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지역사회 통합돌봄 서비스가 전국에서 일제히 시작됐다. 노인이나 장애인 등이 내 집에서 편안하게 돌봄 서비스를 받는 제도이다. 정부가 '진짜 돌봄'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고령사회의 틀을 바꾸는 획기적인 제도이다. 환자에 맞춰 방문(비대면) 진료, 가정·방문 간호, 말기나 퇴원 환자 관리, 방문요양, 이동 지원 등 30가지의 서비스를 제공한다. 의료기관·재가간호센터·보건소·재가요양센터·복지관·사회서비스원 등이 나선다. 통합돌봄이 필요한 노인·장애인이 240여만명에 달한다(국민의힘 서명옥 의원).
다만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급하게 시행하는 바람에 허점이 많이 나타난다. 서울의 한 50대 중증 장애인은 27일 통합돌봄 서비스를 상담했지만, 대상이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알고 보니 전국 229개 지자체 중 102곳만 65세 미만 장애인에게 서비스한다. 서울은 13개 구만 가능한데, 그가 사는 구는 속하지 않았다. 경기도 31개 시·군 중 부천·가평 등 8곳만 가능하다. 강원은 18개 중 3곳만, 경북은 22개 중 4곳만 가능하다. 반면 대구는 9개 구·군이 다 된다.
그동안 정부의 시범사업에서 이용자가 가장 많았던 서비스가 보건·의료(26.9%)이다. 그런데 서명옥 의원 자료에 따르면 방문진료를 하는 의료기관(재택의료센터)이 422곳에 불과하다. 특히 수도권과 광역·특별자치시를 제외한 도(道) 지역 중 재택의료센터가 한 곳뿐인 시·군이 61.5%(75곳)에 달한다. 충남 부여군 관계자는 "도시는 차 타고 10~20분 가면 되지만, 여기는 한 번 진료하는 데 2시간 넘게 걸린다. 의료기관이 참여하려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인천 옹진군 관계자는 "재택의료를 수행할 기관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군 관계자는 "방문진료를 하려면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 팀을 구성해야 하는데 이것부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충남 홍성군 관계자는 "군 의료원 소속 의사 1명이 재택의료센터를 겸임하고, 간호사·사회복지사까지 그리한다. 앞으로 통합돌봄 수요가 늘어날 텐데 적기에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우려했다.
통합돌봄의 모토는 '병원 대신 집'이다. 그동안 시범사업에서 확인됐다. 참여자의 요양병원 입원율이 4.6%p, 요양원 입소율이 9.4%p 낮다. 병원·시설을 집처럼 여기는 사회적 입원(입소)가 줄었다는 뜻이다. 그리하려면 퇴원을 유도할 서비스가 중요하다. 그러나 27일 현장에선 아직 그런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았다. 영남권의 요양병원 관계자는 "아직 퇴원 요청을 하는 환자나 보호자가 없다"고 말한다. 인천의 한 요양병원 원장은 "통합돌봄의 명확한 이점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환자들이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멍이 많긴 하지만 서비스를 받은 환자는 만족한다. 의정부시 편한자리의원 노동훈 원장은 27일 척추에 장애가 심한 독거 환자(76) 집을 찾았다. 이 여성은 통합돌봄 대상이다. 거동이 힘들어 병원에 가기 어렵다. 노 원장은 문진·촉진 등의 진찰을 한 후, 진통제를 주사하고 손으로 척추 통증을 완화하는 이완 요법을 했다. 약 처방전을 끊어줬다. 30분 진료가 이어졌다. 환자는 "너무 고맙다. 다음 주에도 와 달라"고 요청했다.
업무 처리 시스템(돌봄통합지원정보시스템)도 원활하게 작동했다. 27일 서울 금천구 시흥5동 주민센터에 정정임(87)씨가 서비스를 신청했다. 개인정보제공 동의 서명 후 9분 만에 완료됐다. 정씨는 "자식들이 살기 바빠 병원 동행이 어려운데 (통합돌봄에서) 동행해 준다니 감사하다"고 말했다.
첫날 허점을 보인 이유는 준비 기간을 너무 짧게 잡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국회가 2024년 2월 관련 법률을 통과시키면서 '2년 후 전국 시행'을 못 박았다. 2023년 7월 12개 지자체를 시작으로 시범사업을 시작한 정부가 지난해 6월 시행 9개월을 앞두고 이런 곳을 131개로 늘렸다. 9월에야 모든 곳이 참여했다.
통합돌봄의 핵심은 인프라 구축이다. 서비스 제공기관이나 업체를 늘리고 이를 엮을 조직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울진·순창·인제군은 아직 관련 조례(지자체 자치 법규)가 없다(29일 기준). 읍·면·동 행정복지센터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시·군·구 본청은 전담 인력이 90%에 달하지만, 읍·면·동은 대부분 겸임 체계로 운영되고 있다. 읍·면·동 공무원은 신청을 받은 뒤 현장 조사를 하고, 지원 계획을 수립해 본청 회의 등을 거쳐 최종 서비스를 연계·제공해야 한다.
강원 횡성군 관계자는 "읍·면·동에 전담 인력이 없는 상태에서 법이 시행돼 주민 요청을 처리해야 하는 만큼 현장의 어려움이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 한 군의 통합돌봄팀장은 "추가 인력이 배치되는 올해 말까지는 업무 과중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 읍·면·동 3560여 곳 가운데 2800여 곳(78.6%)만 통합돌봄 업무를 해봤고 나머지는 그런 적이 없다. 홍성군의 한 면사무소는 '재택의료를 받을 수 있느냐'는 기자 문의에 "재택의료센터 연계 경험이 없어 실제로 가능할지 확답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제도 정착까지 2~3년은 필요할 것"이라며 "기존 서비스(장기요양 등)의 신규 대상자를 발굴하고, 요양·돌봄·의료 서비스가 대상자에게 적절히 제공될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돌봄의 질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일률적인 지침을 내리기보다 지자체에 자율성을 부여해 지역 실정에 맞는 운영 방안을 마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