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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여행 베테랑의 완벽 동선…돌아온 대전 '빵택시' 타보니 [비크닉]

중앙일보

2026.03.27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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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은 이제 조용한 도시가 아니다. 한국관광데이터랩에 따르면 지난해 대전을 찾은 외지인은 9094만7902명으로 전년보다 7.5% 늘어 4년 연속 상승세다. 주목할 건 20대와 30대 방문객이 전체의 44%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2030의 ‘핫플레이스’인 셈이다. 이들을 대전으로 이끄는 건 뭐니뭐니해도 ‘빵’이다. 지금 대전은 ‘빵’으로 대표되는 관광지로 주목받고 있다.
전국 유일의 '빵택시' 기사인 안성우(64)씨. 그는 하루 두 팀을 대상으로 대전 시내 곳곳의 유명 빵집을 순례한다. 이지영 기자
흔히 대전을 ‘성심당의 도시’라 부르지만, 사실 대전 곳곳에는 성심당 못지않은 빵 맛집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하지만 지리에 서툰 관광객들이 골목마다 숨은 맛집을 일일이 찾아다니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고민을 한 번에 해결해주는 구세주가 등장했으니, 바로 대전 시내를 누비는 이색 관광 서비스 ‘빵택시’다.

택시서 빵 먹으며 빵집 다섯 군데 돈다
대전역 4번 출구 앞, 빵 모양 인형을 든 빵택시 기사 안성우(64)씨가 기자를 맞이했다. 택시 내부는 마치 움직이는 빵 카페를 연상케 했다. 좌석 사이에 설치된 접합식 테이블은 이동 중에도 편하게 빵을 즐길 수 있도록 안씨가 직접 고안한 장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웰컴 키트에는 접시와 생수, 포크와 버터나이프 등 시식용 식기류는 물론 비닐 팩과 보랭 백까지 세심하게 준비돼 있다. 여기에 안씨가 “손님을 위한 작은 선물”이라며 건넨 비닐 가방에는 과자와 비타민, 여행용 헤어 관리 키트까지 담겨 있었다.

20년 차 여행 기획자 출신인 그의 일정표에는 시간대별로 방문할 빵집과 대표 메뉴가 촘촘히 정리돼 있다. 이동 동선에 맞춰 어떤 순서로 들러야 가장 효율적인지 계산된 일정표다.
좌석 뒤 바게트빵부터 대시보드 위 디저트까지 ‘빵택시’ 안은 빵으로 가득하다. 이지영 기자
택시 안에는 별도로 제작한 ‘빵택시 메뉴판’도 비치돼 있다. 서른 곳이 넘는 빵집의 위치와 오픈 시간, 예상 솔드아웃 시간, 대표 메뉴까지 정리돼 있어 마치 한 권의 로컬 가이드북을 보는 듯했다. 빵집마다 매진 시간이 달라 타이밍을 놓치면 인기 메뉴를 맛볼 수 없다는 점까지 고려한 설계였다.

이동 중에도 안씨는 “저 집은 요즘 뜨는 곳”, “여기는 빵도 맛있는데 사장님이 봉사활동도 많이 하신다”며 끊임없이 이야기를 들려줬다. 어떻게 이 많은 빵집을 다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가게들 월세도 다 안다. 내가 이곳에서 홍반장이다”며 웃었다.

일본 ‘우동택시’서 힌트…지역 콘텐트 안내자
대전 빵택시 투어 일정표. 기자는 3시간 코스로 정동문화사 → 파이가든 → 몽심 → 성심당 → 나무상자를 방문했다. 그래픽 마민아
기자가 체험한 일정의 첫 방문지인 ‘정동문화사’를 찾았을 때는 이미 인기 메뉴가 대부분 매진된 상태였다. 하지만 안씨가 미리 연락해 꼭 먹어봐야 하는 빵을 따로 확보해둔 덕분에 아쉬움은 없었다. 이어진 ‘파이가든’과 ‘몽심’ 투어에서도 그의 역할은 이어졌다. 진열대 앞에서 어떤 빵을 고를지 잠시 고민하자 안씨는 “이 집은 이게 가장 잘 나간다”며 대표 메뉴를 콕 집어줬다.

투어는 단순히 인기 빵집을 순회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는 각 빵집 이름의 유래와 대표의 경력, 꼭 맛봐야 할 메뉴를 곁들여 설명하며, 이동의 시간을 이야기로 채워 넣는다.
오늘 투어할 대전 빵집들의 일정이 담긴 표와 기념 키트까지 더해져 하나의 ‘콘텐트’가 된다. 웰컴 키트에는 각종 식기류와 물, 음료가 담겨 있다. 이지영 기자
이 같은 구상은 일본 카가와현의 ‘우동택시’에서 출발했다. 우동택시 기사들이 국물 맛만 보고도 가게를 구분하듯, 안씨 역시 빵을 맛보면 어느 집 제품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지역 빵에 대한 이해도가 깊다. 지역의 맛과 맥락을 함께 전하는 안내자라는 점에서다.

