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들의 이 같은 댓글 수백 개가 달린 해당 쇼츠는 디즈니플러스의 무속인 서바이벌 예능 ‘운명전쟁 49’(이하 ‘운명전쟁’) 속 한 장면. 출연 무당들이 서로 점을 봐주던 중 ‘지선도령’이 아픈 가족사를 가진 ‘노슬비’에게 “많이 외로웠을 것”이라고 말하자, 노슬비가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해당 영상은 61만회 조회되며 다국적 댓글로 도배됐다.
한국의 무속 신앙 문화에 바탕한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힐링’ 콘텐트로 인식되며 해외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서양의 음침하고 공포스러운 ‘오컬트’ 정서와 달리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흥행 이후 K무속이 신선한 이색 문화로 여겨지면서다.
‘운명전쟁’의 경우 디즈니플러스 이용자 증가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시장 분석업체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지난 2월의 월간 활성 이용자수(MAU)는 295만 명으로, 운명전쟁 방영 전인 1월(245만 명)에 비해 20%가량 늘었다. 태국에선 오는 4월 열리는 출연진 노슬비, 매화도령 등 한국 무속인 4명의 팬미팅 티켓은 2분 만에 매진됐다. 디즈니플러스 코리아 관계자는 “본사 측에서 한국 ‘운명전쟁’의 흥행을 토대로 해외판 ‘운명전쟁’을 제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근 SBS와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기 시작한 무속 소재 드라마 ‘신이랑 법률사무소’는 첫 공개 바로 다음 주(3월 16~22일)에 비영어 쇼 부문 글로벌 5위에 올랐다. ‘신이랑…’은 점집이었던 상가에 법률사무소를 차리면서 귀신을 보게 된 변호사 신이랑(유연석)이 망자의 억울한 사연을 해결해 나가는 드라마다. 귀신에 빙의한 신이랑이 남겨진 가족을 위로하기도 한다.
K무속 콘텐트의 인기는 지난해 ‘케데헌’의 세계적 흥행에 힘입은 바 크다. 비교민속학회 정연학 학회장은 “‘케데헌’의 세계관을 통해 저승, 무당, 굿 같은 개념이 로컬 문화에서 인기 있는 글로벌 콘텐트 소재로 진화했다”고 말했다. 민용준 영화평론가는 “‘케데헌’은 서구식 엑소시즘과 한국 무속의 특성을 잘 섞은 스토리로, 무속 신앙을 오컬트 장르에서 판타지로 이동시켜 해외 팬들의 진입장벽을 낮췄다”고 평가했다.
전문가들은 악령을 퇴치하는 서구의 구마, 일본식 엑소시즘과 달리 K무속에는 특유의 ‘힐링 의식’이 차별화된 지점이라고 짚는다. 이승을 떠나지 못하는 귀신에겐 한 맺힌 사연이 있고, 해원(解冤·원통함을 풂)에 이르러야 편안히 저승으로 떠날 수 있다는 전통 무속신앙의 세계관 얘기다.
정 학회장은 “한국 무속신앙은 귀신을 악령이 아닌 사람으로 보는 특성이 강하다. 또, 강렬한 퍼포먼스와 소리를 동반하는 무속인의 굿이 통해 공동체적 카타르시스를 일으키며 위로를 한다는 점도 독특하다”고 설명했다. 민용준 대중문화평론가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엑소시즘은 악령을 퇴치하는 구마적 특성을 지니고, 일본 귀신도 악령에 가깝다는 점에서 한국의 무속 세계관은 독특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매력적인 MZ 무당의 등장도 무속 콘텐트의 장벽을 낮추는 요인 중 하나다. ‘운명전쟁’에선 20대 무당 노슬비, 이소빈, 매화도령, 소원아씨 등과 10대 무당 지선도령 등이 ‘젊음’ ‘패기’를 과시했다. 사실상 무당 역할을 하는 ‘케데헌’ 속 주인공 헌트릭스는 K팝 아티스트, ‘신이랑…’의 주인공 신이랑은 젊은 변호사란 설정이다. 천만영화 ‘파묘’(2024)에서 세련된 외모의 실력파 무당 이화림(김고은)과 온몸에 축경 문신을 새긴 야구선수 출신 무당 윤봉길(이도현)이 대중의 경계심을 옅게 만든 영향이 크다.
다만 무속에 대한 맹신은 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경우 법의학이나 심리학, 정신의학이 해결해야 할 영역에 대해 무속인에게 권위를 부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며 “제작진이 방송 시 무속의 영역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해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