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전역 '노 킹스' 反트럼프 시위 맞춰 수도 워싱턴DC서도 시위
이란전쟁·이민단속·물가상승 비판하며 트럼프 '일방통행' 규탄
[르포] 벚꽃 만발 워싱턴DC 한복판의 분노…"트럼프를 끌어내라"
미 전역 '노 킹스' 反트럼프 시위 맞춰 수도 워싱턴DC서도 시위
이란전쟁·이민단속·물가상승 비판하며 트럼프 '일방통행' 규탄
(워싱턴=연합뉴스) 백나리 특파원 = "트럼프를 탄핵해야 하느냐고요? 탄핵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감옥에 보내야 합니다. 모든 일을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하고 있어요."
토요일인 28일(현지시간) 낮 미 워싱턴DC 한복판의 '노 킹스(No Kings)' 시위에서 만난 60대 미국인 여성 리사 니콜커닝햄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시위에 참석하려고 콜로라도주 덴버에서 차를 몰고 왔다고 했다. 자동차로 20시간 넘게 달린 끝에 워싱턴DC 인근에 사는 두 친구와 만나 시위에 합류했다.
노 킹스 시위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제왕적이라 비판하는 이들이 '미국에 왕은 없다'는 뜻의 이름을 붙인 전국적 반(反)트럼프 시위다. 이날 미국 전역의 3천 곳 넘는 지역에서 시위가 열렸고 수백만 명이 참가했다.
리사와 친구들은 성조기에 '손을 떼라'(HANDS OFF)라고 적어넣은 깃발도 만들어왔다. '노 킹스', '표현의 자유'라고 적힌 티셔츠도 갖춰 입었다.
이들은 이란 전쟁에 대해서도 매서운 비판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성범죄자 제프리 엡스타인과의 유착 의혹에 쏠리는 시선을 분산시키려고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리사의 친구 수전은 "사람들의 주의를 흩뜨리려고 전쟁을 하다니 말도 안 된다. 전쟁은 당장 중단돼야 한다"면서 "의회는 무엇을 하고 있나. 뇌물을 먹은 건가, 협박을 당한 건가. 왜 트럼프를 저지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어느 나라 기자냐고 묻더니 "아주 좋은 때에 미국에 왔다"면서 냉소적인 농담도 했다. 이들은 "가장 끔찍한 것은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다. 이런 나라에서 산다는 것이 슬프다"고 했다.
시위대는 포토맥강을 사이에 두고 워싱턴DC 건너에 있는 알링턴국립묘지에서 출발해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 등 관광명소가 즐비한 내셔널몰로 행진했다.
'미국에 왕은 없다', '트럼프를 탄핵하라',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거리의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반대한다' 같은 구호가 울려 퍼졌다. 참가자 수백명이 자유롭게 걸으며 구호를 외치는 느슨한 형태의 행진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등의 가면을 만들어 쓴 이들이 눈에 띄었다. 왕정을 떠올리게 하는 가발과 드레스 차림으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국정을 왕정에 빗대려는 이들도 보였다.
큼직한 성조기를 들고 시위에 참여한 50대 남성 에드는 "트럼프는 도둑이고 사기꾼"이라며 "애국자가 전혀 아니다. 그 자신과 돈이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라 그 자리에 있어선 안 된다"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에드는 "작년 여름에 이란 핵시설을 폭격해 위험을 전부 제거했다더니 전쟁은 왜 하는 것인가"라며 "이 전쟁을 당장 끝내야 한다. 손을 떼고 빠져나오는 게 왜 어려운 것인지 이해를 못 하겠다"고 했다.
'트럼프 탄핵'이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나온 60대 남성 케빈은 "전쟁이 지금 모두를 해치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 문제"라면서 "기름값이 매주 오른다. 몇 달 넘게 우리에게 피해를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트럼프에 반대하는 이유가 경제적 피해 때문만은 아니다. 뉴스에서 이민자들이 어떻게 대우받는지를 매일 보고 있는데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지 백인 민족주의자나 백인 기독교인들의 나라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위에는 10대 정도의 학생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함께 피켓을 만들어 시위에 참여한 여고생 3명은 거리에 이민단속 요원들이 포진해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끌고 가는 것을 보며 시위에 참여하게 됐다고 했다.
워싱턴DC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이들은 "트럼프는 물가를 낮춘다고 했는데 지금 모든 것이 비싸다. 우리는 고등학생이라 다행히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지만 친구들 부모님이 정부에서 일하는 분이 많은데 감축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시위에는 유색인종 참가자들도 많았지만 사진을 찍는 것을 주저하는 이들도 있었다.
30대 흑인 남성 벤은 "애초에 당선돼서는 안 됐다. 미국을 매일 망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지만 인터뷰 이후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 묻자 사양했다.
이유를 묻자 "표적이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다양성 철폐 기조를 밀어붙이는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 유색인종들이 느끼는 부담이 엿보였다.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는 인공호수 타이달 베이신을 둘러 워싱턴DC의 명물인 벚꽃이 만개해 인파로 북적였다. 낮 기온이 10도가 채 되지 않는 쌀쌀한 봄 날씨였지만 만개하고 첫 주말이라 나들이객으로 주변이 가득 찼다.
시위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인 워싱턴기념탑 주변에서는 연날리기 축제가 열렸다. 색색의 연들이 하늘을 뒤덮어 봄기운을 돋웠다.
인터뷰가 끝나고 리사와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며 시위가 끝나면 벚꽃을 보러 가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벚꽃도 보겠지만 오늘 우리가 여기 온 건 시위 때문"이라며 "트럼프 걱정 없이 벚꽃을 즐길 수 있는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