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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 대통령, 보수 정책 꺼낸 건 용기…구호 그쳐선 안 돼"

중앙일보

2026.03.29 13:00 2026.03.29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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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초동 영포빌딩 청계재단 벽에 걸린 그린란드 일룰리사트 기후변화 현장 방문(2012.9)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은 85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열정적인 태도로 3시간의 인터뷰를 거뜬히 소화했다. 특히 참담한 보수의 현실과 관련해서는 작심한 듯 ‘책임자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Q : 퇴임 후 13년 만의 첫 인터뷰입니다. 국민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A : “경제 문제나 정치적 혼란상 때문에 걱정이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함께하면서 용기와 위로를 드리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Q : 많은 분이 궁금해하실 텐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A : “‘오지’(수감 생활을 의미)를 다녀오는 등 우여곡절과 난관이 있었죠.(웃음) 지금은 아주 건강하고 바쁘게 잘 지냅니다. 20년 이상 친 테니스가 건강의 밑바탕인 것 같습니다. 인공지능(AI) 관련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 : 최근 20·30세대에서 ‘이명박 재평가’ 움직임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보셨는지요. 재임 시의 경제 성장, 부동산 안정, 정권 재창출 성공 등이 자주 언급됩니다.
A : “(수감 중일 때) 젊은 세대가 편지를 많이 보내 놀랐습니다. 하루 70~80통씩 받았는데, 그중 광주의 한 젊은이가 보낸 편지가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광우병 사태 때 저를 나쁜 사람으로 인식했는데, 그게 거짓 선동이었다는 걸 알게 된 뒤 방에 제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저를 존경하게 됐다고 적었더군요. 지금도 어디를 가든 젊은이들이 가장 크게 반겨줍니다. 감사할 따름이죠.”


Q : 아랍에미리트(UAE)와 인연이 깊지 않으십니까. 최근 UAE가 우리나라에 원유 2400만 배럴을 최우선 공급해주기로 했는데, 감회가 어떠십니까.
A :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부다비 국왕(UAE 대통령·이하 국왕)은 지적이고 정직한 분입니다. ‘이 대통령과의 관계는 앞으로 100년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말할 정도로 뜻이 잘 맞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을 좋아하게 됐다’라고도 말했죠. 호의로 한국 내 석유 비축기지에 UAE 원유 600만 배럴을 상시로 채워주기까지 했죠. 재작년 방한 때는 제 집을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퇴임 11년이 지난 전직 대통령 집을 찾는 중동 국왕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이 변함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이 어려울 때 열심히 돕는 거죠.”


Q : 재임 시절 한국 최초의 원전 수출이었던 UAE 바라카 원전 수주에도 성공하셨습니다.
A : “프랑스로 거의 넘어갔던 걸 제가 설득해 따낸 겁니다.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나중에 저를 보고 얼굴을 획 돌릴 정도였어요.”


Q : 그랬던 만큼 체코 원전 수주 때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A : “사실 주한 체코 대사가 찾아온 일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와 하려다가 바라카 원전 현장 진행 상황을 본 뒤 한국과 하기로 방향을 바꿨다. 미국이 제동을 걸고 있는데 조언을 구하려고 왔다’고 하길래 ‘한국 기업과 한국 정부를 믿으면 틀림없이 성공할 거다. 본국에도 그리 보고하라’고 했습니다. 한 달 뒤에 한국이 체코 원전을 수주했죠.”


Q : 아부다비 할리바 유전도 사실 국왕의 선물이었다면서요.
A : “국왕이 개발을 먼저 제안했는데 유전 개발은 성공률이 20%에 불과해 망설였죠. 그랬더니 귓속말로 ‘이미 조사해 매장량을 확인한 곳’이라 하더군요. 처음 공개하는 얘기입니다. 당시 석유공사에도 그 사정을 말할 수 없어서 ‘내가 책임질 테니 추진하라’고만 지시했습니다. 실제 곧바로 시추에 성공했죠.”
“윤석열, 내 수감시절 UAE에 편지 요청…나라 위해 썼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일 서울 서초동 개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그렇게 돈독했던 UAE와 한국이 한때 외교 마찰을 빚었습니다.
A : “문재인 정부 때 저와 UAE 관계를 뒷조사한 걸 알고 국왕이 국교 단절까지 생각할 정도로 노여워했습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배경이 된 아크부대 파병과 관련해서도) ‘왜 군인들을 보냈냐, 뭔가 부정이 있지 않았냐’며 조사한 거죠. 최정예인 특전사가 UAE 왕실 경비대를 훈련해주면 국왕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제가 제안한 겁니다. 국왕이 좋아하면서 ‘월급도 우리가 주겠다’라고까지 했는데 그건 거절했어요. 그러면 용병이 되는 거니까요.”


