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정부 예산이 역대 처음으로 800조원 가까운 규모로 짜여진다. 예산은 인공지능(AI) 전환, 지방 소멸 대응 등에 집중적으로 투자한다. 대신 정부는 법으로 정해져 있어 조정이 어려운 ‘의무지출’도 법 개정을 통해 10% 줄이는 고강도 구조조정을 병행하기로 했다.
30일 기획예산처는 이런 내용의 ‘2027년도 예산안 편성지침’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확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예산안은 이재명 정부가 편성 과정 전체를 주관한 첫 번째 예산안이다. 예산안 편성지침은 내년 재정운용 기조 등을 담은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각 부처는 예산안을 요구할 때 이를 따라야 한다.
조용범 기획처 예산실장은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내년도 예산안 편성의 기본 방향에 대해 “국정 성과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도록 적극적 재정 운용 기조를 유지한다”며 “그러면서도 재정의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해 전략적으로 재원을 배분하는 절차를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의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에 따르면, 내년도 총지출은 올해 본예산안(728조원)보다 5.0% 증가한 764조4000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가 현재 편성 중인 약 26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반영되면 내년 예산은 800조원에 육박하게 된다. 정부 예산은 2017년 처음 400조원을 돌파했는데, 10년여 만에 나라 살림 규모가 약 2배로 늘어나게 된다.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투자할 4대 중점 분야로 ▶AI 전환(AX) 등 성장 패러다임 전환 ▶5극·3특 성장엔진 육성 등 지방 주도 성장 ▶스타트업·청년 등 모두의 성장 통한 양극화 구조 개선 ▶안전·평화 기반 구축 등을 제시했다.
가장 앞에 세운 건 AX와 녹색 전환(GX)이다. 산업 생태계 변화에 대응하는 혁신을 지원하고, 첨단산업을 육성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업종별로 제조·실증·보급 각 단계의 AI 도입을 추진하고,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를 확충해 AI 산업 생태계를 키울 계획이다.
또 권역별 주력산업을 대규모 AX 연구·실증과 연계해 생산성을 높인다. 수도권 중심 성장을 벗어나 지방 성장 거점을 구축하기 위해 통합 지방정부에는 연 최대 5조원, 4년간 20조원 규모의 재정을 투입한다. 공공기관 이전도 적극 지원한다. 특히 수도권으로부터 거리가 먼 지역일수록 더 두텁게 지원하는 ‘재정사업 지방 우대원칙’도 본격적으로 실시한다. 올해 예산에는 아동수당 등 7개 사업을 대상으로 지방 우대를 시범 적용했는데, 내년부터는 각 부처가 적용 대상 사업을 발굴해 예산안을 요구하도록 했다.
이번 예산안 편성지침에는 ‘지출 구조조정 기준 및 추진 방안’도 포함됐다. 여기서 기획처는 재량지출과 의무지출을 각각 15%, 10% 감축을 목표로 제시했다. 의무지출은 지출 근거와 요건이 법령에 규정돼 있는 정부 예산으로, 기초연금과 건강보험,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등이 대표적이다. 저출생·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로 의무지출 규모는 갈수록 늘어 지난해 365조원에서 2028년이면 433조원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정부가 구체적인 의무지출 감축 목표치를 제시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의무지출을 조정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하므로, 기획처는 각 부처에 의무지출을 줄일 구체적인 제도 개선 및 입법 조치 계획을 제출하도록 요청한 상태다. 기획처는 구체적인 의무지출 감축 대상 사업을 꼽지는 않았지만, 정부 안팎에선 기초연금과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개편 가능성이 큰 것으로 거론된다. 다만 조용범 실장은 지난 26일 브리핑에서 “전체 의무지출을 대상으로 구조조정할 생각은 없다. ‘10% 감축’이라고 했지만, 복지 제도로서 줄일 수 없는 것은 모수에서 제외할 것”이라며 “복지 사업이 줄어드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기획처는 모든 재정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한시·일몰 사업인데도 그간 반복적으로 기한을 연장해 온 사업도 원칙적으로 종료하기로 했다. 지출 구조조정을 위해 통합 재정사업 성과평가를 통해 사업 성과를 점검해 성과가 낮은 ‘감액’ 대상 사업은 전년 대비 예산을 10% 이상 감액하거나, ‘폐지’ 사업은 예산안에 반영하지 않겠다는 원칙이다. 민간 대비 사용료가 크게 저렴한 국립시설 입장료 등을 현실화해 공공 서비스 제공에 대한 수익자 부담 원칙도 강화한다. 대표적으로 17년간 무료로 운영돼 온 국립중앙박물관 유료화가 유력하게 검토된다.
또 예산 편성 및 지출 효율화 과정에 국민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국민참여예산 플랫폼’을 통해 접수되는 국민 제안을 최우선으로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지출 효율화 아이디어를 낸 국민에게는 최대 600만원 상당의 포상도 실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