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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이 살린 장애야구단, 전국대회 우승했다…광주 동구 고향사랑기부 100억 돌파[르포]

중앙일보

2026.03.30 00:45 2026.03.30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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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한 실내 야구연습장에서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E.T야구단 소속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지난 28일 오전 10시 광주광역시 북구 한 실내 야구연습장. 발달장애 청소년과 성인 등 29명이 모여 야구 훈련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엉거주춤한 자세지만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표정은 진지했다.

이날 야구장에서 훈련을 한 이들은 광주 지역 발달장애인으로 꾸려진 E.T(East Tigers) 야구단 선수들이다. 선수들 중에는 공을 주고받는 캐치볼(catch ball)을 잘 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공을 2m도 던지지 못하는 선수도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E.T야구단 임방현(40) 감독은 초급반 선수들 곁으로 가 공을 던지는 동작부터 야구의 기본기술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또 선수들을 향해서는 “너희들 자신을 더 믿고 플레이를 하면 좋겠다”고 응원했다.

임 감독은 “야구공을 전혀 던지지 못했던 아이가 캐치볼까지 하게 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특히 E.T야구단이 해체될 뻔한 위기를 겪은 뒤 아이들이 야구에 더 큰 애착을 갖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한 실내 야구연습장에서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E.T야구단 소속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E.T야구단은 2016년 10월 출범한 후 지역 기업의 후원금(연간 3000만원)으로 운영돼왔다. 이후 2023년 기업 후원이 중단되면서 해체 위기에 놓였으나 같은 해 시행된 ‘고향사랑기부제’가 야구단을 지켰다. 당시 광주 동구가 지정기부 사업을 검토하던 중 야구단의 해체 위기 소식을 듣고 지원에 나섰다.

동구는 2023년 7월부터 E.T야구단을 위한 지정기부 모금을 시작했고, 6개월 만에 목표액 8200만원을 채웠다. 야구단이 해체 위기에서 벗어나자 선수들은 훈련에 매진했고, 지난해 5월 김포에서 열린 ‘제3회 이만수배 발달장애인 티볼 야구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5월 김포시에서 열린 ‘제3회 이만수배 발달장애인 티볼 야구대회’에서 E.T야구단이 우승을 차지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광주 동구 제공
올해는 E.T야구단의 ‘전용구장’ 건립도 추진 중이다. 현재 선수들이 훈련을 하려면 매주 2시간 기준 10만원의 사용료를 내고 실내 연습장을 빌려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동구는 선수들이 안정적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전용구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E.T야구단 지정기부 목표액을 18억원으로 높였고, 지난 29일까지 15억1600만원이 모여 모금률 84.2%를 기록했다.

E.T야구단 주장 서지원(23)씨는 “매주 2시간 훈련이 끝난 뒤에도 동생 2~3명과 대학교 운동장에서 따로 연습을 하곤 한다”며 “전용구장이 생기면 좋아하는 야구를 더 많이 할 수 있을 것 같아 벌써부터 설렌다”고 말했다.

지난 28일 오전 광주광역시 북구 한 실내 야구연습장에서 발달장애인들로 구성된 E.T야구단 소속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다. 황희규 기자
동구는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초기부터 지정기부 사업에 관심을 쏟아왔다. 고향사랑기부제를 단순한 재정 보완책이 아닌 ‘지역을 살리는 정책 도구’로 접근한 게 성과를 내고 있다. 동구의 대표적인 지정기부 사업으로는 E.T야구단 지원과 함께 1935년 개관한 ‘광주극장’ 보존 사업이 꼽힌다. 이 밖에도 유기견 입양센터 조성과 에너지 취약계층 주거 환경 개선 등에 고향사랑기부금이 쓰이고 있다.

특히 동구의 고향사랑기부제 모금 과정에서는 전통시장과 골목 소상공인이 참여한 답례품 운영까지 더해져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 결과 지난 20일 기준 동구의 고향사랑기부제 누적 모금액은 전국 기초단체 최초로 100억원을 돌파했다.

광주 동구 관계자는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초기에 ‘고향에 기부해주세요’라고 홍보하기보다 ‘위기에 놓인 야구단과 극장을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한 점이 효과를 본 것 같다”며 “앞으로도 주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정기부 사업을 적극적으로 발굴해 동구 곳곳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황희규([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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