Q : 그 와중에 우리가 손실을 봤다면서요.
A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인데, 원래 바라카 원전은 공사뿐만 아니라 60년간 운영하면서 정비·유지·보수를 한국 업체들이 전담하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UAE 쪽에서 문재인 정부 때 일부 분야(안전, 방사능 방호, 연료주기 관리·환경 모니터링 등)를 프랑스(EDF)에 넘겼습니다. 한국 전담 약속이 깨진 것이죠. 원전 산업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가슴 아픈 일입니다.”


Q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관심을 표명하면서 그린란드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대통령님은 2012년 9월에 국가 정상으로는 처음으로 그린란드를 방문하셨죠.
A : “국제기구 GGGI(글로벌 녹색성장기구)를 함께 주도하면서 가까워진 덴마크의 프레데릭 왕세자(현 국왕)가 초청했습니다. 북극항로에 관심이 많아서 갔는데, 가보니 욕심이 생겨 지하자원 공동 개발 합의까지 한 겁니다. 그런데 다음 정부들이 그냥 덮어버렸어요. 그린란드를 선점했던 셈인데 참 안타깝죠.”


Q : 아닌 게 아니라 재임 시절 자원외교를 활발하게 하셨습니다. 다음 정부 때 사실상 중단됐습니다만.
A : “자원외교와 관련해 기소됐던 공기업 사장 세 명이 모두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찾아와 울더군요. 정말 좋은 뜻으로 정책을 추진해 어렵게 자원을 확보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상당수를 헐값에 팔아버렸어요. 경제를 몰랐던 거죠.”


Q : ‘4대강 살리기’는 정부가 바뀔 때마다 논란의 대상입니다.
A : “4대강에 90㎞당 하나꼴로 총 16개의 보(洑)가 있는데, 유럽의 강에는 16~20㎞마다 하나씩 있습니다. 유럽은 화물을 주로 운하를 통해 운송합니다. 강에 배가 안 다니는 데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재임 때 낙동강과 한강을 연결해 화물선이 다니게 했다면 국토가 골고루 발전했을 겁니다.”


Q : 일부 환경단체에서는 4대강의 보를 헐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A : “말도 안 됩니다. 오히려 오랫동안 하지 않은 준설작업을 해야 해요. 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것이 전력과 물입니다. 용인 반도체 허브 같은 곳에 물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하다는데 그걸 어디서 조달합니까. 여주보에서 해야 해요. 이재명 정부는 실용정부를 표방하니까 실제로 보를 해체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 ‘한반도 대운하’에 여전히 애착이 있으십니까.
A : “대통령 후보 시절에도 유럽에 운하 탐방을 갔잖아요. 그러니까 (대운하는) 과학적 데이터를 갖고 이야기한 거죠. 낙동강과 한강 연결 공법까지 다 제시했습니다.”


Q : 광우병 파동 등 정치적 이유로 (대운하를) 접을 수밖에 없지 않았습니까.
A : “국회가 반대해서 못했죠. 여당에서도 반대했어요.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으며) 그 얘기를 하니 눈물이 나네.(웃음)”


Q : 이재명 정부가 이명박 정부처럼 중도 실용을 표방하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 “극우, 극좌는 바람직하지 않으니 ‘중도 실용’ ‘실용 외교’ ‘중도 보수’를 주장했죠. 현 정부도 중도 실용을 표방하면서 탈원전 철회, 북극항로 개발, 자원외교 등 보수 정권 정책들을 하겠다고 나서는 건 다행이며 용기 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되고 실천으로 이어져 반드시 구체적 정책과 성과를 내야 할 것입니다.”


Q : 보수 정권에서만 두 대통령이 탄핵당했습니다. 심경이 복잡하실 텐데 보수 진영에 한마디 하신다면.
A : “보수가 과거에도 문제는 있었지만,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경제 발전에 기여했어요. (목소리를 키우며) 그런데 보수가 참패를 했어요. 그냥 진 게 아니고 참패한 것이거든요. 그런데도 심지어 분열까지 했잖아요. 이래서야 무슨 희망이 있겠어요.”


Q :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시각 차이가 분열의 주요 원인인데요.
A : “참패한 보수가 미래를 보고 나가야지 이미 지나간 과거인 윤 전 대통령을 가지고 갈라져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러니 국민이 납득할 수가 없는 거예요. 야당은 참패를 인정하고 참패 원인을 분석해야 합니다. 공천이 잘못되어 참패한 건지, 당시 정부 정책이 잘못되어 참패한 건지 철저히 분석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 단합해서 정책 대안을 제시하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해요. 그러면 국민이 그 대안을 당장 받아주지는 않더라도 야당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되는 거예요. 국민은 보수에 대한 희망을 완전히 버리지 않았어요.”


