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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의 시선] 국민의힘이 존재감을 보여줄 유일한 길

중앙일보

2026.03.29 08:19 2026.03.2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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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혁 정치부장
가까운 지인 둘이 이미 보완수사요구의 위력을 체감했다. 세 자녀와 장인·장모를 부양하는 대기업 임원 A는 지난해 초 국토교통부가 생애 첫 아파트 청약을 문제 삼아 서울 한 경찰서의 조사를 받았고, 투자 사기 피해자인 B는 비슷한 시기 지방의 한 경찰서에 가해자를 고소했다. 1년 남짓 만에 A는 불송치 결정을 받았고, B는 송치 결정을 받아냈지만, 모두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바람에 사건은 아직 경찰에 붙잡혀 있다. A는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부정청약 의혹의 유탄을 맞았고, B는 향판 출신 전관(가해자 변호인)과 힘겨운 싸움을 벌였다. 그사이 둘 다 수천만 원을 변호사 비용으로 썼다.

보완수사요구 부작용 이미 체감
유튜버·팬덤 극성에 국회 마비
개헌 가능하단 희망 공유 절실

A는 “빨리 검찰로 넘어가기만 바랄 뿐”이라며 “기소돼도 3심까지 최소 3년이라는데 변호사비만 수억 원이 들 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전 재산이 달린 문제고 너무 억울해 끝까지 갈 것”이라며 “유죄가 되면 재판소원이고 법왜곡죄고 다 써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B는 “뜯긴 돈 일부라도 회수하고 싶지만, 이미 가해자는 살던 집까지 다 팔아버리고 배를 째는 상태”라며 “유죄를 받아낸 뒤 민사 손해배상 판결을 받으려면 10년이 걸릴 수 있다는 말에 체념했다”고 말했다.

이미 MZ 검사들은 손이 많이 가고 감정노동이 심한 직접 보완수사보다는 보완수사를 ‘요구’하는 편한 길을 택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질주의 피날레가 다가오자 지난 2년간 보완수사요구는 크게 늘었다. 양부남 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75만2560건 중 14.7%(11만623건)에 대해 보완수사를 요구했다.

검사의 보완수사권이 완전 폐지되면 국민 누구나 언제든 이런 사법의 무한루프에 갇힐 수 있다. 개인과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이미 법률지식을 갖춘 수사 인력 부족이라는 경찰의 고질병을 신설 중대범죄수사청에 옮기기로 했고(수사관 직제 1원화), 특법사법경찰관리에게 직권남용의 유혹과 복지부동의 유인을 모두 제공하지 않았던가.(검사의 특사경 지휘권 박탈)

사법체계의 뿌리를 흔드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유튜버 김어준의 음모론과 막말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된 강성 지지층의 아우성과, 그 아우성을 정치적 기회로 여긴 정청래(당 대표)ㆍ추미애(법제사법위원장)ㆍ김용민(법사위 간사) 등 소수 정치인의 막무가내가 결합한 결과다. 수사가 엉망이라도 재판에서 바로잡으면 그만이라는 비주류 법관 출신이나 친정 권력의 비대화에 흥분한 경찰 출신 정치인들은 보조 스피커 노릇을 했다.

그동안 당내 다수 의원은 부작용을 알면서도 침묵하거나 알려고 들지 않았다. 강성 지지층의 이반이 두려웠는지 정부와 청와대도 이들을 필사적으로 막진 않았다. 검수완박을 위해 달리다 최근 경찰 수사를 받아 본 한 의원이 사석에서 “보완수사권은 필요하다”는 만시지탄을 했다는 웃지 못할 얘기도 들려온다.

150명이 넘는 거대 정당의 의원들이 어쩌다가 유튜버와 강성 지지층에 포획된 채 이런 자학적 입법을 저지르게 됐을까. 만약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였다면 조금은 달랐을까.

단 1명의 리더가 누가 되느냐가 정치의 지상 목적이 되는 대통령제에선 대통령 선출 즉시 대통령과 잠룡 사이 또는 잠룡들 사이의 주도권 싸움이 핵심 갈등으로 부상한다. 이 때문에 맹목적으로 특정인을 감싸고 그 외 인물을 배척하는 정치 팬덤이 자라기도, 유튜버가 팬덤을 주무르며 장막 뒤 권력자 행세를 하기도 좋은 토양이 된다.


그에 비하면 다수당의 의사가 곧 정부의 정책이 되는 내각제에선 상대적으로 정책 결정을 위한 당내 토론과 경합이 치열하다. 당수 1인보다는 집단으로서의 정당이 주목받기 때문에 장외의 유튜버들이 특정 소수를 가스라이팅한다고 당의 진로를 주무르기가 대통령제만큼 쉽지는 않다.

“개헌의 문을 열자”는 우원식 국회의장의 외침에 눈길이 가는 것도 그래서다. 합의 가능한 최소한의 개헌으로 주권자들에게 언제든 이 망가진 정치구조를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의 근거를 체험케 하자는 게 그의 주장이다. 언젠가 권력구조를 바꿔 유튜버와 팬덤에 포획된 정치를 구해내려면 ‘개헌은 가능하다’는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의 결단만 남았다. 우 의장의 진정성을 믿으라는 게 아니다. 한 번이라도 남는 장사를 해보라는 거다. 계엄 선포에 대한 국회 승인권을 규정한 개헌안 처리에 동참하는 것은 ‘절윤 논란’의 수렁에서 당을 명분 있게 끌어내는 길이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개헌은 지금 국회에서 야당이 존재감을 확인할 유일한 계기이기도 하다.






임장혁([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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