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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운전 '처벌 강화'에 의료계 우려…"기준 모호, 치료 중단이 더 큰 사고로"

중앙일보

2026.03.26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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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서울 종각역 앞 도로에서 승용차와 택시가 추돌한 사고 현장. 연합뉴스
의료계가 처벌 강화를 앞둔 약물 운전과 관련해 기준이 모호하다는 우려를 꺼냈다. 임의적인 치료 중단 시 자칫 더 큰 사고를 부를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다.

대한신경과의사회는 이러한 내용의 자료를 27일 공개했다. 약물 운전 관련 도로교통법 개정과 처벌 강화의 취지엔 공감하지만, 집행 과정에서의 의학적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건 심각하게 우려된다는 게 핵심이다.

현재는 약물 운전을 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다음 달 2일부터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수위가 높아진다. 경찰의 약물 측정 요구에 불응할 때도 처벌 대상이 된다. 여기엔 최근 약물 운전에 따른 사고가 늘어나는 게 영향을 미쳤다. 지난달에도 약물 운전을 한 30대 여성이 서울 반포대교에서 추락사고를 낸 뒤 검거된 바 있다.

하지만 의사회는 새로 추진되는 약물 운전 단속 기준이 진료 현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짚었다. 환자들의 정당한 치료권을 침해하고 또 다른 안전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약물 복용 여부'와 '운전 능력 저하'를 동일 선상에 둬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마약·향정신성 의약품을 복용 중이라고 해도 환자 체질, 복용 기간 등에 따라 운전에 미치는 영향이 천차만별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의사회는 처벌 강화에 겁을 먹은 환자들이 자의적으로 약물 복용을 중단하는 문제를 제일 우려했다. 생업을 위해 운전해야 하는 환자가 단속을 피하려고 뇌전증·불안장애 약이나 통증 완화제 등의 복용을 중단하면 오히려 질환의 증상이 악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도로 위에서 더 큰 사고가 일어나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의사회는 정부·경찰청에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나섰다. 우선 처벌 기준 구체화를 내세웠다. 단순 복용 여부가 아니라, 운전 능력 상실을 판단할 수 있는 의학적·법적 용량 기준을 명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진의 설명 의무 범위도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환자 처방 시 매번 운전 금지를 고지해야 하는지, 연령 등 특정 조건에 따라 차등화된 가이드라인이 있는지 등이 해당한다. 또한 단속 대상 약물, 정상 처방 환자 대처법 등을 국민에게 정확하게 홍보해서 불필요한 공포를 막아야 한다고도 주문했다.

의사회는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약물 운전 근절에는 적극적으로 협조하겠지만, 그 과정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면서 "정부는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 환자 건강권, 도로 안전을 모두 지킬 수 있는 세밀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종훈([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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