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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찌·애플·젠몬의 ‘기이한 ’세계관 설계하는 괴짜 예술가 [비크닉]

중앙일보

2026.03.27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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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틀몬스터·탬버린즈·누데이크 등을 산하에 둔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성수 사옥, 하우스 노웨어에 설치된 맥스 시덴토프의 작품 'More is More'. 사진 아이아이컴바인드
지난해 성수에 등장한 젠틀몬스터 신사옥 ‘하우스 노웨어’. 건물 앞에서 사람들이 자주 발걸음을 멈춘다. 집 앞에 가득 쌓인 검은 쓰레기봉투를 바라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인 조각 앞에서다. 그의 손에는 황금색 쓰레기봉투가 들려 있다. 기이한데 웃기고, 재미있으니 계속 보게 된다.

SNS에서 이 장면은 수없이 회자했다. 단지 파격적인 비주얼 때문일까? 작품이 드러내는 아이러니한 상황과 수수께끼 같은 연출 방식은 허들 없이 브랜드의 세계관에 들어서는 하나의 입구가 된다.

이상한 ‘브랜드’ 나라…이제 세계관 싸움이다
요즘 브랜드는 독특한 세계관 마케팅에 한창이다. 배경으로는 콘텐트 환경의 변화가 꼽힌다. 소셜미디어에 잠깐만 접속해도 밈, AI가 생성한 숏폼이 넘쳐난다. 강한 자극 없이는 시선을 붙잡기 어렵다. 브랜드가 제품만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설명 대신 브랜드의 존재감을 한눈에 인식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초월적 자연 풍경에 제품을 등장시키는 자크뮈스, 전시장을 방불케 하는 대형 예술 작품으로 시선을 끄는 젠틀몬스터가 대표적이다.

예술은 브랜드가 기존 문맥에서 시도할 수 없던 파격이나 재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단순 협업을 넘어 세계관을 함께 만드는 구조로 일한다. 브랜드가 터를 깔아준다면, 예술가는 그 위에 다채롭고 아름다운 성을 짓는 설계자가 된다.
아이폰을 통한 무한한 상상력을 표현한 애플의 캠페인 영상, 뉴욕의 장엄한 도시 풍경 속 등장하는 스와로브스키의 제품처럼 예술의 영역에서 다뤄지는 이미지들이 한 브랜드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사진 맥스 시덴토프 홈페이지
요즘 브랜드가 협업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공통적 특징이 있다. 설명보다 하나의 장면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단번에 인식되는 강한 시각 언어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나디아 리 코헨, 에릭 요한슨처럼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비틀어 기억에 남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대표적이다. 요즘 브랜드는 작품이 아니라 ‘들어가 보고 싶은 세계’를 설계할 수 있는 감각을 가진 예술가를 찾는다.

제니 사진 찍고 구찌 캠페인 영상 만드는 괴짜 예술가
파티 후 지쳐 쓰러진 작가 본인의 모습을 작품화 한 'After Party'. 작가가 얼굴에 낙서를 하고 있다. 사진 그라운드시소
앞서 소개한 하우스 노웨어의 작품을 만든 맥스 시덴토프가 그 흐름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그는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91년생 컨셉추얼 아티스트로 아이러니한 상황을 작품으로 만드는데 능하다.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유머다. 작품을 보는 순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 않은 데다 재미있다. 물론 시각적 쾌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함이나 일상과 평범함의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를 담는다.

국내에선 블랙핑크 제니가 등장한 장폴고티에 광고의 디렉터로 알려졌지만, 국제적으로 더 유명한 작가다. 애플·나이키·자크뮈스·버버리·에르메스 등 많은 글로벌 브랜드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구찌와는 2019년부터 주요 크리에이티브 협력자 관계다. 2023년에는 독일 풍자 TV 프로그램의 시각 연출로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유머가 선사하는 해학의 카타르시스
브랜드가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고, 전시가 뒤를 잇는 방식도 최근 생긴 변화다. 오늘(27일)부터 8월 30일까지 서울 중구 그라운드시소에서 맥스 시덴토프의 개인전 ‘Seriously Not Serious(진지하게 진지하지 않은)’가 열린다. 브랜드와의 협업 작업을 모아 놓은 섹션도 있지만 대부분 순수 개인 작업으로 채웠다. 브랜드와의 작업이 결과라면, 전시에서는 작가의 독특한 세계관을 설계하는 과정도 탐색할 수 있다.
속옷 차림을 한 작가의 대형 조각이 좌대 위에 있고, 관람객은 이를 각자 드로잉으로 그려내는 참여형 작품 'Cli″Max″'. 이소진 기자
작가는 변기에서 얼굴만 내밀거나 파티 후 소파에 쓰러진 모습을 연출하는 등 자신의 모습을 과감히 드러낸다. 평범한 인물들을 비현실적인 장면에 배치해 익숙한 일상을 낯설게 만들려는 의도다. 지난해 큰 흥행을 거둔 론 뮤익의 작품과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인간의 불완전함을 유머라는 렌즈로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출발점이 다르다.

