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연주 생활 하면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피곤했어요. 그런데 지금 데뷔 70주년, (나이) 80세 이렇게 되니까…. 남은 건 자유롭게 음악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올해로 여든이 되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자신의 70년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같이 말했다. 30일 오전 백건우는 서울 영등포구 신영체임버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26일 발매한 새 앨범 ‘슈베르트’와 내달 3일부터 시작하는 전국 순회 공연에 대해 설명했다. 신보는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13, 14, 18, 20번 네 곡을 두 장의 CD에 담았다. 백건우가 슈베르트를 녹음한 것은 2013년 ‘슈베르트: 즉흥곡, 클라비어 소품집, 악흥의 순간’ 이후 13년 만이다.
슈베르트를 선택한 것에 대해 백건우는 “떠났다가 다시 돌아온 것 같지는 않다”며 “제 안에 잠재돼 있던 음악이 어느 시기에 맞춰 나타나는 거다, 필연적이라고 할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연주자들 사이에 ‘내가 곡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곡이 나를 선택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틀린 말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백건우는 여든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한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다음 달 3일부턴 부산시민회관 대극장을 시작으로 전국 12개 도시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그의 생일에 맞춰 열리는 오는 5월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독주회가 이번 전국 투어의 마지막 무대다.
“나이 들어서 오랫동안 연주하는 게 자랑스러울 건 없어요. 다만 음악 세계는 굉장히 넓어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다면 연주는 계속되겠죠. 그게 협주곡이든, 리사이틀이든, 쳄버뮤직이든….지금 머릿 속에 구상하는 프로그램도 많은데 그거 다 못하죠. 일생이 너무 짧아요.(웃음)”
향후 연주하고 싶은 레퍼토리를 묻는 질문에는 현대 음악을 들었다. “제가 줄리어드에서 공부할 땐 학교에서 현대 음악 연주를 가르치질 않았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엔 참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는 쓰여진 곡을 알리는 역할이잖아요. 가끔 언제까지 200~300년 전 음악에 머물러있어야 하나 이런 생각도 해요. 내 손에 의해서 처음으로 세상에 울리는 소리를, 책임지고 연주를 한다면 그 이상 흥분되는 일이 없죠.”
올해는 음반 발매, 연주 활동 외에도 한 가지 계획이 더 있다. 생애 첫 자서전을 내는 것이다. 그는 “미국과 유럽, 동유럽, 중국 등을 돌며 연주 생활을 하며 겪은 이야기가 많다”며 “그 이야기를 전하는 것도 나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제가 줄리어드에 공부하러 뉴욕에 간 게 1961년입니다. 그 때 미국 음악계는 지금 젊은이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역사상 거대한 연주자, 작곡가들이 활동할 때였어요. 호르비치, 번스타인…. 이름만 대도 알만한 그런 사람들이요.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지금하고는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상점에 가야 악보나 LP를 살 수 있었고 한 번 집에서 오페라를 들었다 하면 3시간 씩 앉아 있곤 했죠. 지금처럼 연주 영상의 조회 수로 연주자의 진가가 평가되는 때와 달랐어요.”
그에게 평생 따라다닌 ‘건반 위의 구도자’라는 별칭에 대해서는 “좀 무겁다”라고 했다. 그는 “누구나 자기 하는 일에 충실하고 노력하는 분이면 다 구도자”라면서 “음악에 정답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저는 누가 연주할 곡에 대해 말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거절해요. (말이 아닌) 연주로서 설득해야 하기 때문에. 내가 뭘 준비했으니 이렇게 들어라, 이런 방식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음악회에 가서 두 시간 정도 어떤 음악을 듣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 지는 (관객) 각자에게 달려있어요. 마음의 준비에 따라 달리 들릴 것이고, 듣는 이들이 새로운 걸 발견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