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이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초반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이란전쟁에서 이 나라의 지리적 요소에 발목을 잡힌 모습이다. 미국은 전쟁 초반 24시간 내에 AI로 1000개 표적을 타격했다며 자신만만하게 개전을 알렸지만, 이란이 호르무즈를 넘어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위협하고 나서자 퇴로가 더욱 좁아졌다. 19세기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이 동장군(추위·General Winter)에 막혔던 일과 비유해 미국은 ‘지리 장군(General Geography)’에 막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25일(현지시간) 이란 군소식통은 반(半)관영 타스님통신에 “적이 이란의 섬이나 영토에서 지상작전을 시도하거나 페르시아만·오만해에서 해상작전으로 이란에 피해를 주려 한다면 기습적으로 다른 전선을 열겠다”고 밝혔다. 이어 바브엘만데브해협을 지목한 뒤 “미국이 호르무즈해협에 대해 어리석은 조치를 하려 한다면 감당해야 할 해협이 하나 더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브엘만데브해협은 예멘과 지부티 사이에 위치한 홍해 남단의 관문이다. 전 세계 해상 원유 교역량의 약 12%와 상당량의 액화천연가스(LNG)가 이곳을 통과한다. 친이란 세력인 예멘 후티반군의 활동 영역이라 전장이 확대될 수 있다.
이로 인해 ‘최초의 AI 전쟁’을 시작하며 단기전 시나리오를 계획했던 미국이 고전적 개념인 ‘지리’ 앞에서 암초를 만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포린폴리시(FP)는 지난 23일 “이란의 전시 최대 이점은 지리”라며 “AI가 전술적 성공을 가져왔을지는 몰라도 산을 없앨 수 없고 좁은 해협을 넓힐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현재 이란의 가장 큰 협상 카드가 된 호르무즈해협이 대표적이다. 가장 좁은 지점이 약 39㎞인데 실제 유조선 항로 폭은 수㎞에 불과하다. 전 세계 원유 소비량의 약 20%, 해상 원유 교역량의 27%가 이 좁은 수로를 통과한다. 개전 직후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가 봉쇄를 선언하자 유조선 통행량이 70% 급감하고 브렌트유는 73달러에서 126달러까지 치솟았다.
해협을 완전히 장악할 필요조차 없다. 이란 해안선의 길이 때문이다. 이란의 해안선은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을 따라 약 2400㎞에 이어진다. 미국이 하르그섬 등 해협 요충지를 점령한다고 해도 넓은 수역에서 기뢰, 공격정 등을 얼마든지 투입할 수 있다. FP는 “이란이 약 400㎏의 농축우라늄 비축분을 잃더라도 해협에 대한 실효적 통제를 유지하는 한 전략적 패배로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후티반군이 나서 바브엘만데브해협까지 봉쇄되면 선박들은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야 한다.
이란이 험준한 산악국가라는 점도 중요하다. 서쪽과 북쪽에 각각 자그로스 산맥과 알보르즈 산맥이란 방패를 두고 있는 이란 땅은 동부 내륙으로 갈수록 험난해진다. 공중전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이란이 핵시설과 군 자산을 산악지대와 동부 오지로 분산해 놓은 이유다. AI로 위치를 찾고 표적을 설정해도 정밀타격이 어렵다.
FP는 “전쟁의 방법을 결정하는 건 기술이지만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지리”라고 평가했다. 이어 “1812년 러시아로 향하던 나폴레옹이 동장군을 마주한 것처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의 지리 장군과 인내 장군에 주춤하고 있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