Q : 보수가 참패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A : “그걸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불행히도 정치, 학계, 종교계 등 모든 게 갈라져 있어요. AI 시대가 오고 있는데 AI 보기 부끄러울 수도 있어요. AI도 걱정할 거예요. ‘이러면 안 되는데, 이건 옳지 않은데’라면서요.”

“모든 게 갈라진 대한민국…AI도 걱정할 것”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일 서울 서초동 개인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은 2011년 미국 의회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기립박수를 받는 사진과 이 전 대통령을 다중 촬영한 것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Q : 친이·친박으로 대립했지만, 대선 국면에서는 대통령님께서 박근혜 당시 후보를 사실상 지지하시고 정권 재창출에도 성공했습니다. 얼마 전 중앙일보 창간 60주년 행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오랜만에 만나셨죠?
A : “그때 우리는 대승했잖아요. 총선도 그랬고. (박 전 대통령 만났을 때) 반갑더라고요. 제가 먼저 가서 악수를 청하고 반갑다고 얘기했죠. 그러니까 저는 우리 야당도 그렇고, 모든 분야에서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Q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도 서로 양보해야 한다는 말씀이시지요.
A : “우리 때와 비교하면 (지금 싸우는 건) 사소한 거죠. 야당이 거듭나야 하는데, 오히려 여당이 보수정권이 했던 중도, 실용을 들고 나왔어요. 여당만 좋게 평가한다고 오해받을지 모르겠지만, (국가) 원로로서 여야를 떠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Q : 현재 당 지도부나 당 밖에 있는 비주류 등 야당의 리더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A : “(목소리를 키우며) 당 지도부가 누구예요? 당 밖에 있는 비주류는 누구예요? (잠시 침묵하다가) 그게 야당인가요? 나가 있는 사람들이? 정치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 지금 야당에서 뭔가를 하고 있으니까, 그게 문제죠. 가만히 집에 앉아 있어야 할 사람들이.”


Q : 윤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복잡한 심경일 것 같습니다. 그래도 보수 진영 대통령이었는데 충고와 조언을 하셨습니까.
A : “제가 수감 중일 때 김대기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 찾아와서 ‘UAE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국왕에게) 편지를 써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요. 화를 내며 거절했는데도 계속 부탁하길래 모양은 볼썽사납지만, 나라를 위해 써줬죠. 윤 대통령이 UAE 방문 후 귀국한 날 전화해서 ‘국왕이 대통령님 얘기만 했다. 덕분에 만족스럽게 잘됐다’고 했어요. 그래서 ‘다행이다’라고 했죠.”


Q : 윤 전 대통령 부친상 때와 2024년 8월, 두 번 만나셨지요.
A : “상가에는 전직 대통령이자 어른으로서 간 겁니다. 그때 처음 만났어요. ‘논현동 사저로 한 번 찾아뵙고 싶다’고 하길래 거절했더니 그 뒤로 말이 없어졌어요. 대신 김건희 여사가 ‘대통령님을 가장 존경하고 좋아했다’며 분위기를 띄우려고 하더군요. (1년 뒤에) 대통령 관저로 만찬 초대를 하길래 웃어른으로서 옹졸하게 대하면 안 되겠다 싶어 응했어요. 그때도 인사 관련해서 싫은 소리 했더니 또 말이 없어졌어요. 술도 와인 한 모금만 하고 말길래 말수도 적고 술도 잘 못 하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웃음)”


Q : 재임 시절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일을 꼽으신다면.
A : “2009년 세계 금융위기 때 ‘경제 전문가라 대통령이 됐으니 어떻게든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결심했죠. 그래서 공무원, 기업인, 양대 노총 위원장들까지 청와대에 불러서 설득했어요. ‘IMF 외환위기 때 기업 400개가 무너졌다. 다 망하면 뭐가 남겠느냐’며 계속 설득해서 협조를 끌어냈어요. 그래서 세계가 깜짝 놀랄 정도로 위기를 잘 극복했는데, 그게 가장 보람찬 일이었습니다.”


Q : 부동산이 연일 시끄럽습니다. 대통령님은 부동산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A : “저는 신도시 건설의 폐해를 알고 있었어요. 새 땅을 조성하고 인프라를 까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죠. 그래서 이미 인프라가 다 깔린 지역을 골라 집만 짓는 식으로 뉴타운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1~2년 만에 다 지어 공급하니 집값이 내려갔죠. 신혼부부용 보금자리주택도 효과를 봐서 2009년 1.15명이던 합계 출산율이 2012년 1.3명까지 올라갔어요. 집값이 안정돼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겁니다.”


