 ‘컬렉션’ 대상으로서 가치를 인정받은 이례적인 사례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영국 애슈몰린 박물관이 이진준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의 옥스퍼드대 박사논문(2020년)을 구입해 영구 소장·전시한다고 26일 밝혔다. 애슈몰린 박물관은 1683년 옥스퍼드 대학 안에 설립된 세계 첫 대학 박물관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미켈란젤로 등 거장들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기관이 생존 작가의 박사논문을 컬렉션으로 구입한 것은 이례적으로 한국 현대 작가 가운데 최초라고 한다.

미디어 아티스트이기도 한 이 교수의 논문은 ‘빈 정원 – 어디에나 있는,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의 리미노이드 여행(Empty Garden – A Liminoid Journey to Nowhere in Somewhere)’이라는 제목이다. 조선시대 문인들이 마음속에 그리던 ‘의원’(意園·실제가 아닌 마음속에서 상상으로 가꾸는 정원) 개념을 현대 디지털 기술로 재해석한 작품이자 연구로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시대에 기술을 넘어 인간의 감각과 기억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를 탐구한다.

15세기 조선 산수화 두루마리 전통을 재해석한 10m 두루마리 형식의 박사논문[empty garden]이 15세기에 건립된 옥스퍼드대학교 유니버시티 교회(University Church of St Mary the Virgin)에 2020년 전시된 장면. 사진 KAIST
이 같은 개념을 논문 형식에도 반영해 길이 10m에 이르는 한지 두루마리 9매에 내용을 담았다. 논문을 읽으면서 이동하다 보면 동아시아 정원의 ‘거닐기’를 몸소 경험하게 된다는 콘셉트다.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움직이며 느끼고 사유하는 방식으로 설계됐다”는 게 카이스트 측 설명이다. 이 9매 가운데 1매가 애슈몰린 박물관에 영구 소장·전시된다.

일반적으로 옥스퍼드대 박사논문은 보들리언 도서관에 학술 자료로 등록되며, 이 교수의 논문 또한 디지털로 열람할 수 있다. 앞서 이 교수의 논문은 2020년 옥스퍼드대 순수미술 철학박사 심사에서 만장일치로 ‘수정 없음’ 판정을 받으며 학문적 성과를 인정 받았다. 이와 별개로 박물관 측은 이후 5년간 독립적 심의를 거쳐 논문의 예술·학술적 가치를 인정하고 구입했다고 한다.

애슈몰린 박물관의 중국·한국 미술 담당 큐레이터인 셸라 베인커 옥스퍼드대 교수는 “이진준 박사의 긴 사색적 두루마리는 재료와 기법, 그 안에 담긴 문화적·지적 지식의 폭과 깊이, 그리고 다양한 공간을 제시하는 복합적 구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측면에서 새로운 지평을 연다”고 평가했다.

이진준 교수는 옥스퍼드에서 논문을 쓰던 당시 다리 부상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며 ‘움직임과 멈춤’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소장과 관련해 “서구 지성사의 대표적 박물관에 보관되면서 한국을 비롯한 동양적 사유가 AI 시대의 새로운 감각 체계를 잇는 하나의 기준점으로 지속적으로 읽히고 논의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도 활동하는 이진준 교수는 영국 옥스퍼드대 철학박사를 취득한 후 KAIST에서 예술가로서는 처음으로 전임교수(문화기술대학원)에 임용됐다. 현재 옥스퍼드대 엑시터 칼리지 방문교수, 뉴욕대학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 KAIST
KAIST에서 예술가로서는 처음으로 전임교수에 임용된 이 교수는 현재 옥스퍼드대 엑시터 칼리지 방문교수, 뉴욕대학교 겸임교수로 활동하며 예술·기술·인문학의 융합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도 K팝 가수 지드래곤의 홍채 데이터 기반 우주 예술 프로젝트 ‘Good Morning, Mr.G-Dragon’, 분당중앙공원 AI 기반 미디어 심포니 ‘시네 포레스트: 동화’ 등의 작업으로 국내외 예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강혜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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