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돈께(도니까) 피로가 싹 풀리네.” 지난 17일 경남 창녕군 부곡면 부곡온천관광특구(이하 부곡온천)에 있는 족욕장. 70~80대 어르신들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수온은 41도.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는 10여분 사이, 두 발은 불그스레 달아올랐다. 주민 이재만(70)씨는 “등에도 땀이 나네”라고 말하며 개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씨는 “여기 귀촌한 지 3년 됐는데 찌뿌둥하다가도 온천 한 번 하면 쌩쌩해진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 온천 휴양지인 부곡온천은 원수(原水) 온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78도를 자랑한다. 치유효과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말이면 서울 여의도 면적(2.9㎢)의 약 1.6배인 부곡온천(4.8㎢)이 휴양객들로 붐빈다. 온천수가 나오는 호텔은 빈 객실을 찾기 어렵다. 지난 한 해에만 창녕 인구의 약 55배인 300만명이 다녀갔다.
올해 경남도·창녕군은 부곡온천 일대를 ‘경남형 웰니스 은퇴자 마을’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은퇴자 마을은 주거와 의료·돌봄·문화·여가 등 여러 생활 편의시설을 한데 모은 노인 주거 복합단지다. 경남도는 부산·대구·울산 등 대도시와도 1시간대 생활권인데다 온천과 파크골프장·골프장(여가), 국립부곡병원(의료) 등 고령층 선호 시설을 갖춘 창녕이 은퇴자 마을 입지로 적합하다고 본다. 지난 4일부터 기본구상 용역에 착수했다. 김득년 부곡온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은퇴자는 물론 그들 자녀·손주가 찾아와 온천 등 휴양을 즐기면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처럼 최근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은퇴자 마을 조성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 17일 ‘은퇴자마을(도시) 조성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다. 내년 3월 법 시행을 앞두고, 정부가 하위 법령을 마련하고 사업 설명회와 공모를 진행하기까지 1년 가량 남았다. 지자체들은 ‘전국 1호’ 타이틀을 선점하려 일찌감치 전담 조직을 꾸리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소멸 위기를 겪는 지방에선 인구 유입과 지역 경제 활성화를 견인할 마중물로 기대해서다.
강원 춘천시는 주거·의료·돌봄 기능을 결합한 ‘춘천형 웰에이징 타운’ 조성 방안을 추진 중이다. 도심에서 대중교통으로 15∼20분 이내 접근할 수 있는 지역에 의료 인력을 배치하고 스마트 헬스케어를 연계한 은퇴자 전용 주거복합단지를 만드는 게 목표다. 지난해 전담 조직도 꾸렸다. 강원 원주시도 지역 강점인 첨단 의료 인프라를 결합한 ‘원주 은퇴자 맞춤형 미니 신도시’ 조성을 준비하려고 지난해 9월부터 기본구상, 입지타당성, 유치전략 등 3개 전문 용역을 동시에 추진했다. 충북 제천시·단양군은 청정 자연환경과 관광 자원을 활용한 은퇴자 마을 조성 계획을 수립 중이다.
육동한 춘천시장은 “춘천시는 전체 인구 22%가 고령인구인데 노인 주거복지시설은 2곳에 불과하다”며 “은퇴자 마을은 중장년에게는 미래 준비이고, 청년 세대에게는 부담이 아닌 희망이 되는 구조의 주거·생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은퇴자 마을은 갈수록 심화하는 고령화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우리나라는 2024년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 이상)에 진입했고, 국가데이터처는 2050년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40.1%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이 때문에 은퇴자 마을과는 별개로, 고령층의 전문 경력을 살리는 동시에 주거·돌봄 문제도 해결하려는 지자체도 있다. 경북도가 오는 6월 안동시에 완공하려는 ‘K-과학자마을’이다. 은퇴 과학기술인이 거주하며 연구도 할 수 있도록 2만8000㎡ 부지에 47개동 규모의 주거 단지를 조성한다. 에너지·IT·바이오·기계 등 과학기술 인력 40여명을 선정, 1인당 연간 4000만원의 연구용역비를 지급하고 주거 공간도 무료로 제공한다.
정연우 LH토지주택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낸 ‘은퇴자 주거복합단지 조성방안 연구’에서 “(노인이) 건강한 상태에서 간병이 필요한 상태까지 지속적인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며 “단순 노인주택이 아닌 의료·돌봄·문화·여가·생활지원 기능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복합 커뮤니티가 되려면 일정 규모 이상의 단지를 계획하고, 안정적인 의료서비스와 응급대응 체계 구비, 세대 간 교류와 평생학습이 가능한 문화공간 조성, 그리고 민관협력형 운영체계를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