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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향 "김정은·트럼프, 해결 의지 있었다"…하노이 '노딜' 내막

중앙일보

2026.03.26 15:58 2026.03.26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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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집권 1기 때 있었던 북ㆍ미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 통역을 맡았던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통역국장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워싱턴=김형구 특파원
2018~2019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 때 통역을 맡았던 이연향 전 미국 국무부 통역국장은 26일(현지시간) “회담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고 좋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지난달 말 퇴임한 이 전 국장은 이날 워싱턴 특파원과 간담회를 갖고 “두 정상 모두 굉장히 솔직했다. 진정성 있게 대화를 해 보려고 노력했고 솔직한 분위기였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관계는 좋았다’고 하는 말은 맞는 얘기 같다”고 했다.



“트럼프 많이 듣기도…말 많은 분 아닌 듯”

이 전 국장은 당시 대화를 누가 주도했느냐는 물음에는 “한쪽이 (말을) 많이 했다는 기억은 없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많이 듣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렇게 말이 많은 분은 아닌 것 같다”고도 했다.

이 전 국장은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ㆍ미 정상회담과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ㆍ미 정상회담, 그리고 같은 해 6월 판문점에서 성사된 ‘깜짝 회동’까지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 있었던 두 정상의 만남에서 모두 미국 측 통역사로 참여했다. 당시 두 정상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화를 전한 인물로 한국 국민에게도 친숙한 인사다.

버락 오바마 정부 때인 2009년 국무부에 통역관으로 입부한 이 전 국장은 16년 7개월간 재직하며 오바마 전 대통령, 조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대통령 등 미 최고위 인사들의 한국어 통역을 도맡았다. 굵직한 한ㆍ미 외교 현대사의 산 증인인 셈이다.



“딜 되고 안 되고는 또 다른 문제”

이 전 국장은 ‘노 딜’(합의 무산)로 끝난 하노이 회담 결과를 두고 “딜(합의)이 되고 안 되고는 두 정상만의 문제는 아니고 여러 가지 복합적 요소가 들어가야 하는 또 다른 문제”라며 “두 분(대화 분위기)은 괜찮았다”고 거듭 말했다. 특히 “두 정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을 해 보려는 생각도 있고 의지도 있었던 것 같다”며 “핵과 관련된 것 등 두 분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도 상당히 많았다”고 했다.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 카펠라 호텔에서 열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사상 첫 북ㆍ미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이 악수하는 모습을 북측 통역사 김주성, 미국 측 이연향 통역관이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싱가포르에서 열린 첫 북ㆍ미 정상회담을 회고하면서는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된 회담이다 보니 두 정상도 긴장하고 저도 긴장됐지만 회담을 편안하고 긍정적이며 차분한 분위기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김 위원장이 사실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에 나오는 것임을 알고 있어서 그런 생각을 했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또 “당시 김 위원장이 그렇게 대외 활동 경험이 많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대처를 잘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 회담서 김정은 대처 잘했다”

북ㆍ미 정상회담에 통역사로 배석하게 된 경험은 자신에게도 상당히 큰 의미가 있었다는 이 전 국장은 “두 정상이 만날 거라는 예상을 거의 못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니까 그런 발상의 전환을 해서 만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국장은 통역사로 일하면서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말을 통역할 때가 특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변호사 출신인 오바마 전 대통령의 발언은 하나하나가 법률 문서 같았고 문장 하나가 한 문단일 만큼 길었던 적도 많았다고 했다. 이 전 국장은 “그런 것에 익숙했던 분이니까 말을 하면서도 혹 공격을 받을 소지가 있다 싶으면 (말을) 붙이고 또 붙여서 아이디어를 완성하는 식이었다”고 전했다.



“오바마 말, 법률문서…트럼프 생각 속도 빨라”

트럼프 대통령 화법 스타일을 두고는 “여러 가지 다양한 생각을 많이 하고 생각의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고 했다. 이 전 국장은 “이 얘기를 하다가 제3자가 보기엔 비약을 해서 다른 주제로 넘어가곤 하는데 그때마다 연결고리가 분명히 있다”며 “제가 통역을 할 때는 그 연결고리를 집어넣어 듣는 분 입장에서 의미를 알 수 있게 힘썼다”고 말했다.

통역 과정에서 곤혹스러웠던 경험으로는 2013년 당시 조 바이든 부통령이 방한해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었던 적이 없었다(It’s never been a good bet to bet against America)”고 말한 것을 한국어로 옮겼을 때를 꼽았다. 이 전 국장은 “바이든 전 대통령이 자주 쓰는 표현이었는데 뉘앙스 전달이 쉽지 않았다”며 “너무 강하게 ‘미국의 반대편에 서지 마라’ 이렇게 전할 수는 없어서 저 나름대로 수위를 낮춰서 통역했는데 바이든 부통령이 한국을 향해 ‘중국 편에 서지 말라’고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논란이 됐다. 외교부에서는 통역 잘못이라 해 화가 나고 자존심도 상했다”고 말했다.

다만 “24시간이 지나고서 ‘이것도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덮었다”고 회상했다. 정상 외교의 현장에서 통역사로 바라본 한ㆍ미 관계는 항상 굉장히 굳건하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뒷줄 왼쪽은 이 대통령의 통역을 담당한 조영민 대통령실 행정관, 오른쪽은 트럼프 대통령 통역을 담당한 이연향 당시 미 국무부 통역국장. 김현동 기자


16년간 재직 국무부, 2월 말 퇴임

이 전 국장은 중학생 시절 이란 주재 한국대사관 무관으로 있던 부친(이재우ㆍ2019년 작고)을 따라 이란에서 살면서 영어를 익혔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연세대 성악과 졸업 후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살다 친구의 권유로 우연히 한국외대 통ㆍ번역대학원에 진학한 뒤 통역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전 국장은 2009년 국무부 입부 이후 통역국장까지 올라 부 내에서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국무부 통역국장은 대통령과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행정부 최고위 인사들의 외교 현장에서 통역과 번역을 총괄하며 70여 명의 정규직과 약 1000명의 계약직 통ㆍ번역 인력을 지휘하는 핵심 보직이다.

지난 2월 말 퇴임한 이 전 국장의 마지막 정상회담 통역 업무는 지난해 10월 한국 경주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린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회담이었다. 이 전 국장의 퇴임식에는 국무부뿐만 아니라 백악관 인사들도 다수 참석해 성대하게 열렸고 트럼프 대통령 친필 서명이 들어간 감사 서한도 전달됐다.

이 전 국장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이 다시 열릴 경우 미국 측 통역은 국무부의 또 다른 한국어 통역사가 맡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형구([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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