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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이란 전쟁 한달…대한민국에 던진 과제

중앙일보

2026.03.27 08:34 2026.03.2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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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봉쇄가 촉발한 글로벌 에너지 쇼크



에너지 길목에서 무너진 한국 경제 안보 구조



지정학 격변 속 빈틈없는 국가구조로 전환해야


미국의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으로 포문을 연 이란 전쟁이 오늘로 딱 한 달을 맞았다. 개전 초기, 압도적 화력과 인공지능(AI)을 앞세운 정밀 타격으로 수뇌부를 제거함으로써 전쟁을 조기에 종결짓겠다던 미국의 호언장담은 빗나갔다. 이번 사태의 결정적 변수는 호르무즈 해협 봉쇄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화자찬한 전술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전장은 지루한 소모전으로 치달았고, 그 여파는 호르무즈 해협을 넘어 전 세계 경제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이번 중동 사태가 1970년대 오일쇼크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합친 것보다 더 큰 충격이라고 경고했다. 제3국의 중재로 진행 중이라는 종전 협상의 향방도 가늠할 길이 없다.

이란 전쟁은 지구 반대편에서 터진 일이 실시간으로 우리의 일상생활에 타격을 준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 주었다.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국제 유가가 10달러 오를 때마다 국가 무역수지가 80억 달러씩 악화되는 우리의 구조적 취약성은 반도체와 자동차 등 국가 주력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특히 기초 원료인 나프타 공급 차질이 석유화학 산업을 강하게 압박하면서, 제조업 전반의 도미노 충격으로 이어졌다.

안보 지형의 변화도 엄중하다. 미군 전력의 중동 집중으로 주한미군 방공 전략 자산 일부가 이동 배치된 사실은 전략적 유연성이 상수가 됐음을 말해준다. 이는 경우에 따라 일시적 대북 억지력의 손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간과할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 “수혜국이 (호르무즈 해협을) 관리하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은 안보를 철저히 거래와 비용의 관점으로 치환하는 냉혹한 국제질서의 단면을 드러낸다. 이번 전쟁의 양상에서 보듯, 드론 전력과 방공망 확충이 현대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사실도 우리 안보 태세를 재점검하는 데 있어서 귀중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이란 전쟁은 우리에게도 많은 과제를 던지고 있다. 쇼크에만 매몰되지 말고 단기적 처방을 넘어 안보·경제 전반에 걸쳐 보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세상은 유무형의 네트워크가 시공간을 무너뜨리는 초연결 시대이고, 예측불가능성을 전략무기로 삼는 강대국 지도자 덕분에 초유동성이 국제질서를 흔들고 있다. 불안정한 정세 속에서 위기 대응 역량을 스스로 갖추는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에너지 안보의 대전환이 시급하다. IEA가 권고하는 90일분 비축유만으로는 해상 봉쇄라는 복합 위기를 견뎌낼 수 없다. 수입선 다변화는 물론 원전과 재생에너지, 가스를 결합한 ‘현실적 에너지 믹스’를 구축해야 한다. 최근 유럽 사례에서 확인되듯, 원전을 배제한 에너지 정책은 국가적 자해 행위나 다름없다. 안보도 동맹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과 동시에 위기 대응 능력을 강화하는 ‘자강’의 길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 전략 자산의 공백을 스스로 메울 수 있는 역량을 확보하고, 외교·산업·안보를 통합 관리하는 강력한 컨트롤타워를 구축하는 것이 급선무다.

호르무즈의 충격은 한국 경제와 안보의 취약한 고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위기는 반드시 반복될 것이며 다음 파고는 더욱 가혹할지 모른다. 지금 필요한 것은 미봉책이 아니라 지정학적 격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구조적 전환이다. 스스로를 지킬 자원과 힘을 갖추는 것, 그것이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무거운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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