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시절 소설가 현진건은 소설 『술 권하는 사회』를 통해 당시 지식인의 절망을 그렸다. 일본 유학까지 다녀왔지만 당시의 조선의 현실 앞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주인공은 매일 만취해 귀가한다. 보다 못해 왜 그렇게 술을 마시느냐고 묻는 아내에게 그는 “사회가 내게 술을 권한다”라고 답한다. 사회로부터 받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서는 술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100년이 흐른 2026년 현재,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들의 술을 마시는 모습은 이 소설 속 주인공과 많이 닮아 있다.
어떤 분은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어떤 분은 잠이 안 와서, 어떤 분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술을 마신다. 물론 그냥 술이 좋아서 마시는 분들도 많다. 그들은 저마다 술을 마시는 ‘어쩔 수 없는’ 이유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의학의 눈으로 본 술에 대한 진실은 유쾌하지 않다. 우리가 믿고 싶어 했던 ‘적당한 술은 약’이라는 얘기는 최근의 연구들에 의하면 그다지 믿을 수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지고 있다.
알코올 유해성, 헤로인·코카인보다 높아
사람들은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 술을 마시는가. 그것은 실제로 술을 마시면 당장은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술에 들어 있는 알코올이 중추신경을 억제해 일시적으로 불안감을 완화하고 도파민을 분비시켜 기분을 좋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일 뿐이다. 여기서 알코올-스트레스 역설(Alcohol-Stress Paradox)이 발생한다. 술을 마시는 순간에는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지만, 문제적 음주는 우리 몸이 스트레스에 더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한다.
술은 본인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피해 알코올은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Cortisol) 수치를 급격히 높인다. 술이 깨는 과정에서 뇌는 이전보다 더 높은 불안과 짜증을 느끼게 되며, 이로 인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가 되고, 이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다시 술을 찾는 악순환에 진입한다. 잠을 자기 위해서 술을 마시는 것이 결국 불면이나 우울을 악화시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이다. 술을 마시면 잠이 잘 오는 듯하지만, 오래지 않아서 깨고 결국 다시 잠이 들기 힘들어진다. 이런 분들은 잠이 들었던 경험을 기억하여 잠이 들기 위해 다시 술을 찾는 경우가 많은데, 결국 술로 불면을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을 경험한다. 더구나 이러한 악순환이 반복되는 동안 술로 인한 도파민 분비는 약화하고, 이전에 술을 마실 때와 같은 즐거움이나 편안함을 잠시라도 누리려면 더 많은 술을 마셔야 한다. 이른바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중 음주하는 분들은 흔히들 자신은 적당하게 술을 마신다고 얘기한다. 본인은 문제가 될 정도로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데, 대개 자신이 술을 많이 마신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위험 음주’의 기준은 생각보다 낮다. 65세 이하 남성을 기준으로 했을 때 주 2회 이상, 한 번에 소주 한 병 이상을 마신다면 이미 고위험 음주자다. 진료실에서 술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같아서 물어봤을 때 이 정도 음주는 소박한 음주라고 여기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위험한 음주라고 인지하는 분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적당한 음주라는 것에 대한 얘기는 과거 여러 연구에서 소량의 음주가 심혈관 질환을 예방한다는 이른바 ‘J-커브’의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에 기반한다. 술을 매일 한두 잔 하는 것이 아예 안 마시는 것보다 심혈관 질환에 있어서 나은 결과를 보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방법들이 발전할수록 이전에 믿었던 것들이 그릇되었다고 밝혀지는 경우가 많고, 음주에 있어서도 그것은 다르지 않다. 최근의 연구들은 이러한 ‘적정 음주’에 대한 과거 연구들의 결과에 의문점을 제기한다. 특히 2022년에 발표된 37만 명 이상의 데이터를 이용한 연구에서, 유전적으로 술을 못 마시는 그룹과 술을 마시는 그룹을 비교한 결과, 술을 전혀 마시지 않는 그룹의 관상동맥질환의 발병률이 가장 낮았다. 적은 양의 음주라도 결국 위험성을 높인다는 뜻이고, 음주량이 많을수록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여기에 더해, 오래전부터 암 발병에 있어서는 적절한 음주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잘 알려져 있었다. 이쯤 되면, 과연 적당한 음주량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2010년 영국의 연구팀은 해로운 물질에 대한 연구에서 놀랍게도 가장 해로운 물질로 알코올을 꼽았다. 1위 알코올에 이어 2, 3위가 헤로인, 코카인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매우 놀라운 결과인데, 특히 본인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해가 된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유해 점수를 받았다. 술을 마신다는 것은 음주하는 사람의 건강에도 좋지 않지만 주변인에게도 만만치 않은 해를 준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바뀌고는 있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술에 대해서는 상당히 관대한 편이고 사회인으로 술을 안 마시고 살 수는 없다는 인식을 가진 경우도 많다. 그러나 건강에 대한 얘기를 해야 하는 의사 입장에서 술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을 드릴 수밖에 없다. 술은 안 마시는 것이 건강에는 가장 좋다.
손기영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이자 울산대 의대 주임교수. 서울대병원을 거쳐 2019년부터 서울아산병원에서 재직 중이다. 성인병, 노인건강 분야 전문가로, 노인의학, 일차의료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학회 활동을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