빵집만 도는 투어는 아니다. 중간에는 “빵만 먹으면 느끼할 수 있다”며 떡볶이 코스를 더했고, 이후 빵만 먹고 가면 아쉽다며 자신만 아는 포토 스폿으로 안내했다. 그곳에서 빵 봉투를 들고 사진을 찍으면 대전 여행의 가장 완벽한 기억으로 남는다고 했다. 단순히 빵을 맛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대전이라는 도시를 함께 경험하게 하려는 의도다.
택시 안에는 구매한 빵을 이동 중에 맛볼 수 있도록 테이블도 준비돼 있다. 사진은 정동문화사에서 구입한 까눌레. 이지영 기자
이동 시간에도 그는 가벼운 게임을 제안하거나 친구들의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돕는다. 실제 이용자들 사이에서 “이동이 지루하지 않다”, “친구들과 파티하는 기분”이라는 후기가 나오는 이유다.

투어의 막바지에는 ‘성심당’ 롯데백화점에 들렀다. 매장 앞에는 여전히 긴 줄이 이어져 있었고, 대전을 대표하는 빵집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시민들이 안씨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이후 투어의 마지막은 그가 가장 아낀다는 ‘나무상자’였다. 대전 곳곳의 빵집 다섯 곳을 차례로 둘러본 이 날의 동선은 이곳에서 끝을 맺었다.

영업 중단에서 재개까지, 빵택시가 버틴 이유
사실 이 서비스가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빵택시는 지난해 11월 첫 운행 직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나, 미터기 요금이 아닌 시간제 요금 적용 문제로 민원이 제기되며 운행이 중단되는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안씨는 수익이 전무한 상황에서도 예약 고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려 석 달간 ‘무료 투어’를 이어갔다.

이후 대전시와 협의를 거쳐 개인택시 면허를 취득하고 차량을 교체해 ‘고급형 택시’로 정식 등록하며 제도권 안에서 운행을 재개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서비스 운영을 넘어, 하나의 관광 콘텐트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됐다.
두번째로 방문한 파이가든에서 판매중인 빵들. 진열대 앞에서 어떤 빵을 고를지 잠시 고민하자, 안씨가 대표 메뉴를 콕 집어줬다. 이지영 기자
현재 빵택시는 개인의 체험을 넘어 지역 관광의 새로운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대전시 역시 이 같은 민간 차원의 시도를 관광 활성화의 사례로 보고 있다. 대전시 관계자는 “빵택시는 지역 콘텐트를 활용해 도시를 알리는 대전만의 관광 자원”이라며 “앞으로도 대전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이색적인 콘텐트를 지자체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지원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역의 일상 자원이 매력적인 관광 콘텐트로
안씨가 빵택시에 이토록 열정을 쏟는 데는 남다른 사연이 숨어 있다. 과거 건강 문제로 시한부 판정을 받았던 그는 “4년이나 더 살 수 있다는 말이 꿈 같이 행복한 소식이었다”고 회상한다. 덤으로 얻은 삶이기에 매 순간 사람들에게 행복을 전하는 일을 사명으로 삼게 된 것이다.

매일 투어를 마치고 오전 1시까지 아내와 함께 식기를 소독하고 다음 날의 일정표를 준비하는 과정조차 그에게는 축제다. 안씨는 “지금까지 만난 500여 명의 승객을 모두 기억한다”며 “재미있고, 손님들과 함께 하는 게 행복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투어가 끝나면 가톨릭의 성지인 바티칸에서 착안한 빵의 성지 대전 ‘빵티칸 순례 수료증’을 직접 전해 준다. 이지영 기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빵택시는 연말까지 예약이 대부분 마감된 상태다. 취재 동안 안씨의 휴대전화에는 예약을 원하는 이들의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투어의 마지막, 가톨릭의 성지 바티칸에서 착안한 대전 ‘빵티칸 순례 수료증’을 받았다. 안씨는 “빵택시를 체험한 뒤 친구나 연인, 가족들이 만날 때마다 떠올릴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빵택시는 단순한 이동 서비스가 아니다. 흩어진 빵집들을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하고, 각 가게의 이야기를 엮어 의미 있는 경험으로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로컬 플랫폼 역할을 한다. 개별 점포로 존재하던 빵집들이 이 서비스를 통해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작동하면서다.

또한 이는 지역의 일상적인 자원을 새로운 경험으로 연결한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이른바 ‘빵집 투어’로 불리는 여러 빵집을 찾아다니는 소비 흐름에, 이동의 편리함을 원하는 수요를 더해 매력적인 여행 콘텐트로 확장했다. 빵에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로컬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b.로컬
로컬은 지역의 가치를 새로운 기회로 전환하는 미래 라이프스타일 산업입니다. 비크닉이 로컬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브랜드와 크리에이터를 만납니다. 정부·지자체·기업이 참여하는 새로운 지역 활성화의 움직임을 담아냅니다.




이지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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