관람객의 참여로 완성된다는 점도 특징이다. 미술 교실로 꾸민 공간에서 속옷만 입은 작가 본인의 조각을 그리게 하고, 8만 개의 퍼즐 조각을 같이 맞춰 보자고 제안한다. 퍼즐 조각이 완성되면 지난해 갓 태어난 그의 아기 사진이 드러난다. 팍팍하고 혼란한 세상 속에서 그의 유머는 ‘아직 세상은 살만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호탕한 웃음 뒤에는 개운한 카타르시스가 여운처럼 남는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불안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Only Human' 시리즈. 영화적 연출과 일상을 교차시키며 웃음과 공감을 자아낸다. 사진 맥스 시덴토프
맥스는 “예술은 삶이 이해되지 않을 때 내는 소음”이라고 명명한다. 진지함을 비트는 날카로운 유머, 현실과 상상의 경계를 흔드는 그의 서사는 자극적인 이미지가 넘쳐나는 시대에도 쉽게 소모되지 않는다. 독특한 시각 문법이 브랜드와 소셜 미디어에서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다. 이런 예술가에게 브랜드와의 협업은 ‘시대가 필요한 감각’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하나의 세계를 경험하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

“예술의 힘은 일상의 흐름을 살짝 흔드는 것”
맥스 시덴토프 인터뷰
맥스 시덴토프 작가
한국에서 첫 개인전이다.
“내게 한국은 매력적인 나라다. 예전에 여동생이 한국에 살아서 몇번 방문했는데, 미래적인 요소와 전통이 만들어내는 공존과 충돌이 특히 좋았다. 이번 개인전은 지난 하우스 노웨어 작업의 연장선이자 확장한 버전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유머의 힘은?
“유머는 종종 가볍게 여겨지지만, 매우 중요한 도구다. 무거운 메시지나 날것의 진실에 입히는 달콤한 포장 같은 역할을 한다. 나는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 일상의 흐름을 살짝 흔드는 데 관심이 있다. 누군가 웃으면서도 왜 웃는지 잠시 고민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 작은 ‘인식의 변화’ 속에서 작품은 생명력을 지닌다.”


자신을 비롯해 가족, 친구 등 주변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 속 ‘맥스 시덴토프’는 캐릭터가 아닌 하나의 대리자이자 매개체다. 중요한 건 내가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투영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드는 거다. 눈에 잘 띄지 않는 사람에게 끌린다. 길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지만 흥미로운 얼굴과 이야기를 지닌 인물들처럼.”

바닥에 페인트칠을 하다 나갈 곳 없이 코너에 몰린 노인을 표현한 조각 설치작 'Zeitgeist'. 사진 그라운드시소

다양한 매체를 다루는데, 특히 인물 조각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하다.
“어떤 작업은 혼자 하기도 하고, 대규모 프로젝트는 100명 가까이 투입되기도 한다. 인물 조각은 3D스캔으로 표정과 포즈를 정밀하게 캡처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출력된 형태를 다시 손으로 다듬어 디테일을 살리고 실리콘으로 본뜬 뒤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심고 채색한다.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물론, 론 뮤익에 비하면 아기 걸음 수준이지만.”


나마비아에서 태어난 환경이 영향을 준 부분은?
“나마비아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구 밀도가 낮은 나라다. 자연 밖에 없는 환경인데, 이런 경험이 사회의 구조와 관계를 바라보는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한다. 예술가는 처음부터 되려고 했다기 보다 ‘우연의 연속’이 이끈 길이었다.”


b.이슈
비크닉이 흘러가는 유행 속에서 의미 있는 이슈를 건져 올립니다.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하고, 시대와 호흡해 성장하는 브랜드와 기업을 조명합니다. 비즈니스적 관점은 물론, 나아가 삶의 운용에 있어 유의미한 ‘인사이트’를 전합니다.





이소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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