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닫기

"물은 왜 위부터 얼까"…영하 70도서 수십년 미스터리 풀렸다 [팩플]

중앙일보

2026.03.26 13:00 2026.03.26 13:22

  • 글자크기
  • 인쇄
  • 공유
글자 크기 조절
기사 공유
‘물은 왜 보통의 액체와 달리 위부터 얼까.’
일반인들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이 현상은 과학계에선 수십 년째 그 근본적인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미스터리였다. 김경환 포항공대(포스텍) 교수 연구팀은 지난 10년간 끈질기게 매달린 끝에 이 난제를 풀었다. 학계에서는 이번 연구 결과가 교과서 내용을 바꿀 만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김경환 포항공대 교수 연구팀이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X선 자유전자 레이저’(포항 4세대 가속기)를 이용해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관측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김경환 교수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김 교수 연구팀이 스웨덴 스톡홀름대 앤더스 닐슨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지에 27일 게재됐다.



과학자들에게 가장 이상한 액체 ‘물’

우리에게 익숙한 물은 과학자들에겐 ‘가장 이상한 액체’다. 특히 보통의 액체는 밑 부분부터 어는 반면, 물은 위부터 언다. 물이 이런 독특한 특성을 가지게 된 원인은 물이 4℃에서 가장 무거운 성질을 가져서다. 차가운 공기에 닿은 표면의 물은 4℃가 되면 무거워 바닥으로 내려가고, 표면에는 가벼운 0℃의 물이 올라오면서 위부터 얼게 되는 거다.

과학계에선 이런 현상의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유력하게 제기됐던 게 ‘액체·액체 임계점’ 가설이다. 겉보기엔 모두 똑같아 보이지만 물은 무거운(고밀도) 물과 가벼운(저밀도) 물이라는 두 종류의 상태로 공존하며, 특정 온도(임계점)에 도달하면 그 차이가 사라진다는 가설이다. 학계에서는 물의 수수께끼 같은 성질들의 근원이 이 임계점 근처에서 발생하는 영향력 때문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 임계점이 존재한다면 영하 40~70℃ 사이 어딘가에 존재할 것으로 예측했다.



영하 70℃에서도 얼지 않은 물 만들어 측정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임계점을 실제 관측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문제는 물은 영하 40℃ 이하에선 매우 빠르게 얼어버리기 때문에 실험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연구팀은 높은 압력에서 제조된 비정질 얼음(액체처럼 무질서한 분자 배열을 간직한 얼음)을 적외선 레이저로 가열해 영하 60~70℃에서도 얼지 않은 상태의 물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서 실마리를 찾았다. 이때 만들어진 10억분의 1g에 불과한 극저온의 물은 100만 분의 1초 안에 얼어버리기 때문에 연구팀은 10조분의 1초 단위로 분자의 움직임을 측정할 수 있는 ‘X선 자유전자 레이저’(포항 4세대 가속기)를 이용했다. 찰나보다도 짧은 순간에 물의 구조를 측정해 낸 비결이다. 그 결과 연구팀은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이 영하 60℃ 부근에 있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10년간 ‘물’ 미스터리 푼 교수

김 교수는 지난 10년간 이 문제를 풀어왔다. 2017년엔 영하 45℃ 이하에서도 얼지 않은 물을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고, 2020년에는 영하 70℃에서도 물이 고밀도와 저밀도 두 개의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김 교수는 “누구나 익숙하다고 생각한 물의 특성을 그 누구도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에 끌려 10년 전 물 난제 풀기에 도전하게 됐다”며 “임계점을 찾는 과정은 마치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김경환 포항공대 교수

김 교수는 앞으로 임계점을 더 정밀하게 밝혀내는 후속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현재 연구팀이 밝혀낸 임계점은 ‘영하 60℃±8℃’인데, 이 오차 범위를 더 좁혀나는 게 목표다. 이번 연구 결과는 물이 생명 현상에 필수적인 물질이 된 근원을 규명하고, 물의 성질을 이용한 기후 변화·생체 분자 등 기초·응용 연구의 정확성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김 교수는 “산업 현장이나 연구실에서 물의 특성을 활용한 공정과 연구에서 정확도를 궁극적으로 향상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기초 연구 성과가 가져올 파급력은 현시점에서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강광우([email protected])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