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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의 뉴스터치] 나프타

중앙일보

2026.03.26 08:08 2026.03.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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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수 선임기자
중국 당송 교체기, 오대십국 중 하나인 오월의 역사를 기록한 『오월비사』에 무기체계 하나가 등장한다. “화유(火油)는 바다 남쪽 대식국에서 왔는데, 철통에 넣어 발사했고 그 불은 물을 부으면 오히려 더 강하게 타올랐다.” 위력을 강조해 사나울 맹(猛)을 붙인 맹화유를 쓰는 맹화유궤라는 무기다. 맹화유를 분사 장치로 뿜은 뒤 불을 붙여 적을 공격하는 일종의 화염방사기다. 앞서 7~8세기 비잔틴제국 해군도 비슷한 무기로 이슬람제국 함대에 맞섰다. 이 무기가 대식국, 즉 이슬람제국을 거쳐 중국에 전래했다. 물을 부으면 더 강하게 타오르는 맹화유가 오늘날의 나프타(Naphtha)다.

고대 페르시아인은 땅의 갈라진 틈에서 배어 나오는 검은 액체, 즉 원유를 가리켜 나프트라 했다. 현재 아랍어·히브리어 모두 기름을 나프트라 한다. 나프트는 그리스어로 넘어가 지금의 발음(나프타)으로 바뀐다. 원유 자체를 뜻했던 나프타는 18~19세기에 원유 중 휘발성 강한 액체성분으로 그 의미가 축소된다. 원유 정제 기술이 확립된 현재 나프타는 섭씨 30~200도에서 추출한 성분만을 가리킨다. 원유는 낮은 온도부터 액화석유가스(LPG)-가솔린-나프타-등유-경유-중유-아스팔트 순으로 추출한다.

나프타를 고온 분해해 에틸렌·프로필렌·벤젠·톨루엔 등의 성분 물질을 얻는다. 이들이 플라스틱과 비닐 등 합성수지, 나일론과 폴리에스터 등 합성섬유, 타이어 등의 재료인 합성고무 등의 원료 물질이다. 고옥탄가 휘발유·페인트 용제 등도 나프타 없이는 못 만든다. 나프타를 ‘산업의 쌀’로 부르는 이유다. 미국과 이란의 군사 충돌로 나프타 수급이 차질을 빚자 국제 시세가 급등했다. 석유화학업계는 일부 공장 가동을 멈췄다. 비닐 제품인 종량제 쓰레기봉투, 플라스틱인 포장용 음식 용기 등의 품귀나 가격 인상을 우려한 사재기가 벌어지고 있다. 정부가 나프타 수출을 제한하고 쓰레기봉투 등의 비축량이 충분하다고 알려도 그런다.

사재기는 자기실현적 예언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 거라 믿고 움직이면 결국 그게 쌓여 그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헛된 믿음의 악순환 고리는 끊어야 한다.





장혜수([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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