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전쟁 여파로 원·달러 주간 평균 환율이 17년 만에 1500원대에 올라섰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역대 최대 규모로 팔고 있는 데다(순매도), 국제 유가와 달러 강세가 겹친 탓이다.
29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주(23~27일) 원·달러 환율 주간 평균(종가 기준)은 1505.62원으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에 1500원대에 진입했다. 특히 26일(저가 1502.2원)과 27일(저가 1503.3원)에는 장중 단 한 차례도 1500원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이달 들어 27일까지 월 평균 환율은 1489.31원이었다. 외환위기 중이던 1998년 3월(1488원)을 넘어 월간 기준으로 역대 4위를 기록했다.
직접적인 배경으로는 증시에서의 ‘외국인 탈출’이 꼽힌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3일부터 27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는 총 30조2630억원을 순매도했다. 월간 기준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위험 회피 심리에 인공지능(AI)·반도체 고평가 우려, 연초 급등에 따른 차익 실현 심리까지 겹친 결과로 풀이된다. 트럼프 변수도 변동성을 키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란 공격 유예 발표에 유가가 급락했다가 강경 발언을 하면 재차 상승하는 흐름이 반복됐다.
이달 원화 가치 하락 폭(환율은 상승)은 4.72%로 유로(-2.62%)·엔(-2.58%)·파운드(-1.64%)·위안(-0.84%) 등 주요국 통화 중 가장 컸다.
시장의 기대는 다음 달 1일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 쏠린다. WGBI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스톡익스체인지(FTSE) 러셀이 분류하는 국채 지수로, 주요 연기금 등 채권 ‘큰손’이 투자 지표(벤치마크)로 활용한다. WGBI 편입으로 최소 500억~600억 달러(약 75조~90조원) 패시브 자금이 국채 시장 유입될 것으로 보인다. 규모로는 이달 외국인 코스피 순매도의 두 배가 넘는다. 이는 환율·금리 안정에 긍정적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증권가에선 실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선 신중하게 본다. 8개월에 걸쳐 분산 유입되는 구조여서 단기에 환율을 끌어내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LS증권은 “WGBI 편입 직후 즉각적인 금리의 급락이나 원화의 강세 전환은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에 전문가들은 당분간 환율 움직임이 1500원 안팎에서 고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진경 신한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은 1500원 내외에서 하방경직적 흐름을 보일 것”이라며 “당분간 위험 회피 분위기 속에서 외국인 주식과 채권 자금 유입이 모두 제한되며, 원화 약세 압력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