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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절반은 텅 빈 검사실…"이미 파산지청 됐다" 눈물

중앙일보

2026.03.26 13:00 2026.03.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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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주요 지청의 검사 수가 정원의 50%에 달하며 검찰청이 극심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뉴스1
지방 형사사법 기능을 책임지는 전국 차치지청의 검사 인력이 정원의 절반 수준까지 급감했다. 무리한 특검 차출과 늘어난 퇴직 검사가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일선에서는 “파산지청이 됐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마저 나온다.

26일 중앙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국 10개 차치지청(차장검사를 둔 지방검찰청 지청) 안산·성남·고양·부천·천안·대구서부·안양·부산동부·부산서부·순천지청의 실제 근무 검사 수는 파견과 휴직자를 제외하고 총 213명에 불과했다. 이는 전체 정원(383명)의 55% 수준이다.

특히 대전지검 천안지청과 수원지검 안양지청 등 일부 지청은 실근무 인력이 정원의 50% 이하로 떨어졌다. 천안지청은 정원 35명 중 실제 발령 인원이 27명이었으나, 특검 파견과 휴직 등으로 10명이 빠져 실근무자가 17명뿐이다. 설상가상으로 곧 초임 검사 2명이 사직하고 1명이 휴직해 14명으로 줄어들 위기다. 안양지청 역시 정원 34명 중 17명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 현직 기관장은 “20여 년 검사 생활 동안 실근무 인력이 정원의 절반에 못 미치는 상황은 처음 본다”며 “검찰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김주원 기자
차치지청은 지검이 직접 관할하기 힘든 다수의 지방 도시 사법을 책임지는 핵심 기관이다. 예컨대 순천지청은 순천뿐 아니라 여수·광양·보성·구례·고흥 등 전남 동부권 전체를 관할한다. 검사 14명이 남게 될 천안지청은 인구 110만 명 규모의 천안·아산시를, 정원 절반만 근무하는 안양지청은 안양·군포·과천·의왕시(약 105만 명)를 책임진다. 인구 100만 명 규모 지역에서 발생하는 사건의 기소 여부 판단, 경찰 신청 영장 청구 검토, 공소유지 등 업무를 10여 명이 감당하는 실정이다.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과거에는 정원에서 5~6명의 결원만 생겨도 비상이 걸렸는데, 지금처럼 절반 가까이 빠지면 정상적인 청 운영이 불가능하다”며 “지방 지청의 붕괴는 단순히 검찰 조직의 허리가 무너지는 것을 넘어, 지방 의료 붕괴처럼 지역 사법 시스템 전체의 마비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초임으로만 채워진 검사실

단순한 인원 부족보다 뼈아픈 대목은 실무를 주도할 ‘허리 연차’ 검사들의 부재다. 안미현 천안지청 검사는 25일 페이스북에 “천안지청은 수사검사 8명, 공판검사 4명인데 이 중 초임 검사가 7명”이라며 “수사 검사 1인당 미제 사건은 이미 500건을 넘겼다”고 토로했다. 그는 “인간의 능력으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기 위안을 하다가도, 두통과 호흡곤란이 오고 침대에 누우면 저절로 눈물이 났다”며 과부하의 고통을 호소했다. 이어 “보완수사권을 남겨둔다해도 다 망가진 상황에서 할 수도 없다"며 "보완수사권을 남김없이 거둬가라”고 덧붙였다.

다른 현직 검사 역시 “지방에서는 당장 쏟아지는 미제 사건 처리에 급급해 보완수사권에 관심을 가질 여력조차 없다”며 “일선에서는 차라리 보완수사권이 없는 편이 낫다는 공감대마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한 차치지청장은 “횡령·배임 등 복잡한 경제 범죄는 경험 풍부한 검사가 맡아야 하지만 현재 그런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연차 있는 검사들은 모조리 파견을 가고, 빈자리를 초임과 경력검사로 숫자만 채우고 있어 양적 부족보다 질적 공백이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지청보다 큰 특검…공소유지에만 수십 명 차출

최악의 인력난을 부른 핵심 원인으로는 이른바 ‘특검 블랙홀’이 꼽힌다. 현재 3특검, 상설특검, 2차 종합특검 등 5개 특검에 파견된 검사만 67명에 달한다. 정경유착 합동수사본부 파견 인력까지 합치면 약 80명의 핵심 연차 검사들이 현장을 떠났다.

수사 종료 후 공소유지(재판) 단계에서도 파견 검사를 새로 충원하며 대규모 인력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이 나온다. 현재 공소유지 중인 내란특검과 김건희 특검에는 각각 23명, 순직해병 특검에는 8명이 파견 중이다. 단일 특검팀 규모가 인구 100만명을 관할하는 웬만한 차치지청 실근무 인력을 압도하는 구조다.

      김주원 기자
특검 파견 경험이 있는 한 검사는 “과거 특검은 수사 종료 후 한두 명의 파견 검사만 남아 특검보와 함께 공소유지를 담당했다”며 “지금은 주요 공판 때마다 당시 수사 검사가 직무대리로 투입되는데도 필요 이상의 인력을 상주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일선 지검의 살인적인 업무 강도를 견디지 못한 검사들이 특검을 ‘피난처’로 삼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올해 사직 검사만 최소 60명… 엑소더스 가속

검사들의 줄사직은 인력난을 가중하는 또 다른 악재다. 올해 들어 최근까지 수리된 사직서만 58건으로 집계됐다. 사직이 임박한 천안지청 검사들을 포함하면 이미 60명 이상이 현장을 떠난 셈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지난해 기록한 역대 최다 사직 규모(175명)를 올해 가뿐히 넘길 것이라는 위기감이 높다.

한 현직 부장검사는 “검찰청 폐지 논의로 사명감은 바닥에 떨어졌고, 가중되는 업무를 견디다 못해 사직하면 남은 인력의 부담이 다시 커지는 악순환에 빠졌다”며 “과거에는 선배들이 방향성을 제시하며 사직을 만류했지만, 지금은 도저히 말릴 수조차 없는 참담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석경민.정진호([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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