Q : 국제 환경이 녹록지 않은데 어떻게 대응하는 게 좋을까요.
A : “미국은 트럼프가 아니라도 당분간 자국 우선 정책을 계속할 겁니다. 미국인들은 유럽이나 한국 등이 미국 지원으로 잘살게 됐는데도 계속 방위를 기대려 하니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 트럼프가 재선한 거 아닙니까. 우리도 세계 10대 강국으로 성장했으니 미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해야죠.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 같은 이분법으로 접근하면 안 됩니다. 미국이 그걸 받아들이겠어요? 이제는 안보·경제 모두에서 제대로 협력해야 합니다.”


Q : 한·미 관계와 관련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당부가 있었다면서요.
A : “대통령 후보가 된 뒤 예방했을 때 김 전 대통령이 크게 반기면서 ‘축하한다. 청계천도 돌아봤는데 매우 훌륭했다. 어떻게 그걸 복원했느냐’며 치하하시더니 조언을 하나 해주셨어요. ‘당선되면 미국하고 잘 지내야 한다’는 거였죠. 참 대단하지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답했죠.”


Q : 트럼프가 파병을 요청했습니다. 대통령님이라면 어떻게 풀어나가실까요.
A : “미국은 그래도 믿는 나라에 요청한 겁니다. 참전 요청은 아니니 긴밀히 대화해서 역할을 찾아야겠죠. 일본 등 여러 나라에 함께 요청한 거니까 공조하는 의미에서 같이 검토하면 좋죠. 그런데 우리는 앞으로의 한·미 관계를 위해 같이하면서도 반걸음이라도 앞서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어요.”


Q : 한·중 관계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A : “제가 부시 대통령과 아주 좋은 관계를 맺었잖아요. 그러니까 중국도 우리와 협력이 된 겁니다. 미국하고 잘 지내는 것이 한·중 관계에도 도움이 됩니다. 미국이 우리를 냉대하면 중국도 우리를 냉대하는 거예요.”


Q : ‘MB의 시간은 한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많은 경험을 하셨습니다. 중앙일보와 함께할 회고록 연재와 관련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A : “저는 오로지 일만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자동차와 조선 산업을 일으켰고, 청계천을 복원했습니다. 광우병 사태와 세계 금융위기 등 우여곡절이 있을 때도 초심으로 돌아가 미래를 위해 일해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4대강 사업도 그런 거였죠. 저는 ‘더 큰 대한민국, 선진 대한민국’을 가야 할 길로 삼고 100년 뒤를 내다보면서 일했습니다. (회고록을 보시고) 제가 100년, 1000년 뒤까지 생각하면서 욕을 먹어가며 일했다는 걸 국민께서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순수하게 일만 해온 그 진정성을 말입니다.”

“문재인 정부 검찰, 없는거 만들어 강압수사”
이명박 전 대통령은 수사, 재판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때 검찰이 없는 걸 만들어내고 강압 수사를 했다”며 “아마 김석한 변호사도 억울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관련 기업 ‘다스’의 미국 재판을 무료 변호한 미국 로펌 ‘에이킨검프’ 변호사다. 검찰과 법원은 그 로펌에 대한 삼성의 송금액 중 일부를 뇌물로 봤다.

검찰은 당시 “2008년 3~4월께 김 변호사가 청와대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삼성의 자금 지원 의사를 전해 승인을 받았다”는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을 근거로 이 전 대통령을 기소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록 확인 결과 김 변호사 방문일은 모두 사실상 접견이 불가능한 날이었다. 그런데도 검찰은 김 변호사 조사 없이 나를 기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재판 때 김 변호사를 증인으로 신청했는데, 검찰이 ‘입국하면 출국금지 조처를 할 것’이라고 윽박질러 증언이 무산됐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은 “그때 김 변호사가 로비스트, 사기꾼 등으로 오해를 받기도 했는데 그렇지 않다”며 “김 변호사는 실력 있는 미국 변호사고, 수십 년 동안 한국 정부에 한·미 관계에 대한 조언도 해 온 인물”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당시 4대강 사업, 자원외교, 방위사업 비리 의혹 등 이른바 ‘사자방’ 수사에 실패하자 ‘다스’ 횡령 의혹 등 과거 사안으로 범위를 넓혔다. 이 전 대통령은 “구체적 방향성(각론)에 대해서는 평가하기 어렵지만, 검찰 개혁 필요성에는 공감한다. (내 사건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때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회고록, 매주 월·목 연재
‘더중앙플러스’는 이명박 전 대통령 단독 인터뷰 전문(2만4000자 분량)과 영상을 오늘부터 4월 1일까지 사흘간 나눠 게재합니다. 4월 6일부터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 정·재계 거물들과의 흥미진진한 비화를 담은 ‘이명박 회고록’이 매주 2회(월, 목) 연재됩니다. 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350

더중앙플러스-이명박 회고록
"가만히 집에 있어야할 그들이, 야당서 뭔가 하니까 그게 문제"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415706




서승욱.박진석.김상진.김기정.권혁재.왕준열.김자명([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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