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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의 기쁨과 희망] 탐욕과 욕망의 민낯

중앙일보

2026.03.26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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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탐욕과 욕망의 인류는 다시 한번 전쟁을 일으키고 말았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인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격에 만족하지 못하는 인류는 전쟁의 구렁텅이에 또 떨어지고 말았다. 미국은 연초부터 베네수엘라에 군사적 정밀 공격을 감행하더니, 이번에는 이란이다.

이번 미국과 이란 전쟁의 중심에는 인공지능(AI)이 있다.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 이제는 인간을 더 빠르고 더 효율적으로 죽이는 계산을 한다. 위성사진과 데이터 분석을 통해 표적을 찾고, 공격 시나리오를 시뮬레이션한다. 자폭 드론이나 미사일은 스스로 날아가 사람을 죽였다. 이제 전투기 조종석에는 조종사가 아닌 AI가 앉아 있다. 전쟁은 AI 신무기의 박람회장이 되었다. 몇 시간 만에 수십 차례의 정밀 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분명 놀라운 능력이다. 그러나 그 능력이 인간의 생명을 겨누는 순간, 우리는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인간성의 후퇴를 목격한다.

전쟁 일으킨 미국도 흉측하지만
주식계좌만 챙기는 우리도 추악
탐욕 이기는 힘은 우리에게 있어

더욱이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보이는 미국의 민낯은 흉측하다 못해 괴기스럽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전쟁 개시의 명분으로 세계 평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수호를 들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는 마약 밀매 혐의로, 이란에는 핵 개발을 들어 전쟁을 일으켰다. 설령 그것이 미국에 대한 커다란 위협이라고 쳐도, 모든 과정이 너무나 즉흥적이다. 동맹국에도 전쟁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알려주지 않아 중동을 찾아간 우리 여행객들이 급하게 짐을 싸고 나오는 모습은 우리가 알던 미국과 너무나 다르다. 이란을 폭격하고는 “그냥 재미로(Just for fun)” 더 공격할 수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섬뜩함이 느껴진다. 군대 안 간 대통령은 총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모른다.

흉측한 건 미국만이 아니다. 이번 전쟁에는 우리의 추악한 탐욕이 있다. 사람들은 이란의 학교와 가정집에 떨어지는 폭탄에 가슴 철렁하지 않고, 내가 가진 주식이 전쟁으로 떨어지면 밤잠을 설쳤다. 사람들은 전쟁을 멈추라고 소리쳤지만 인류 평화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전쟁으로 녹아내리는 내 돈을 위한 기도였다. 이란의 초등학교에 미사일이 떨어져 꽃다운 나이의 어린 여학생들이 목숨을 잃어도 나의 주식계좌만 성장할 수 있다면야 모든 게 괜찮다. 가족을 잃은 이의 피눈물 위에서 나의 행복을 찾는다면, 우리는 트럼프와 무엇이 다른가.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투자는 경제적 의미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미도 지닌다고 말한다(회칙 ‘진리 안의 사랑’). 투자가 단순히 경제행위로만 보여도, 투자도 결국 인간의 일이기에 윤리적이어야 한다. 아무리 돈이 좋다고 양심까지 팔지 말자는 말이다. 더욱이 자본이 국경을 넘나들며 투자가 이루어지는 지금, 투자를 통해 기업 활동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소비자 불매 운동처럼 투자로 기업에 압박을 가할 수 있다.

인간을 파괴하는 탐욕의 기업과는 손절하겠다는 것을 투자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 산업 기업이나 낙태·배아 줄기세포 연구 등 생명 존중을 하지 않는 제약·바이오 기업은 투자 종목에서 배제해야 한다.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반인권 기업이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기업에도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공동의 집 지구를 지키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는 에너지 기업에는 투자하지 말아야 한다.

중동 전쟁은 우리가 말하는 번영과 발전의 바탕에는 여전히 화석연료를 포함한 에너지 중독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석유를 포함하여 천연가스·석탄 등 여전히 우리 공동체는 화석연료를 통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움직인다. 더욱이 인공지능이 필요한 전기 생산을 위해 핵발전까지 사용하겠다는 인간이다. 후쿠시마의 참상을 보고서도 인류의 기억에 안전은 사라지고 탐욕이 자리 잡았다. 인류의 기반인 자연마저 대규모로 파괴해서라도 성장을 이루겠다는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그럼에도 탐욕과 욕망을 이기는 힘은 결국 우리임을 믿는다. 탐욕의 빵이 아닌 사랑의 진리를 선택한 이들이 희망이다. 너의 아픔을 우리의 아픔으로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사랑이다.

조승현 가톨릭평화방송 신문(cpbc)보도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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