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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구조를 못 보는 우중, 구조를 허무는 독재

중앙일보

2026.03.26 08:18 2026.03.26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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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천하흥망 필부유책(天下興亡 匹夫有責)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의 흥망은 일반 국민이 좌우한다는 뜻이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일반 국민이 바로 우중(愚衆)이다. 우중이란 단순히 지식이 부족한 이들이 아니다. 스스로 사유하기를 포기하고, 지적인 성장이 멈췄음을 자각하지 못하는 집단이다. 그들의 치명적인 결함은 ‘구조’를 못 보고 ‘현상’에만 매몰된다는 데 있다.

시스템 파괴자들의 공통 매뉴얼
기존 시스템을 기득권으로 규정
사법부와 언론은 개혁대상 낙인
자신의 의지가 곧 법이 되는 체제

집을 보는 일에서, 인식의 단계가 낮은 사람은 화려한 조명과 벽지 같은 인테리어에 마음을 빼앗긴다. 하지만 집의 본질을 아는 이는 벽면 뒤에 숨은 골조와 하드웨어를 살핀다. 벽지에 곰팡이가 피는 현상이 있을 때, 우중은 그냥 거기에 새 벽지를 덧바를 뿐이다. 반면 인식의 단계가 높은 사람은 결로 현상이나 배관 누수 같은 구조적인 결함을 찾아내어 대처한다. 세상의 모든 거대한 힘은 현상이 아니라 구조에서 나온다. 지적이라는 것은 곧 현상이라는 소음 속에서 구조라는 신호를 추출하는 능력이다. 양파를 직접 심는 고된 노동보다 양파의 유통 구조를 장악한 자가 더 큰 부를 거두는 이치 또한 구조가 가진 압도적인 힘을 증명한다.

역사는 구조를 보지 못한 우중이 어떻게 국가라는 집의 기둥을 망가뜨리는지 증언한다. 로마 공화정이 대표적이다. 로마가 왕정을 타도하고 세운 공화제의 핵심은 권력의 분산과 임기 제한이었다. 그러나 자영농이 몰락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자, 대중은 복잡하고 지루한 법 절차(구조)에 진저리를 치고, 눈 앞의 굶주림과 분노(현상)를 해결해줄 단 한 명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갈구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그는 가난한 시민들에게 토지를 나누고 화려한 검투사 경기를 선사하며 대중의 구원자로 군림했다.

하지만 진정한 파괴자는 서두르지 않는 법이다. 카이사르는 단번에 왕관을 쓰는 악수를 두지 않았다. 그는 대중의 광적인 환호를 동력 삼아, 국가 비상사태에만 엄격히 허용되던 6개월 임기의 독재관직을 수단으로 삼았다. 본래 임기가 끝나면 평시 시스템으로 돌아가야 함에도, 그는 비상시라는 명분을 내세워 임기를 조금씩 늘려갔다. 결국 기원전 44년, 그는 종신 독재관에 취임하며 공화정의 숨통을 조였다. 사실상의 절대 군주에 등극하였다. 이는 집수리를 위해 고용된 목수가 기둥을 잘라 내어 자신의 의자를 만든 격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과격한 구조 파괴가 일어나는 동안에도, 원로원과 민회가 이 직위를 헌정하는 형식을 취했다는 것이다. 우중의 눈에 이 파멸적 과정은 정의롭고 순조로운 개혁처럼 보였다. 결국 시스템이 한 사람의 선의와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된 그 자리에서 시작하여, 로마는 공화정이라는 시민의 자부심을 잃고, 황제의 변덕에 운명을 맡기는 거대하고 부패한 관료 국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내리막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사에서 가장 민주적이라 칭송받던 바이마르 공화국이 합법의 탈을 쓴 나치즘의 광기에 무릎을 꿇은 사건은 더욱 정교한 구조 파괴의 사례다. 바이마르 헌법은 진보적이었으나,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제48조)이라는 치명적인 구조적 허점을 품고 있었다. 히틀러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실업에 시달리던 독일인들에게 강한 독일과 빵이라는 현상적 약속을 던졌다. 대중이 나치의 선동적 연설과 화려한 제복(인테리어)에 취해 있는 사이, 히틀러는 제48조를 디딤돌 삼아 의회의 입법권을 정부에 통째로 넘기는 수권법을 통과시켰다. 국가의 운영체제를 스스로 마비시킨 이 사건으로 사법권과 언론의 자유라는 최소한의 견제 구조는 증발했다. 구조가 사라진 빈자리에는 오직 광기 어린 지도자의 의지만이 남았고, 이는 인류사 최악의 비극으로 연결되었다.

이처럼 시스템을 파괴하는 자들끼리는 서로 시대를 초월하여 하나의 ‘매뉴얼’을 공유하는 것 같다. 첫째, 기존 시스템(구조)을 무능하고 부패한 기득권 카르텔로 규정하여 대중의 적개심을 극대화한다. 둘째, 복잡한 대의제 절차와 법적 검토를 발목잡기로 매도하며, 지도자와 대중이 직접 소통한다는 포퓰리즘적 현상을 강화하여 강력한 팬덤을 형성한다. 셋째, 감시 기관인 사법부와 언론을 개혁의 대상이나 적으로 낙인찍어 구조적 견제 장치를 무력화한다. 끝으로, 조작된 비상 상황을 근거로 임시 조치를 상설화하여, 예외 상태를 일상화하고, 자신의 의지가 곧 법이 되는 지배 체제를 고착시킨다.

결국 지적인 성찰 능력을 상실한 우중은 집이 예뻐지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화려한 벽지를 바르는 행위에만 몰두한다. 지도자가 미소를 지으며 집을 지탱하는 서까래를 뽑아 자신의 땔감으로 써버려도, 그 서늘한 진실을 깨닫지 못한 채 말이다. 구조를 보지 못하는 눈은 반드시 그 대가로 자신의 삶을 지탱하던 안전한 울타리를 잃게 된다. 그것이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가장 잔혹하고도 명확한 교훈이다.

최진석 새말새몸짓 기본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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