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지방선거를 앞두고 헌법재판소 전주 이전과 대법원 대구 이전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각 지역 정치권과 법조계를 중심으로 지역 균형 발전과 사법 권력 분산을 앞세운 국가 양대 최고 사법기관의 지방 이전 논의가 선거 핵심 의제로 불붙는 모양새다. 현재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서울 종로구, 대법원은 서초동에 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북지방변호사회는 지난 25일 전북도지사·전주시장 선거 예비후보들에게 헌재 전주 이전을 핵심 공약으로 채택할 것을 공식 제안했다. 전북변호사회는 “정치·행정·언론 권력이 집중된 서울과 공간적으로 분리돼야 헌법 수호 기관의 본질을 지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독일이 수도 베를린이 아닌 500㎞ 떨어진 소도시 카를스루에에 연방헌법재판소를 둔 사례를 근거로 들었다. 권력 분산이 수도권 집중 해소와 사법부 독립성 강화로 이어진다는 논리다.
전북이 김병로 초대 대법원장(순창)과 ‘사도 법관’ 김홍섭 전 서울고등법원장(김제), ‘검찰의 양심’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익산) 등 법조 3성(聖)을 배출한 지역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헌재 이전이 단순한 기관 유치를 넘어 역사적 정체성을 복원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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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은 법조 3성 배출…동학혁명 발상지”
2022년 4월 20일 1세대 인권변호사 출신 한승헌 전 감사원장(진안)이 영면했을 땐 그해 20대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대통령이 이튿날 페이스북에 추모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선배 인권변호사들의 발자취는 힘들고 지칠 때마다 늘 옳은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았다. 유신 정권에 저항하고 민주주의의 진보를 위해 애쓰신 한승헌 선생님 역시 그렇다”는 내용으로다.
더불어민주당 이성윤 의원(전주을)은 지난해 11월 헌재 전주 이전이 담긴 헌법재판소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3·1운동 정신을 계승한다는 헌법 전문에 비추어 볼 때, 그 인적·물적·사상적 토대가 된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전주에 헌법재판소가 소재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김관영 전북지사와 이원택(군산·김제·부안을)·안호영(완주·진안·무주) 의원 등 민주당 전북지사 경선 후보 3명 모두와 우범기 전주시장, 조지훈 전 민주당 원내대표 특보, 국주영은 전 전북도의장 등 전주시장 유력 후보들은 헌재 전주 이전을 공약으로 채택했거나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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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겸, 대구시장 출마…‘대법원 이전’ 공약 거론
‘보수 텃밭’인 대구에선 대법원 이전 카드가 부상 중이다. 민주당 소속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오는 30일 대구시장 출마 선언과 함께 대법원 이전 공약을 제시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는 민주당 김용민 의원(경기 남양주병)이 “대구는 가장 많은 독립운동가를 배출했고, 4·19혁명을 시작한 도시”라며 2024년 6월 대표 발의한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맞물린 움직임이다.
대법원 대구 이전론 역시 지역 발전 논리가 깔렸다. 법원행정처·사법연수원 등 부속 기관까지 동반 이전할 경우 대규모 법조 클러스터 형성이 가능하고, 이를 통해 대구를 ‘사법수도’로 키우겠단 구상이다.
그러나 현실 장벽도 만만치 않다. 헌재는 2004년 신행정수도 헌법소원 결정에 따라 법률 개정으로도 이전이 가능하지만,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 대법원은 헌법상 최고 법원으로서 상징성과 기능을 고려할 때 이전 논의 자체가 더 큰 사회적 논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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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광주도 유치 경쟁…“사법 체계 안정성 고려해야” 지적도
지역 간 경쟁도 변수로 꼽힌다. 대법원 유치엔 세종시도 뛰어들었고, 헌재는 광주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 출마를 선언한 민주당 민형배 의원(광주 광산구을)은 2024년 6월 헌재를 광주로 이전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제 강점기 광주학생항일운동과 1980년 5·18민주화운동이 1987년 헌법 체제를 탄생케 한 밑거름이었다”면서다. 반면 국민의힘은 “사법부 길들이기”라고 발끈했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재판에 대비해 대법원을 압박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취지다.
조국혁신당도 사법기관 지방 이전에 적극적이지만, 이전 대상·지역을 둘러싼 의견은 엇갈린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2024년 4·10 총선 전엔 헌재 또는 대법원의 전북 이전을 약속했다가 지난 1월 8일 방문한 대구에선 대법원을 대구로 옮기겠다고 말해 논란이 일었다.
한국갈등학회 회장인 하동현 전북대 행정학과 교수는 “지역에서 국가 최고 사법기관 이전을 바라는 마음은 이해할 수 있지만, 이 문제를 단순히 균형 발전 프레임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국가 사법 체계의 효율성과 기관 간 유기적 연계, 국민의 접근성, 사법 행정의 안정성까지 함께 고려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