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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도 서울 떠난다…'고양콘'이 K팝 성지 된 이유

중앙일보

2026.03.27 15:00 2026.03.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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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뮤지션 설 무대 없는 한국

지난해 10월 21일 경기도 고양시 일산서구 고양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열린 오아시스 내한 공연 실황. 16년 만에 한국을 찾은 전설적인 그룹의 콘서트를 보려는 팬들로 4만3000석 전석이 일찌감치 매진됐다. [사진 라이브네이션코리아]
4만8000명, 혹은 10만4000명. 아니면 그 사이.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콘서트가 열린 지난 21일 광화문의 관객 수다.

5만 명. BTS 공연은 이런 다른 숫자를 소환했다. K팝 열기를 온전히 담아줄 공연장 규모다. 지방선거 공약으로 내세우는 등 ‘5만 석’에 정치권도 끼어 앉으려는 움직임도 있다. BTS가 의도치 않게 쏘아 올린 작은 공, 아니 큰 공연장 논란이다.

“음악은 수돗물이나 전기 같은 존재가 되고 투어가 아티스트의 유일한 살길이 될 것.” 2002년 영국의 전설적인 로커 데이비드 보위는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스트리밍으로 음원 접근이 쉬워지면서 오히려 팬들의 공연 욕구는 한층 강해질 것이란 ‘예언’이었다. 지난해 각종 국내 공연은 2024년보다 9.6% 늘어난 2만3608건(하루 평균 65건). 티켓 판매액은 1조7326억원(18.8% 증가). 그중 대중음악이 절반을 훌쩍 넘는 9817억원(29% 증가)을 기록했다. 보위의 예언이 현실이 된 현재. ‘5만 석’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그런데 과연 필요할까, 가능할까, 지속할까. 전문가들의 말을 앨범 트랙처럼 1, 2, 3, 4로 나눠 들어봤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2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발매 기념 컴백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빅히트 뮤직·넷플릭스]

#트랙1
인천의 한 초등학교 영어교사인 베티(33)는 BTS 팬클럽인 ‘아미’ 회원이다. 그는 “광화문 공연에 이어 다음달 9~12일 고양종합운동장(4만3000명 수용)에서 열리는 공연에도 물론 참석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지난해 ‘개근’한 블랙핑크·지드래곤 등 K팝 스타 공연 외에 콜드플레이·오아시스의 내한 공연도 열린 고양종합운동장은 어느새 ‘고양콘’이라는 애칭도 생겼다.

박지혜 고양시청 문화예술공연 전문관은 지난 25일 늦게까지 퇴근하지 못하고 있었다. “2024년 미국 힙합 가수 카녜이 웨스트 공연이 성공하면서 대관 문의가 이어지고 있어요. BTS와 임영웅(9월) 등 올해 공연 일정은 이미 지난해 꽉 찬 상태고요. 2024년 13건의 공연으로 고양시가 126억원의 수익을 올렸는데 지난해(18건)와 올해는 이를 훌쩍 넘어설 겁니다. 공연 때 인근 음식·숙박업소 카드 매출이 50%나 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고양콘 이전에 공연장의 메카로 불린 서울올림픽주경기장(잠실·4만5000명)은 2023년 8월부터 리모델링 중이다. “반사이익이라고 보는 이들도 있다”는 말에 박 전문관은 단호하게 답했다. “하지만 고양콘은 공연장으로 활용되는 다른 경기장과 달리 ‘싱싱’해요. 면적도, 구조도 경쟁력 있고 ‘업자’들이 중요시하는 장비 반입구도 넓고 소리도 뭉개지지 않고요.”
 지난해 4월 16일 오후 경기 고양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콜드플레이가 두 번째 내한공연 '라이브 네이션 프레젠츠 콜드플레이 :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 딜리버드 바이 디에이치엘(LIVE NATION PRESENTS COLDPLAY : MUSIC OF THE SPHERES DELIVERED BY DHL)'을 펼치고 있다.[사진 = 라이브 네이션 코리아]

 미국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2024년 2월 7일 일본 도쿄돔에서 공연을 펼치고 있다. 도쿄돔은 5만5000명을 수용한다. 스위프트가 내한 공연을 하지 않는 이유로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공연장이 없어서'와 '5만명 이상은 절대 안 모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갈려 있다. [AP=연합뉴스]
#트랙2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크게 대중음악 공연을 열 수 있는 곳은 서울월드컵경기장(상암·6만3000명)이다. 하지만 프로축구 FC서울의 홈구장이라 쓰기가 어렵다. 올해 말까지 리모델링을 마치는 잠실은 6만 석으로 규모가 커지지만 잠실야구장을 철거하면서 2027년 시즌부터 프로야구 LG와 두산이 홈구장으로 쓴다. 두 경기장 모두 잔디 보호 문제도 있다. 스포츠구단이 사용하지 않는 ‘고양콘’이 뜬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별도의 5만 석 공연장을 만들어야 합니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의 말이다.

“우리나라 (디지털) 음악 시장 규모가 올해 2조원을 넘습니다. K팝 영향이죠. 이에 걸맞은 공연장이 필요합니다. 말만 화려하지, 실행은 뒷전입니다. 소극적 행정 때문입니다. ‘있어도 잘 안 쓸 것’이란 의견도 있는데 ‘없어서 못 쓰는 것’이죠. 공연장이 생기면 BTS뿐 아니라 다른 가수들도 충분히 객석을 채울 수 있어요. 선순환이죠. 도쿄돔(5만5000명)처럼 스포츠와 공연 ‘겸용’으로 공백기를 줄이고 수익을 내면 됩니다. K팝 종주국에서 ‘5만 석’은 상징성이 큽니다.”

