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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실적 좋을까봐 걱정" 정유사의 아이러니한 고민 왜

중앙일보

2026.03.26 13:00 2026.03.26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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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내 유가가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이 정유사들의 담합 정황을 포착하고 강제수사에 나섰다. 지난 23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는 이날 오전 SK에너지, GS칼텍스, 에쓰오일, HD현대오일뱅크 등 4개 정유사와 사단법인 한국석유협회를 압수수색했다. 사진은 서울 시내 주유소 모습. 연합뉴스
“화살을 여러 개 한번에 맞고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어떡하겠어요. 최선을 다해 협조하는 수밖에요”


26일 국내 정유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정유업계를 둘러싼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이스라엘-이란 전쟁으로 원유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는 가운데 ▶가격 제한 ▶나프타 수출 제한 ▶검찰 수사 등 정부의 제제 수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유사는 전쟁통에 기름값이 올라 돈 번다’는 분위기에 사정을 터놓기도 쉽지 않다.

산업통상부는 27일 0시부터 2차 석유 최고가격제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지난 13일에 이어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경유 등의 도매가 상한선을 지정해 가격을 통제하는 방식이다. 최고가격제로 인한 정유사 손실은 정부가 분기 단위로 사후 보전하기로 했지만 정유사 속내는 복잡하다.

한 정유사 관계자는 “손실 보전을 한다해도 당장은 정유사가 떠안는 액수가 어마어마하다”며 “원윳값뿐 아니라 보험료·운송비도 올랐고, 회사별 설비 구조가 모두 달라 손실을 쉽게 산정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데 어떻게 이를 따질지 걱정”이라고 했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고가격제는 짧은 기간과 명확한 종료 조건이 전제돼야 한다”며 “정책이 장기화할 경우 재정 보전 확대로 소비자를 비롯해 모두가 부담을 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 사태 장기화로 비닐과 플라스틱 원료가 되는 나프타 등 석유화학 제품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정부는 26일 종량제 봉투를 '핵심 관리 품목’으로 지정하고 지자체와 합동 상황반을 구성해 수급 상황을 상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사진은 26일 서울 시내 한 종량제 봉투 자판기의 모습. 뉴스1
정부는 정유사의 나프타 수출을 제한하는 고시도 27일부터 시행한다. 비닐 등 생활필수품의 기초 원료인 나프타 수급이 불안해지자 수출을 제한해 국내 공급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수출 제한으로는 나프타 수급 개선 효과가 크지 않을 수 있다고 본다. 애초에 수출량 자체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나프타 수출량은 약 3423만 배럴로 국내 생산(약 2억9336만 배럴)의 11.7%에 그쳤다. 반면 나프타 수입량은 약 2억3754만 배럴로 전체 내수(약 4억3460만 배럴)의 54%에 달했다. 업계 관계자는 “수출하는 나프타는 중질 나프타로 국내에서는 수율 등의 이유로 크게 활용하지 않는 잔량”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정유4사(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 담합 수사도 정유업계의 큰 부담이다. 지난 23일 시작된 압수수색에는 정유 4사의 대표를 포함해 주요 임원진들의 휴대전화 수십여대가 포함됐다고 한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수사 결과와 별개로 장기간 ‘담합 의혹’ 프레임에 묶일 수 있다는 점 자체가 위기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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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유사들은 올해 1분기 실적이 ‘좋을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 유가 급등으로 과거 저렴하게 구매했던 원유의 ‘재고평가이익’이 커지면서 회계상 정유사 수익은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장부상의 이익이다. 이번같이 원유 수급이 불안으로 유가가 오를 경우, 정유사들은 미국·러시아 등에서 원유를 급하게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과도한 웃돈(프리미엄)에 운송 거리에 따른 운임비 증가가 불가피하다.


한 정유업계 관계자는 “전쟁인데 높은 영업이익이 발표되면 횡재세 논의로 번질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한국이 동남아처럼 정유사가 없거나 외부 의존도가 높았다면 산업 악영향이 더 컸을 것”이라며 “정유사들이 맡는 국가 에너지 인프라 역할도 있는데 비난의 대상으로만 비칠까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말했다.

다른 정유업계 관계자는 “원윳값이 오른 것은 맞지만, 환율도 같이 올라 비용이 더 들었고,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판매 가격에 영향을 받으니 실제로 정유사가 얼마나 이익을 봤는지는 따져봐야 한다”며 “설령 전쟁이 곧 끝난다 해도 중동 설비와 감산량 복원에 시일이 필요해 회복이 쉽지 않을 것”이라 말했다.



이수정([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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