고기호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부회장의 주장은 조금 결이 다르다.

“5만 석은 필요합니다. 정부도 필요성을 알고 있어 다행이고요. 어떻게 만드느냐의 문제죠. 미국·일본도 5만 석 ‘전용’ 공연장은 드뭅니다. ‘겸용’으로 만든다 해도 그만한 규모의 부지를, 특히 수도권엔 마련하기도 어렵고 소음 민원도 큽니다. 지드래곤이 고양콘 공연에 앞서 '소음 때문에 죄송하다'며 쓰레기봉투를 인근 주민에 나눠 주기도 했죠. 5만 석은 지금 당장 착공해도 완공은 10년 후고요. 잠실과 고양콘을 업그레이드하는 게 현실적입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요? 공연장은 쏟아져 나오는 관객을 품어줄 넓은 광장이 필요해요. DDP를 철거하고 5만 석 이상 공연장을 만든다면 광장이 턱없이 작아져 안전사고 위험이 큽니다. 5000~2만 석의 중형 공연장도 못지않게 필요합니다. 그래서 1만 석 중후반 규모의 KSPO돔이나 인스파이어 아레나의 대관 경쟁이 치열한 거죠.”
 BTS와 콜드플레이가 2021년 11월 21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제 49회 아메리칸뮤직어워드에서 협연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트랙3
“BTS 정도 되면 모르겠지만 5만 석은 힘들어요.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환생해 내한 공연을 해도 5만 석은 안 돼요.”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5만 석’에 대해 조심스러웠다.

“공연이 활성화되고 있는 건 맞아요. 이번 광화문 공연에서 ‘좀 약해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래도 BTS는 BTS입니다. 하지만 그 외엔 잘 나간다는 K팝 밴드가 나와도 3만 석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콜드플레이 지정석만 해도 25만원이니 비싸서 어디 보겠어요. ‘5만 석’에 들어갈 재원으로 1만 석 안팎의 공연장 확대에 집중하는 게 낫습니다.”

공연기획자인 한용길 비전컴퍼니 대표는 대중음악의 편향을 걱정했다. “K팝 인기가 영원할까요. K팝 위주로 정책을 짜면 보다 중요한 음악의 다양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큽니다.”

지난해 5000석 이상 공연은 247건 열렸다. 2024년 244건과 비슷하다. 반면 1000석 이하의 소규모 공연은 2563건(2024년 2244건)이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소규모 인디 밴드 공연이 많아진 데 비해 중형 규모 공연장은 모자라다 보니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2만 석 규모로 건설 중인 경기 북부의 라이브시티는 공정률 17%에서 수년째 묶여 있다. 1만8000석(스탠딩 포함 2만8000석) 규모의 서울 아레나가 내년에 문을 열지만 숨통을 틔워 줄지는 미지수다.
 서울 홍대 앞에서 한 가수가 거리공연을 펼치고 있다. 홍대에서의 소규모 공연은 우리나라 공연계의 자양분이라는 평가가 많다. [중앙 포토]

#트랙4, 그리고 보너스트랙
“미국에서 왜 음반을 무료로 주겠습니까. 팬들이 해당 뮤지션의 IP 굿즈 구매를 거쳐 결국 수익성이 높은 공연장으로 향하기 때문이죠. BTS가 그걸 해내고 있습니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공연 전문 5만 석’을 주장했다.

“K팝 가수들이 대규모 전용 공연장 하나 없이 도쿄돔과 웸블리스타디움 등 해외로만 도는 게 사실 부끄럽죠. ‘5만 석’ 얘기를 처음 꺼냈던 몇 년 전만 해도 웬 말이냐는 반응이었어요. 이젠 이 정도는 너끈히 채우는 아이돌이 많아졌어요. 균형 발전을 명목으로 전용 공연장을 지역으로 고려하면 교통·숙박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지속성이 있으려면 수도권이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경제성이 문제일 수 있지만 관광 등 파급 효과까지 생각하면 그런 걸림돌은 사라집니다.”

한 국립대 교수는 ‘전용 아레나’로 문화 주권을 찾자고 했다.

“일본의 경우 도쿄돔·닛산스타디움(7만2000명)·신국립경기장(6만7000명) 등 대형 공연장이 많아요. 사이타마 수퍼 아레나(2만~3만 명)와 요코하마 아레나(1만7000명) 등 중형 공연장도 뒤를 받치고 있고요. 이곳들은 주변 문화시설·상권과 연계해 하나의 문화를 창출합니다. 우리도 주변과 연계해 팬덤이 머무를 장소이자 문화 클러스터의 한 축이 될 전용 아레나를 서울 한복판에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에서 온 캐리(24)는 지난 23일 “그제 광화문에서 ‘큰 공연’을 가슴에 담고, 어제는 홍대에서 ‘작은 공연’을 영혼에 심고 간다”고 했다. 한용길 대표의 이 말과 맞닿은 듯했다. “K팝도 어디선가 툭 떨어진 게 아니잖아요. 다양한 규모의 공연장에서 다양한 음악의 토대 위에 자란 것이죠.”





김홍준([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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